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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국 영어교육 실패의 표본 (2)

영어에 대한 관점을 바꾸자

by 스마일

앞서 수능영어 만점을 받고도 외국인 앞에서 한마디도 못하고 얼어버리곤 했던 나의 이야기를 적어봤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가게 되었던 교환학생 시절, 영어라는 도구로 소통이 된다는 사실 자체에 신나서 발음도, 표현도 엉망이었지만 영어를 쓰는 과정이 정말 재밌었던 적도 있다. 그러다 다시 직장 내 영어 능력자들 사이에서 많이 위축되면서 영어울렁증(+외국인울렁증)까지 생겨났었다.


돌이켜보면 나를 좌절하게 했던 건 뛰어나지 못한 내 영어실력이 아니라, 나보다 훨씬 출중한 실력을 가진 주변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고 좌절했던 내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 스스로 만족하던 시절에는 엉터리 영어여도 모국어가 아닌 다른 말을 써서 타인과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이 났었다. 남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입이 꾹 닫히고, 아는 말도 내뱉을 수 없고, 혼자서 열등감을 느꼈다.


어찌 보면 영어를 포함한 언어 실력은 다른 누군가와 절대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영역이다. 타고난 언어 감각이 있어 새로운 언어를 보다 쉽게 습득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고, 어린 시절 유학 등으로 외국어에 노출된 수준이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같은 국내파라 하더라도, 본인의 시간을 얼마나 투입했느냐에 따라 실력은 하늘과 땅 차이인데, 단지 내 동료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회사, 같은 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그 사람들의 실력에 미치지 못하는 사실에 좌절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하는 일이 마음과 태도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잘 안다. 그래서 내가 영어로 업무를 하며 느꼈던 자존감 하락에 대해 너무 다그치지는 않고 싶다. 그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나가는 바람에 차근차근 실력을 늘려갈 기회를 밟지 못한 채 조급증에 걸렸던 그때의 내가 안쓰럽다.


최근 남편의 회사 일로 잠시 비영어권 국가에 머물게 되었다. 비영어권이라고 해도 현지어가 워낙 어렵고 외국인이 많은 동네여서 영어로 소통할 일도 많다. 아이가 국제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에서 받아오는 알림장을 챙겨 읽고, 담임선생님께 궁금한 것이 있을 때는 영어로 질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어를 쓰게 된다. 또한 내 아이는 한국에서 영유도 다니지 않았는데 갑자기 국제학교에 적응을 해야 했기 때문에 영어와 친해질 기회가 더 필요했고, 엄마도 함께 영어를 공부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 1~2시간씩 다시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회사에 다니지 않으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졌고, 욕심 같아서는 하루 종일 영어만 공부해서 실력을 확 키우고 싶었지만 그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점이 있어 그렇게 하지 않는다. 먼저, 하루 8~9시간 집중해서 공부하기엔 이미 체력과 집중력이 예전 같지 않고, 육아와 살림도 같이 챙겨야 하니 불가능하며, 그렇게 장시간 공부한다고 해도 언어라는 것이 단기간에 마스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보다 꾸준하게 진득하게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요즘 나의 변화


열등감 내려놓기

조금씩 용기 내어 말해보고, 못 알아들어도 그냥 웃어넘기고, 영어에 대한 열등감을 내려놓기 시작했더니 영어를 대하는 내 마음도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이건 비영어권 국가에서 영어를 활용하면서 갖게 된 장점인 것 같다. 영어권 국가로 갔다면 일단 원어민의 발화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입을 떼기도 전에 주눅 들어버려, 천천히 말해보기 어려운 환경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영어를 하는 나도, 그 말을 듣는 상대방도 모두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로 배려할 수 있다.


어색해도 괜찮다

유창한 영어를 하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해야 할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고민했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알아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집중했다.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특히 한국인)이 나의 비교대상이 되지 않도록 했다. 그저 그 사람이 이렇게 유창하게 되기까지 투입했을 시간과 노력을 인정하고, 나 역시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시간을 축적해 나가면 된다는 마음으로 바꾸었다.


앞으로의 방향

(1) 잘 듣는 것도 중요하다.

영어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보다, 오히려 상대방의 말을 잘 알아듣고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느낌이 든다. 원어민의 경우엔 속도가 빨라서, 비원어민은 또 독특한 억양 때문에 정확히 알아듣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지만, 귀담아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점점 소통이 편해진다. 내 영어는 짧더라도, 리스닝이 잘 된다면 조금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 유창할 필요 없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싶다거나, 최소 외국에 살다 온 사람들처럼 들리게 말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 실력이 그렇게 되기까지 입을 열기가 쉽지 않았고, 완벽해졌을 때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 '완벽한 시점'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였다. 나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닌데, 생계를 위해 혹은 가족과의 소통을 위해 영어를 꼭 써야 하는 환경이 아닌 이상, 그 정도 레벨이 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함을 깨달았고 인정했다. 나는 '비원어민으로서의 영어'에 능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안 되는 발음을 속상해하지 않고, 나만의 모국어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영어는 소통의 도구로서만 이용하기로 한다. 나만의 억양도 나의 개성이다.


(3) 비교하지 않는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어려운 영역이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나보다 영어를 더 잘 알아듣고, 더 자연스럽게 말할 줄 안다면 그건 100% 그 사람이 나보다 영어에 투입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이 때문이리라. 이것을 받아들이고,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해 보기로 한다. 평생 배우고 익숙해져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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