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열로도 충분해요

by 김하은


아이들이 처음 달걀 프라이를 만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그때 장을 보던 중이었는데, 배가 고프다면서 먼저 먹겠다고 큰애가 말했다. 그래서 그러라고 말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니 살짝 탄 냄새가 났다.

“이게 무슨 냄새야? 뭘 해 먹었는데?”

“달걀 프라이 했는데, 조금 탔어.”

프라이팬에 남은 자국을 보니 조금 탄 정도가 아니었다. 그 전에는 가스레인지 불을 켤 때 내가 옆에 있었는데, 그날은 둘만 남아 있다가 늘 하던 대로 해보자고 시도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달걀 프라이를 만들 때 어떤 불로 해야 하는지 두 아이에게 설명했다. 불을 켜고 프라이팬을 달구었다가 기름을 두르고 중불로 낮추고 조리해야 한다고 했다.

“또 태우면 어떻게 해?”

“불을 낮추면 괜찮아. 그리고 기름 너무 많이 쓰지 마. 더 빨리 타거든.”

그 뒤로 아이들은 달걀 프라이를 해먹었다.

나는 음식을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두 세 가지 반찬을 한꺼번에 만들어야 할 때는 가스레인지 불을 켜달라든지, 채소를 씻어달라든지, 체를 찾아달라든지 등을 요구했다. 불을 켤 때 조심해야 부분과 칼을 쓸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을 잔소리처럼 되뇌었다. 끼니를 해결함과 동시에 안전한 부엌도 중요하다. 불이 무섭긴 하겠지만, 생식이 아닌 화식을 하는 사람이라면 불을 쓰는 법을 알아야 한다.

음식을 조리할 때 불을 쓰는가 아닌가에 따라 화식과 생식으로 나눌 수 있다. 과일은 대부분 생식하고 채소도 생식하는 종류가 많다. 나는 생식과 화식을 번갈아 쓰는 편인데, 생식을 주로 하지 않으므로 화식에 가깝다. 조리할 때 불을 쓰면 재료가 부드러워지고 모양을 변형시킬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달걀은 삶아서 껍질을 깔 수 있고, 호박은 삶아 으깰 수 있고, 싱싱한 시금치를 흐물흐물하게 만들 수 있다. 열에 닿은 채소는 부피가 줄어들고, 싱싱함을 잃는다. 그렇지만 채소가 지닌 섬유소가 아직 남아서 몸으로 들어가면 맹활약을 펼친다.

처음에 요리책을 펼쳤을 때가 떠오른다.

‘강불에서 중불로 줄인다.’

‘팔팔 끓이다가 중불로 줄인다.’

‘중불에서 약불로 줄인다.’

그때 나는 책을 탁 덮으면서, 이렇게 하면 나는 불을 다스릴 수 없겠구나 하고 좌절했다. 늘 내 옆에 요리책이 있어야 제대로 된 음식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사실 불의 세기는 내가 만드는 음식의 종류와 재료의 강도에 따라 달라진다. 가스레인지는 켜는 순간 강불이고, 서서히 줄이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딱딱한 재료는 강불로 오래 익힌다. 그런데 중불로 줄여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밑에 눌어붙을 수 있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죽을 끓이거나 과채류를 익혀서 졸일 때, 불을 줄여야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불의 세기는 바로 남은 열이다. 냄비에 담긴 물과 재료를 팔팔 끓이다가 불을 끄면, 뜨거운 물이 천천히 식으면서 재료를 익힌다.

이 방법으로 조리하는 것들에는 삶은 달걀, 묵은 나물, 콩 등이 있다.

묵은 나물은 말린 나물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바짝 마른 나물을 물에 불려서 삶아야 하는데, 나는 냄비에 찬물과 불리지 않은 묵은 나물을 넣고 팔팔 끓인 뒤 불을 끈다. 뚜껑을 덮은 상태로 불린다. 그러면 평소보다 불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주의할 점은, 냄비에 있는 물을 버리고 한 두 번 헹궈야 한다. 나물에 따라 불리면서 독성이 빠져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물에 그 독성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딱딱한 콩을 불릴 때도 이 방법을 쓰면 찬물에 불릴 때보다 시간이 단축된다.


달걀은 찬물에 달걀을 넣고 팔팔 끓인 뒤 불을 끄고 기다린다. 뚜껑을 덮은 채 10분 정도만에 꺼내서 찬물에 씻으면 노른자가 살짝 익는다. 12분 정도면 반숙, 15분을 기다렸다가 씻으면 완숙이 된다. 어느 정도로 익은 달걀을 원하는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계란장.jpg

프라이팬에 달걀 프라이를 했다면 기름을 닦아내고 남은 열에 김을 굽는다. 김 몇 장 정도는 남은 열로도 충분하다.


거듭되는 실패 끝에 원고가 통과되었을 때, 나는 남은 열을 떠올렸다. 그래, 아직 내게 남은 열이 있구나. 소소하고 작아서, 불씨 같아서 무시했던 그 남은 열이 나를 일으켰구나. 김을 굽듯, 달걀을 익히듯, 내 실패에도 남아 있던 열기가 계속 일하도록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내게는 여전히 남은 열이 있다. 하루종일 다른 원고를 수정하다가, 남은 열로 이 원고를 쓴다. 이 정도면 어마어마한 남은 열이지 않은가!


당신에게는 어떤 남은 열이 있을까?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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