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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국 영어교육 실패의 표본 (1)

이놈의 영어가 뭐길래

by 스마일

영어 열등감은 나이가 들 수록 심해졌다.


영어 문제는 잘 풀어요


어렸을 땐 영어가 내 평생의 스트레스가 될 것이라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7차 교육과정인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영어과목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엔 원어민 선생님도 계시지 않았다.

나의 첫 영어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선생님이셨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초3이 되어서야 영어 과목이 생겼지만

그래도 눈높이 영어니, 구몬 영어니 하는 것들을 안 했던 친구들은 없으리라.

덕분에 그전까지 알파벳이랑 How are you? 정도는 알았던 것 같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다행히도 시험용 영어지문에 적합하게 잘 길들여진 나는

빈칸에 알맞은 단어 찾기, 지문 읽고 올바른 설명 고르기와 같은 유형의 '영어문제'를 푸는 것이 영어 공부인 줄 로만 굳게 믿었다.


주야장천 영어 문장을 읽고, 영어 단어를 외우기만 해 봤을 뿐 실제로 내 입으로 말을 해 본 적은 없었으니 처음 대학영어 시간에 자기소개를 하던 날, 다리가 후들거리고 뇌정지가 왔다. 다들 '쟤는 어떻게 저런 영어실력으로 대학까지 왔나' 싶었을 테다. 영포자인가? 생각했을 수도.


놀랍게도 수능 영어 만점이다... 내가 바로 '우리나라의 주입식 영어교육의 산 증인, 실패의 표본'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교환학생 가고 싶어요

그래도 대학생이 되었으니 교환학생은 꼭 가보고 싶었다. 어느 나라여도 상관없었다.

교환학생에 지원이라도 해보려면 토플 점수가 꼭 필요했다.

강남역 유명한 해*스 어학원에서 아침 7시부터 10시까지 스터디를 하고, 10시부터 16시까지 수업을 듣고, 기숙사에 돌아가 숙제를 하고 단어를 외우는 생활을 2달 동안 했더니

정말 기적처럼 80점이 나와주었다. (당시 지원 가능한 토플 최저 기준이었던 것으로 기억됨)


Reading 만큼은 괜찮을 거라 믿었는데 토플 Reading은 대학교 강의 내용을 발췌한 스타일의 문제라서 수능영어보다 난이도가 정말 높았다. Writing은 해*스 어학원 선생님이 알려준 템플릿을 달달 외운 효과를 봤다. In my opinion, First of all.....


역시 가장 큰 고비는 Speaking이었는데, 당시 내 발음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모범답안 몇 개를 외우고, 어떤 문제가 나오든 그 모범답안에서 조금씩 변형하여 대답하는 연습을 했다. 질문을 듣고 전혀 모르겠으면 일단 질문을 따라 읽는다. 그러고 나서 '아 너 지금 이거 물어봤지? 근데 A에 대해서도 들어봤어? 지금부터 A를 설명할게' 이런 식으로 슬그머니 다른 얘기를 하면서 외운 내용을 주르륵 장황하게 늘어놓는 방법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싱가포르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는데, 한국어가 아닌 말로 다른 사람과 소통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하고 신났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간단한 내 생각조차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내 앞에 있는 친구와 무엇을 먹을지, 주말엔 어딜 놀러 가고 싶은지, 형제가 있는지와 같은 단순한 정보를 직접 말하고, 상대방이 그걸 이해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았다.


그렇게 교환학생 6개월은 나에게 '근자감'을 심어주었다.


나중에 대학 졸업 후 필리핀 여행을 갔을 때도 조금만 궁금한 게 있으면 영어로 물어보고 혀를 굴리며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이 좀 멋져 보였다. 어떤 현지 가이드는 나에게 '영어를 참 귀엽게 한다'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당시엔 '아 내가 영어 좀 잘하나 보다'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칭찬이었다기 보단 아이처럼 영어를 하니까 약간 우스꽝스러워 보였던 건 아닐까. 영어를 못하는 어른은 침묵하지만, 아이들은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일단 말을 먼저 하고 보니까 말이다.



회사에서 영어 절대 하기 싫어요

그러다 더 어른이 되었고, 어느 날 회사에서 영어가 필요한 부서에 배치되었다. 순전히 만점에 가까운 내 토익 성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미주권은 아니지만 영어 사용 국가로 교환학생 경험도 있으니 회사는 내가 어느 정도 영어를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나의 영어 열등감이 생겨난 시점은 바로 이때부터다.


하루는 유럽의 한 회사와 화상미팅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주도한 것은 아니었고 우리 팀에 워낙 영어 능력자들이 많아서 (대부분 유학파) 내 역할은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유창한 영어를 하는 동료들에게 둘러싸이는 경험만으로도 내 입을 닫게 하기엔 충분했다. 원래 알고 있던 말도 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매일 10분씩 전화영어를 하고, 출퇴근길에는 드라마 보고 싶어도 꾹 참고 빨모쌤의 라이브아카데미를 봤다. 그래도 실력은 제자리였다. 입을 전혀 열지 못했기 때문이다. 팀원들이 내가 영어를 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했다. 영어를 못한다고, 발음이 이상하다고 무시하든 말든 그냥 내 할 말을 똑바로 했다면 좋았을 텐데. 알량한 자존심에 무시당하는 것보다 아예 존재감이 없는 것이 나았다.


원래 업무를 함에 있어 소극적인 편도 아니었고, 어떤 일이든 잘 해내려는 근성이 있다고 나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었는데 이놈의 영어 때문에 갑자기 일을 피해 다니고, 미팅을 피해 다니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가 점점 입을 닫고 최대한 참여하지 않으려고 하니 팀원들도 나에게 점점 기회를 주지 않았다.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오히려 배려이고 나를 편하게 해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이직을 위한 면접을 보던 날엔 갑자기 영어로 아무거나 말해봐라, 하셔서

I like to go to the park on weekends. I don't have enough time with my son. So I try to spend my time with my son on weekends..

(왜 갑자기 공원이 나왔을까 아직도 의문. 주말에 밖에 나가는 게 제일 싫은데.)


위켄드 위켄드를 반복하며, 전혀 비즈니스스럽지 않은 짧은 영어를 했는데

감사하게도 면접에는 합격하였다. 그렇지만 입사 이후에 팀장님께서는 영어가 필요한 업무에는 절대 나를 배치하지는 않으셨다. 물론 이유는 나도 알 것 같다.



근자감 있던 교환학생 시절이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사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멋지게 영어를 쓰는 것보다는
영어를 매개로 소통을 할 수 있나 없나, 그게 가장 중요한데.
창피하다고 입을 닫아버렸더니
10년 전보다 영어공부를 더 많이 해도
실력은 퇴보하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다.



(2) 편에서는 최근 비영어권 나라에서 해외살이를 하게 되면서

영어를 대하는 관점이 달라진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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