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온갖 소스들을 다 만들어서 썼다.
볶음 요리에 쓸 고추장 양념, 비빔 고추장, 조림 간장, 샐러드 소스 등 별의별 소스들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그런 만큼 냉장고에도 이런저런 병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부터 부엌에서 일할 시간을 줄여야 했다. 내가 부엌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원고를 더 쓸 수 있었다.
맛있는 음식은 먹고 싶고, 밖에서 사먹는 건 내키지 않을 때가 있다. 냉장고에 채소가 많은데 다른 방법으로 먹고 싶을 때가 바로 그렇다. 늘 먹던 방식이 아닌 다른 조리법으로 만든 음식이 땡기면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고민한다.
“뭘 먹지?”
끼니마다 뭘 먹을지 고민하는 건 아마 나뿐만 아니라 밥상을 주로 맡는 사람이라면 늘 하는 고민일 것이다. 어제 만든 찌개가 아직 남았다면 그걸 데워 먹으면 되는데, 이틀째 같은 반찬을 먹었다면 물리게 마련이다. 옷장에 옷이 가득해도 입을 옷이 없다고 느끼는 것처럼, 냉장고에 식재료는 가득한데 먹을 게 없는 것 같다.
처음엔 맛있던 깻잎무침도 며칠 먹었고, 그저께 무친 겉절이는 익어서 싱싱함이 떨어지고, 시금치 나물은 얼마 안 남았다. 그러면 자연히 밥상에서 눈길이 멀어진다.
언젠가 먹었던 맛있는 안주, 다른 지역에서 먹었던 반찬, 지금은 문 닫은 해물칼국수 집 김치 등 먹고 있는 밥상이 아닌 다른 밥상으로 생각이 달려간다.
“요즘 입맛이 별로 없네.”
그런 말은 밥상을 차리는 사람도 똑같이 내뱉고 싶다. 나도 바쁘고 입맛이 별로 없어서 반찬을 만들기 싫을 뿐이다. 해야 할 일이 잔뜩일 때는 진짜 입맛이 똑 떨어진다. 누군가 해 주는 밥을 먹으면 정말 좋겠지만, 끼니마다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 옛이야기에 나오는 ‘우렁각시’가 한 집에 하나씩 있으면 좋겠다. ‘우렁각시’가 나 대신 반찬을 만들고, 밥을 하고, 끼니를 잘 해결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의 우렁각시가 되는 길이 가장 빠르다. 다른 가족도 내게 우렁각시 역할을 하면 최상이다. 그런데 어느 세월에!
그래서 요즘은 마트에서 살 수 있는 소스들을 적극 활용한다.
‘토마토 케첩’, ‘마요네즈’, ‘스파게티 소스’, ‘스위트 칠리 소스’, ‘돈가스 소스’, ‘스테이크 소스’, ‘메밀국수 장’, ‘굴소스’, ‘불닭 소스’ 등 다양한 소스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어떤 소스는 뚜껑을 열자마자 되도록 빨리 먹어야 하지만 냉장보관하면 꽤 먹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이 소스들을 다양하게 쓰면 요리가 풍부해진다. 별 것 아닌 듯한 음식도 근사한 요리가 될 수 있다.
시판되는 ‘굴소스’는 대부분 굴이 주재료이지만, 캬라멜 소스를 많이 써서 짙은 색을 띤다. 이 굴소스를 김치볶음밥에 살짝 넣거나, 청경채와 양파를 볶을 때 조금 쓰면 채소볶음이 근사하게 변한다.
‘돈가스 소스’나 ‘스테이크 소스’는 소시지를 볶을 때 쓰는데, 채식용 콩고기에도 써 봤더니 맛이 괜찮았다. 버섯을 볶을 때도 쓸만하다. 이 소스는 주로 고기와 어울리는 곳에 쓰면 좋다.
‘스파게티 소스’나 ‘스위트 칠리 소스’는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냉장고 채소칸에 남은 자투리 채소들을 썰어서 기름을 두르고 휘리릭 볶다가 이 소스를 첨가하면, 근사한 요리처럼 먹을 수 있다.
가지 두 개를 꺼내 나박 썰었다. 쪄서 간장 양념을 하려고 했는데, 그럴 짬이 안 날 것 같았다. 살짝 구워 먹을까 했는데, 그보다는 스파게티 소스를 쓰기로 했다.
다진 파를 기름에 볶다가 가지와 양파 등 채소를 추가해서 볶았다. 그런 다음 가지와 고추, 편으로 썬 마늘을 넣었다. 그런 다음 스파게티 소스를 넣어 익히다가 들기름을 둘러 마무리했다. 접시에 담고 통깨를 뿌렸다.
다른 반찬은 며칠째 먹던 것이어서, 새로 만든 가지 반찬에 젓가락이 몰렸다. 나도 모처럼 잃어버린 입맛을 찾았다.
바쁠 땐 소스에 기댄다. 생각보다 활용할 방법들이 많다. 끼니를 해결했으니, 남은 일을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