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동안 시댁 바로 옆집에서 살았다. 시댁에서 나는 큰 소리가 창을 통해 우리 집으로 넘어왔고, 우리 집에서 아이가 오래 울면 바로 시댁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가 어디 아프냐, 무슨 일이 있느냐, 이런 문답이 오갔다.
20대에 독립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끈끈함이 시댁 식구들에겐 있었다. 그래서 종종 나 또한 그런 끈끈함 속으로 들어오길 바라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 끈끈함이 내키지 않았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나대로 살고 싶었다. 챙길 건 챙기면서, 내 삶도 지키고 싶었다. 불쑥불쑥 내 삶으로 들어오는 끈끈함은 원하지 않았다.
가족이란 혈연 관계로 맺어진 사이라고 한다. 하지만 혈연이 아닌 관계들도 있다. 며느리, 사위 등 각성바지들이 넓은 가족 범위에 들어가 있는데, 내가 속한 그 범위에 든 사람들은 술을 한 잔씩 하는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끈끈한 가족들 범위에는 술을 한 잔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거의 없는 시댁 식구들은 맥주 한 잔을 오래 마시면서 금방 취했고, 맥주쯤은 입가심으로 마시는 사위들 틈에서 나도 한 잔 마시곤 했다. 물론 육남매가 모두 결혼해서 한 번씩 모이는 자리에서는 밥 한 끼 먹는 것도 잔치처럼 벌어졌기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한 번 밥을 먹으면 30인분이 기본이었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들까지 모두 모이면 집안이 왁자지껄했다. 교자상 몇 개를 펼쳐놓고 순서를 정해서 밥을 먹곤 했다. 이 순서는 대중이 없었다.
이 상을 차리는 데는 요령이 필요했다. 입맛을 사로잡을 주 요리가 있어야 했고, 주 요리와 맛이 겹치지 않을 보조 요리들, 입맛을 돋울 전채 요리, 마지막으로 음식의 맛을 개운하고 상큼하게 만들 디저트가 있어야 했다. 이 구성들을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맡았다. 누군가 간장게장을 가져오면, 또 다른 누군가는 갈비를 재고, 또 다른 사람은 과일을 사고, 밥과 국을 맡는 등 분업을 하기에 최적화된 조건이었다.
그 틈에서 나는 방황했다. 음식들을 그처럼 많이, 빨리 해 낼 자신이 없었고 까다로운 입맛을 충족시킬 만큼 잘하지 못하던 때였다. 그래서 파를 씻고, 마늘을 빻고, 양파를 깠다. 한 마디로 보조 역할을 도맡았던 셈이다. 신혼 초에는 보조 역할도 제대로 못했다. 집 옆에 있는 텃밭에서 대파를 뽑아오라고 시어머니가 시키셨는데, 대파를 뽑지도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도대체 대파 뿌리는 왜 그리 단단하게 땅에 박혔냔 말이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나를 창으로 내려다보던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시누이를 내려보냈다. 시누이는 손목을 가볍게 비틀며 대파를 뽑았다. 그렇게 쉽게 뽑히다니! 대파가 나를 배신하고 시누이를 선택한 것 같아서 몹시 속상했다.
대파를 뽑지 못한다는 소문은 밥상에서 이야깃거리로 돌았다. 그때 시어머니가 나를 두둔하셨다.
“아유, 못해도 괜찮아. 그런 거 해 봤겠어?”
시어머니는 번번이 나를 편드셨다. 그리고 집안일이 서툰 나를 대신해서 요령을 가르쳤다. 그 요령들은 대부분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부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들이었다.
여름이 다가오면 텃밭에서 어마어마한 채소가 공급된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채소들이 매일 돋아났다. 집집마다 상추와 부추, 쑥갓과 치커리 등이 냉장고에 그득하게 쌓였다. 그러다가 또 가족 모임이 오면 산처럼 쌓인 쌈 채소들을 한꺼번에 씻어서 먹어치웠다.
“이걸 다 씻어요?”
마치 김장할 때처럼 수북하게 쌓인 채소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내게, 시어머니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한 번 올리셨다 내렸다.
“이따가 애들 다 온다니까, 이것만 일단 씻어놓자. 네가 그거 씻는 동안 나는 밥 하고 국 끓이고 나물 세 가지 하고 생선찌개도 하고…….”
해야 할 양으로 따지면 시어머니가 할 음식이 훨씬 많았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이 가져올 음식들까지 놓이면 상이 더 풍성해질 것이다. 그러니 일단 채소를 씻어야 했다.
“그런데 고기도 구워요? 무슨 채소를 이렇게 많이 씻어요?”
“그냥 먹기도 하고, 겉절이도 하고. 이래야 다 먹지.”
한숨과 함께 채소들을 씻었는데, 씻어도 씻어도 줄어들지 않는 느낌이었다. 씻어서 채반에 엎어놓고 또 씻느라 정신이 없는데 시어머니가 채반에 손을 대셨다.
“얘, 이렇게 놓으면 네가 한 일이 티가 안 나잖아.”
“예?”
“잎자루가 아래로 가도록 세워서 차곡차곡 놓아보렴.”
“책처럼 쌓으라고요?”
“그래, 책처럼. 그럼 물기가 아주 잘 빠지거든. 그렇게 두면 작은 채반에 훨씬 많은 채소를 놓을 수 있지. 또 씻은 것처럼 티도 나고.”
그 뒤부터 나는 채소를 씻으면 꼭 책처럼 세워서 물기를 뺀다. 잎자루가 아래로 가도록 겹쳐서 세워두면 눕혀서 놓는 것보다 훨씬 빨리 물기가 빠진다. 물론 일한 것처럼 티도 난다. 어머님은 돌아가셨지만, 내게 이런 지혜를 남기셨다.
일이 밀리면 채소에서 물을 빼듯이 더 효율적으로 할 방법을 찾아본다. 한정된 시간에 해야 할 일이 많은 건, 곧 닥칠 30명의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산더미 같은 채소를 씻고 정리하던 그 때와 비슷하다. 흡사 마감에 임하는 자세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