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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내가 챙겨야지

본가에만 선물 보내는 남편, 미워하지 않는 방법.

by 스마일


언젠가부터 남편은 우리 엄마 아빠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보내주는 어버이날 선물의 주소를 적으라고 할 때 꼬박 십 년 넘게 본가의 주소만을 적어 제출했다. 한번쯤 ‘이번엔 장모님 댁 주소를 써볼까’ 생각했다면 좋았을 텐데..


어제저녁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남편 이름으로 택배가 왔는데 무얼 보낸 거냐고 잘못 보낸 것 같다고 나에게 물어보시기 위함이었다. 나중에 퇴근 후 돌아온 남편에게 물어보니 본가에 보낸 것이 맞단다. 나중에 본인이 직접 어머님께 설명드리겠다고 한다. 이번에도 본인이 직접 구입한 건 아니고 회사에서 선물로 보내주는 음식이 있었는데 우리는 필요가 없으니 어머니 댁으로 보낸 것이라 한다.


물론 남편이 직접 돈을 써서 ‘구매‘한 것들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본인의 부모님에게만 물건을 보내드리는 과정에서 장인 장모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했을까? 생각 자체가 그곳까지 미치지는 못했던 듯하다. 그 부분까지 미처 생각을 못 했으니 나에게 따로 양해를 구한다던가 하는 과정도 필요 없었을 터다. 이런 부분에 대해 서운하다고 말하면 ‘그냥 회사에서 주는 물건이고 내가 내 돈 들여 우리 엄마한테만 산 것도 아닌데 뭘 그리 그렇게 따지냐 ‘고 하겠지. 안 봐도 비디오라서 그냥 입을 닫았다. 그래도 이상하게 서운한 마음에 눈가가 촉촉해지는 건.. 내가 아직도 마음이 너무 약해서일까.


결혼 전이었다면 우리 엄마아빠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뭐라도 사서 보내지 않았을까? 이렇게 혼자서 옹졸한 생각도 한다. 조금만 더 세심한 남편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쓸데없는 아쉬움도 생긴다. 나와 아이에게 잘하고 있고 열심히 살고 있는 착한 남편이라서 나무랄 곳이 별로 없는데, 자꾸만 아쉬움이 크게 느껴진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남편이었다면, 나도 솔직히 우리 엄마아빠 집 주소를 적었을 것이다. 시댁을 일부러 챙기지 않는 게 아니라, 마음이 나의 부모에게 가는 것 본능이고 순리인 거니까. 당연한 거니까. 그런 측면에서 남편을 이해 못 할 이유도 없다. 이렇게 생각이 움직이고 나니, 서운함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이 좀 모순이다. 근데 역시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사람 마음이다.


입은 닫아버렸지만 여전히 서운한 마음은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어서, 이 마음이 언젠가 입 밖으로 나오면 안 될 텐데 큰일이다. 저녁에 남편이 오기 전까지 마음을 얼른 다스려보기로 한다.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상대를 다소 억울하게 만들 위험이 있는 서운함은 마음에 오래 간직할수록 부부에게 독이 되는 것 같아서다. 이해해 보고, 입장 바꿔보며 내 마음 다스리는 중이다.


무엇보다 마음 다스림에 가장 효과가 좋았던 건 오늘 아침 엄마에게 걸었던 전화였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잘 챙겨드리면 된다. 회사에서 보내주는 그런 선물까지는 드릴 수 없어도 엄마에게 최대한 밝고 명랑하게 안부전화를 걸었고, 전화 끊자마자 용돈 5만 원을 부쳐드렸다. 그러고 나니 서운했던 마음도 약간 수그러들었다. 어린아이처럼 혼자 뚱해질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 우리 엄마는 내가 챙겨 드린다!!


* 어버이날 선물을 지원하는 회사에서는 기혼 직원들에게는 선물 2개를 보낼 수 있도록 해주시면 어떨까 싶다.

* 미혼 직원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서 예산은 동일해야 하니, 큰 선물 1개와 작은 선물 2개 중 고를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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