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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nk Dec 17. 2022

Anassi 05

소도시 여행

아직 피로가 채 풀리지 않았다. 부담 없이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가서 모로코 서민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특별한 계획 없이 버스가 가는 대로, 전철이 가는 대로 한번 무작정 하루 반나절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나와 15분 정도 걸어 나오면 카사블랑카에서 제법 큰 Far라는 대로가 나온다. 유동 인구나 교통량도 제법 많고 시내버스도 자주 지나다닌다. 어떤 버스를 타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고민을 해본다.

마침 멀리서 33번 번호가 붙은 버스가 오길래 그냥 이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미대생 시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잠실에서 혜화동 대학로까지 버스를 타고 가끔 종점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버스 창밖 풍경들을 바라보면 도시에서 뿜어져 에너지가 느껴져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했다. 종점 여행의 그런 감성이 가끔 생각나곤 했는데 그 오래전 추억의 버스여행을 이 먼 나라 땅에서 다시 해본다.



모로코는 대중교통시설이 상당히 잘 갖추진 편이다. 도심 내에 경전철이나 버스 시설을 보면 국가차원에서 대중교통 인프라에 상당한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모로코 버스에도 노역자 우대 문화가 은연중 존재한다. 버스 내에서 젊은 학생들이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게 된다. 한국에서 흔하게 보는 장면이지만 모로코에서 보게 되니 신기하고 노약자를 공경하는 이들의 문화에 친근함이 느껴진다. 버스 안은 의외로 깨끗하고 쾌적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도 나오고 버스들도 비교적 자주 오는 편이어서 사람들로 그리 북적이지도 않았다. 약 40분 정도 버스를 탔을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내리기 시작해 나도 휩쓸리다시피 함께 내렸다. 긴장감이 조금 흘렀다. 그나마 며칠 동안 머물며 익숙해졌던 숙소 주변을 벗어나니 카사블랑카의 번화가와는 사믓 다른  한적한 주거지역이 나타났다. Anassi라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서 당나귀 수레를 끌던 아저씨가 나를 보며 멋진 포즈를 취해준다. 간단히 압쌀람 말라이쿰 인사를 하고 주거지역이 몰려있는 거리로 더 걸어가 보았다. 관광객이나 외지인들이 방문할 만큼의 매력이 있는 지역은 아니었고 그래서인지 더욱 흥미로웠다. 아직은 개발 중인 도시인 듯 황량한 넓은 공터도 많고 허름한 다세대 주택, 아파트들이 밀집되어 있고 그 사이사이에 다양한 비즈니스들과 학교도 섞여 있다.




마을 곳곳에 묶어 놓은 나귀, 조랑말들이 자동차 다음으로 이 마을의 유용한 교통수단인 듯 보였다. 나귀가 끄는 수레들도 자주 지나다니고 시간이 뒤로 몇십 년은 간 것 같은 광경이다. 경전철이 지나다니고 버스와 자동차로 빼곡했던 카사블랑카와 시간상으로 40여분 떨어져 있는 이 도시는 사믓 다른 풍경이다.

말들이 뛰어다니고 시골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이 거리를 신기하게 구경하며 걷는데 뒤에서 한 학생이 "안녕하세요?"인사를 한다.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말을 조금 익혔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K-Drama의 파워를 직접 느껴본다.




멀리 이발소가 보인다. 잠시 들러 더듬더듬 인사를 해본다. TV에서만 보던 동양인이 실제 눈앞에 나타나 움직이고 말하는 게 반갑고 신기했을까? 반갑게 나의 인사에 화답을 하더니 안에 들어와서 앉으라 한다. 마침 날이 덥고 습해 앉아서 물 한 모금 마시며 휴식을 갖는 동안 스마트폰의 구글 번역 앱을 사용해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손님의 머리를 깎는 것보단 이 한국사람과 당장 대화를 나누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이발사 아저씨.... 구글 번역기로 계속 적극적으로 이것저것 물어보고 서로 대화를 나누다 영업에 방해가 되면 안 될 거 같아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감이 느껴지는 동네의 조그만 이발소다.

