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남겨진 형태들
지난해 12월의 끝자락, 일상의 풍경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사를 결심했다.
살던 공간을 옮긴다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준비와 분주함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겪어보면 그 과정은 예상보다 더 자잘하게 고되고 정신없다. 이사를 준비하는 한두 달 동안 짐을 정리하며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많은 물건을 비워냈고, 그렇게 비워낸 자리에 나는 다시 새로운 것들을 채우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무인O품(MUJI)'의 벽걸이 CD 플레이어다.
새집의 하얀 벽면에 이 기기를 걸어두고 바라보면, 디자인은 놀랄 만큼 단순하다. 흔히 볼 수 있는 전원 버튼이나 번쩍이는 디스플레이 대신, 기기 아래로 길게 늘어진 줄 하나가 매달려 있다. 마치 오래된 환풍기의 손잡이처럼 보이는 그 줄이 이 기기의 유일한 조작 장치다. 별생각 없이 손을 뻗어 가볍게 이 줄을 당기면, 잠시 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회전음이 들리고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 플레이어의 디자인은 아주 소박한 관찰에서 시작되었다. 디자이너는 사용자가 설명서를 읽거나 버튼을 찾지 않아도, 특정 물건 앞에서 자연스럽게 손을 뻗는 찰나의 순간을 발견한 것이다. 주방이나 욕실의 환풍기 줄 앞에 서면 이미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몸이 먼저 알고 있는 것처럼, 그 익숙한 동작 하나를 음악 재생기 위에 그대로 옮겨 놓은 아이디어... 애써 생각하지 않아도 몸에 배어 있는 무의식적인 행동을 따라, 사물이 일상의 배경처럼 스며들기를 원했던 의도가 이 작은 줄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디지털 스트리밍이 숨 쉬듯 당연해진 요즘, 차가운 플라스틱 케이스에서 CD를 꺼내 회전축에 끼우는 이 수고로운 행위는 단순한 복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손끝에 닿는 매끄러운 CD의 질감, 줄을 당길 때 손끝에 전해지는 미세한 저항감, 그리고 잠시 뒤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하는 디스크의 소리. 보이지 않는 데이터로 흩어져 있던 리듬이, 다시 손에 잡히는 경험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종종 사물의 쓰임을 머리보다 몸으로 먼저 알아챈다. 낯선 이 기기 앞에서도 내가 망설임 없이 손을 뻗을 수 있었던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욕실 천장에 달려 있던 환풍기 줄을 당기던 기억, 혹은 형광등 스위치를 더듬어 찾던 손의 습관이 이 조그만 형태 속에서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사물이 제안하는 오래된 약속이 몸의 기억을 소환하는 순간, 우리는 설명 없이도 그것의 쓰임을 이해한다. 그렇게 벽 위에 매달린 작은 기계 하나가 나의 집 풍경을 새롭게 바꿔 놓는다.
그나저나 짐 속을 뒤져 찾아낸 CD라고는 전람회의 1집〈기억의 습작〉뿐이니...
조만간 몇 장쯤 더 들여놓아야겠다.
생각해 보면 이런 장면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매일 일상에서 마주하는 전원 버튼만 보더라도 그렇다. 둥근 원 안에 짧은 선 하나가 수직으로 꽂혀 있는 그 단순한 기호를 우리는 텔레비전 리모컨이나 전기밥솥, 혹은 노트북의 모서리에서 어김없이 발견한다. 누구도 설명서를 뒤적여 그 모양의 유래를 찾아본 적은 없지만, 그 작은 표시 앞에 서면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손가락을 올려 가볍게 누르는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그것이 컴퓨터의 이진법 숫자인 0과 1을 겹쳐 만든 형상이라는 사실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 모양이 기계를 작동시키는 의미라는 것을 몸의 기억으로 이미 알고 있다.
물론, 때로는 익숙한 형태가 전혀 다른 맥락에 놓일 때 사물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기도 한다. 가게 문에 달린 삽 손잡이나 시린 바다의 풍경을 담는 액자가 된 낡은 텔레비전의 빈 프레임이 그렇다. 마그리트(René Magritte)가 사물을 낯선 곳에 옮겨 두어 본질을 다시 보게 했듯, 쓰임을 다한 형태를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의 일상에 신선한 균열을 내기도 한다.
와이파이 아이콘 또한 비슷하다. 점 하나 위로 부드럽게 번져 나가는 몇 개의 곡선은 공항 대합실이나 카페의 벽면, 노트북 화면 속에서 늘 같은 모양으로 자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가 실제로 저런 물결 모양일 리 없지만, 사람들은 그 기호를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연결의 유무를 알아챈다. 이처럼 작은 기호 하나는 때로 긴 문장보다 명확하게 우리의 무의식적인 행동을 이끌어 내고, 우리는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이미 익숙해진 형태의 약속을 믿고 움직인다.
어쩌면 디자인이란 세상에 없던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미 이해하고 있는 방식을 조금 더 또렷하게 정리해서 하나의 질서로 세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말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쉽게 흩어지지만, 한 번 몸에 익은 형상은 긴 시간 동안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작은 기호 하나를 믿으며 기계를 켜고, 낯선 길을 찾으며, 타인의 의도를 짐작한다. 그 단순한 모양 속에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 쌓아온 인간의 조용하고도 단단한 합의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물이 제안하는 오래된 약속은, 복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망설임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가장 명료한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