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구도 나와 같을 수 없다

by 스마일

얼마 전 싱가포르 여행을 다녀왔다. 맛있는 딤섬과 깨끗한 길이 인상적인 작은 도시에서의 관광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다. 출국장 여권 심사는 별도의 인력 없이 자동화된 기기만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근처에 다가가 여권을 꺼내려는 찰나, 자동으로 출입문이 열렸다. 여권 스캔도 하기 전인데 어찌 된 것일까, 오류가 난 건 아닐까 두리번거리는데, 화면은 이미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한국어로 바뀌어있었고, 멀찌감치서 상황을 지켜보던 공항 직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냥 들어와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알고 보니 처음 싱가포르에 입국하던 날 카메라에 찍힌 내 얼굴이 출국장에서 자동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얼굴로 신분증을 대신하는 건 이미 흔한 일이다. 잠겨있는 휴대전화를 열기 위해 비밀번호를 누르던 시절에서 지문만 살짝 대면 가능한 시절로 나아가더니, 이제는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전화기를 가만히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잠금해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은행 앱에 들어가 송금을 할 때도 내 얼굴만 있으면 된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향후 3년 내에 얼굴 인식으로 공항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라 발표한 바 있다. 얼굴로 신원을 확인하여 체크인, 보안 검색, 탑승까지 자동화로 진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얼굴만으로 신원을 보증하게 될 수 있었던 건 최근 인공지능 기반의 생체인식시스템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기에 가능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건 모든 사람의 얼굴이 다 다르다는 사실 덕분이다. 눈, 코, 입의 크기나 위치, 머리카락의 색깔과 굵기 등 유전적으로 정해지는 사람의 얼굴은 쌍둥이조차 완전히 같을 수 없다. 최소 300개 이상의 유전자가 얼굴 형성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유전자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무작위로 얽히며,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나와 완전히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을 만날 가능성은 천문학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사람의 얼굴뿐만 아니라 고양이의 무늬도, 상어의 등지느러미 모양도 모든 개체가 다 다르다. 각자만의 고유한 유전적 조합으로 생겨난 점과 지느러미는 다른 개체가 따라 할 수 없다. 심지어 완전히 같은 DNA를 가진 고양이를 복제한다고 해도 무늬를 똑같이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작위에 가까운 유전자들의 조합은 무한한 경우의 수를 만들고, 그 안에서 같은 모양을 만들게 될 확률은 희박하다고 한다.



누구도 나와 같을 수 없음은 비단 생김새뿐만이 아니다.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과 창의성, 경험과 생각은 같을 수 없다. 동일한 환경에서 자라, 비슷한 교육을 받고, 비슷한 성공과 실패의 스토리를 가진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백번 양보하여 그 두 사람이 온전히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이후 그 속에서 작용하는 기작은 같을 수 없다. 이야기의 재료가 같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내면에서 익어가는 방식과 바깥으로 표출되는 방식은 유전자의 무작위 조합만큼 다양해진다. 각각 특이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내면에서 나온 생각, 그 생각을 표현한 글과 그림 등의 작품은 마치 사람의 얼굴처럼 고유하고, 고양이 무늬처럼 복잡하며, 상어 등지느러미처럼 다른 개체와 겹치지 않는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며, 그 작품을 접한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가 다시 무한한 조합의 깨달음과 감동, 추억과 선물로 기억된다. 유일무이의 기운을 내뿜으며 세상에 나온 작품들의 독창성과 고유함을 지켜줘야 한다. 그래야만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와 안부도 계속하여 새로워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 한국 영어교육 실패의 표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