버스의 종점에서 내려 만난 이 마을... 조그만 시골 마을인 줄 알았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계속 주택단지들이 펼쳐져 나온다. 나무도 많지 않고 조금은 메마른 듯 삭막한 기분이 들지만 다들 제각기 뭔가 바쁘게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특이하게 동네 곳곳에 빵을 바닥에 펼쳐놓고 햇볕에 바싹 말리는 장면이 보였다. 대체 이 빵들을 어디에 사용하려는 것일까?  이렇게 길바닥에 늘어놓고 말리는 것인가 궁금해서 길가는 행인에게 물어보았으나 배고픈 여행객이 빵을 먹고 싶다고 물어보는 것인 줄 알았는지 먹으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 손을 저으며 지나간다. 구글 번역기를 보여줘도 같은 행동과 표정을 짓는다.  빵이 주식인 모로코는 어떤 음식을 먹든 빵이 매끼마다 테이블에 함께 올라온다. 그래서인지 남기고 버려지는 빵의 양도 상당할 듯싶다. 저 길거리에 말리는 빵의 용도를 나중에 알아보니 동물들의 사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아마도 조랑말과 나귀가 많던 이 마을에서 그들의 사료로 사용하기 위해 햇볕에 말리는 중간 처리과정 중인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이 남은 빵들을 동물의 사료로 재사용된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공급이 지나치게 과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생각해보니 식사 때 서빙되어 나온 빵을 다 먹은 적이 없을 정도로 빵은 언제나 넘치도록 풍족하게 제공된다. 



동네로 들어갈수록 버스에서 내려 걸어온 들어온 길을 잃을 것 같아 방향을 잘 기억하고 파악하며 천천히 걸어 다녔다. 푹푹 찌는 더위는 아니지만 등에 땀이 차오른다. 식사 때 먹는 흔한 통밀빵이나 바게트가 아닌 디저트류의 베이커리를 파는 조그만 빵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가벼운 인사하고 잠시 쉬어갈 겸 걸음을 멈추었다. 크루아상 및 크림 등이 들어간 달달한 간식, 디저트 종류를 직접 만들어 파는 가게인데 날도 덥고 눈으로 봐도 엄청 달 것 같아 사 먹는 건 생략하고 구경만 하였다. "압쌀람 알레이쿰"인사를 하고 언어가 짧아 인사 후엔 말보단 환한 미소를 보낸다. 진열대를 보고 그 미소가 잠시 멈춰 섰다. 진열대 안에 뭔가 반갑지 않은 것들이 가득 날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달콤한 냄새를 맡고 찾아온 파리떼인 줄 알고 순간 당황했으나 벌떼들이 온통 달콤한 디저트 주변을 비행하고 있었다. 


벌떼들이 온통 진열대 안을 날아다니는 모습에 가게에서 일하는 여성분께 물어보니 먹어도 괜찮은 거란다. 벌들은 위생적으로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곤충은 아니지만 마냥 편치만은 않은 모습 아닌가? 이 벌은 공격하는 벌이 아니라며 한 마리를 잡아 손등에 올려놓고 보여주기도 한다. 지나던 학생들이 먹음직스러운 빵을 하나 사 간다. 파리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을 했지만 벌떼들 또한 시각적으로 편치 못한 건 사실이다. 




빵집 여성분과 더듬더듬 의사소통을 하는 중에 역시나 아시안을 처음 보는지 몇 명의 아저씨들이 신기한 눈으로 다가와 뭐라 뭐라 아랍 말을 하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국사람이라 하니 고개를 끄떡거리며 서로의 이름을 나누고 모로코에 여행 왔다고 소개를 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구글 번역기가 있어서 그나마 의사소통의 고비고비를 무사히 넘어가게 도와준다. 아주 유쾌한 아저씨였다. 의사소통이 좀 힘들었음에도 마음이 통했는지 한마디 한마디마다 서로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모로코 사람들의 첫인상은 어디를 가든 보편적으로 강하고 차갑다는 느낌이 든다. 뭔가 무뚝뚝한 표정과 마음을 먼저 열지 않는 특유의 성향이 전반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하면 티비에서만 보던 한국사람이 실제로 눈앞에 나타난 게 신기한지 굳었던 표정이 미소로 바뀌며 그때부터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다. 낯선 도시, 처음 듣는 도시, Anassi... 그다지 특별함이 없어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는 도시여서인지 외지인을 경계하면서도 먼저 다가서면 다들 호기심이 많아 다가온다. 사람들과 지나며 먼저 인사를 하고 말을 걸어보니 이들은 무뚝뚝하고 차갑기보단 다소 수줍음을 갖고 있는 민족인 것 같다.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대부분 흔쾌히 응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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