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가루가루!

by 김하은


며칠째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노트북 앞에서 멍하니 있는 나를 발견한다. 프리랜서 작가인 나는 일하는 만큼, 집중한 만큼 결과물을 낼 수 있다. 하지만 멍하니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작업이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다름 아닌 ‘출판계 통합 표준계약서’ 때문이다.

프리랜서인 작가가 작품을 발표하는 경우는 대부분 계약을 통해 이루어진다. 계약서를 살피고, 조항이 마음에 안 들면 수정하고, 그런 다음 도장을 찍는다. 이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그 책에 애정을 갖는다. 그런데 그 과정이 순조롭지 않을 때는 찜찜한 상태가 된다. 몇 달에 걸쳐 수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약서를 보여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계약서 조항을 수정하기 더 어려워진다. 계약서에 등장하는 단어들은 우리가 작품을 쓸 때 사용하는 것과 다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듯, 미묘한 단어 차이가 그 작품의 판매를 결정짓기도 한다.

물론 모든 출판사가 ‘출판사 통합 표준계약서’를 채택하지는 않겠지만, 존재만으로도 위협적이다. 10년 계약에 자동연장, 저작인격권 없음, 작품에 관련한 비용을 저작권자가 모두 대는 등 조항들을 뜯어보면 프리랜서의 목을 쥐고 흔드는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힘을 내고 싶다.

뭔가 달달한 걸 먹고 싶다. 그래서 냉장고를 뒤졌다.


떡과 한과를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냉장고에는 각종 가루들이 자리잡고 있다. 날콩가루, 볶은콩가루, 녹두가루, 솔잎가루, 쑥가루, 백년초가루, 송화가루 등이 한곳에 모여 있다. 이 가루들 가운데 솔잎, 쑥, 백년초는 떡을 만들 때 쌀가루와 섞어서 쓴다.

녹두가루는 열이 날 때 주로 쓴다. 초기 감기로 열이 나고 목이 부을 때, 흰죽에 녹두가루를 섞어서 끓인다. 그러면 열을 떨어뜨리는 데 효과가 있다.

콩가루는 보통 인절미에 묻혀서 먹는다. 그리고 입맛이 없을 때 밥을 조그맣게 뭉쳐서 묻힌다.


나는 송화가루와 콩가루 등에 꿀을 섞어서 다식을 자주 만든다. 집에 다식판이 있다면 그곳에 이용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냥 동그랗게 뭉치면 된다.

먼저 큰 그릇에 송화가루나 콩가루 등을 넣는데 가루를 모두 넣지 말고 3분의 2 정도만 넣는다. 원래 다식 반죽에는 꿀이나 조청을 섞는데, 요즘은 올리고당을 쓰기도 한다. 가루들을 뭉치는데 달콤하고 끈적한 당분이 쓰이는 셈이다. 이때 꿀이나 조청, 올리고당도 조금씩 섞는다. 가루와 당분을 넣고, 젓가락으로 둘을 섞는다. 처음부터 손으로 섞으면 손에 다 달라붙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먼저 섞다가 어느 정도 뭉쳐졌다 싶을 때 손을 쓰면 된다.

한 덩어리로 뭉친 다음, 일정한 크기로 떼어(박하사탕보다 작은 크기) 뭉친다. 다식판이 없다면, 작고 동그랗게 뭉친 덩어리를 갖가지 모양으로 만들어볼 수 있다.

아이들과 송편 혹은 개떡 등 떡반죽을 함께 만질 때나 쿠키 반죽을 만들면 아주 창의적인 모양이 쏟아진다. 이처럼 다식으로도 여러 모양을 만들 수 있다. 다식판이 없어도, 밤, 도토리, 뱀, 토끼, 당근 등 멋진 다식들이 쏟아질 것이다.


나는 송화 다식을 많이 하지만, 콩가루와 꿀 조합도 괜찮다. 볶은 콩가루와 꿀을 섞으면 뒷맛이 고소한 다식을 만들 수 있다.

송화다식.jpg


달콤한 가루가루가 내 입에 닿는다.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린다. 걱정은 혼자 하지 말고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시름은 잠깐 잊고, 다시 힘을 내려 한다.


어쨌든 프리랜서의 하루는 또 지나간다. 세상은 달콤함보다 떫고 고약한 맛이 더 많지만, 그래도 그걸 잊을 방법을 안다면 더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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