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러미 배달이오!

프리랜서의 밥상

by 김하은


독립을 한 뒤 되도록 집에서 밥을 먹으려고 애썼지만, 그게 맘처럼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반찬이었다. 직장에 다닐 때 도시락을 싸는 날이 있었다. 그러면 어떤 반찬을 싸야 할지 무척 고민스러웠다. 고등학교 때까지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다녔으니까, 도시락 반찬으로 무엇을 쌌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억하는 것과 그대로 만드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멸치볶음과 콩자반이 자주 있었고, 가끔 소시지 반찬이 있었다. 김치를 반찬으로 싼 날은 도시락 통을 흔들지 말라는 당부까지 받았다. 랩이 등장하기 전이니, 김치가 든 도시락통이 흔들리거나 쏟아지면 책에 김치국물이 물드는 건 흔한 일이었다.


엄마가 만들었던 멸치볶음은 고소하면서 맛있는데, 내가 만들면 비리고 딱딱하고 가끔은 새까맣게 탔다. 콩자반은 또 어떤가.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하고 달콤했던 콩자반을 내가 만들면 딱딱해서 이가 부러질 것 같은 돌덩어리로 변했다. 진미채 볶음은 양념이 겉돌았고, 계란말이를 하다가 실패해서 스크램블로 급선회했다. 할 수 있는 몇 가지 반찬을 돌려막으면서 도시락을 쌌다.


내 관심사는 다른 사람이 싸 온 반찬이었다. 어떤 반찬은 정말 기가 막히게 맛이 좋았고, 또 어떤 반찬은 내가 만들어 먹고 싶을 정도였다.

“이거 진짜 맛있다. 어떻게 만들어?”

그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 하면, 그 중에 직접 반찬을 만드는 사람은 나뿐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반찬을 만드는 사람과 같이 살았다. 엄마나 아내가 만든 반찬을 싸왔으므로, 다른 집에서 어떤 음식을 어떻게 해 먹는지 살펴볼 귀한 기회였다. 가끔 그 중에서 어떤 반찬을 내게 선물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취생에게 반찬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사람들의 배려였다.


“엄마, 콩나물 어떻게 무쳐?”

“그냥 데쳐서 양념하고 조물조물 버무려.”

“무슨 양념, 얼마나 데쳐? 조물조물은 어느 정도야, 5분? 10분?”

“무슨 양념이라니, 온갖 양념이지.”

엄마는 늘 하던 음식이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나는 늘 먹던 그 맛을 내려고 했지만 몇 번이나 실패해서 알려달라고 하기 일쑤였다.

내가 먹어왔던, 내게 익숙한 맛을 먹고 싶었다. 그런데도 잘 안 되었다. 대충 흉내는 냈지만, 뭔가 부족했다. 그래서 나물은 거의 안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친구가 내 자취방으로 라면 상자 두 개를 들고 왔다.

“이게 뭐야?”

“어머니가 너 주라셔.”

“나한테?”

“응.”

상자 안에는 온통 반찬이 가득했다. 내가 만들다가 포기한 나물들, 물렁하면서도 살짝 단단한 콩자반, 비린내가 나지 않는 멸치볶음, 물기가 없는 어묵볶음, 집에서 담근 고추장과 된장, 직접 짠 참기름과 들기름 등등. 꾸러미를 열어 본 나는 당황했다. 내가 이름을 맞출 수 없는, 생전 처음 먹는 나물도 있었다.

“이걸 왜?”

“자취한다니까 주시던데.”

그러니까, 내가 굶을까봐 혹은 제대로 못 먹을까봐 바리바리 싸주셨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온 꾸러미에 든 음식은 내가 평생 먹어온 음식과 조금 달랐다. 맛은 있는데,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 존재했다.


어쨌든 그 꾸러미로 남자친구를 다시 보게 되었다. 늘 반찬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나에게 한동안 걱정없이 지낼 반찬을 안겼으니까. 한동안 반찬 걱정도 안 했고, 도시락도 즐겁게 쌌다. 이 꾸러미가 내게 준 행복을 잊지 않아서 지금도 반찬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나누기도 한다. 이것이 장점이라면, 단점도 분명히 존재했다.


사람이 먹어온 음식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고 한다. 나는 콩잎과 가죽나물 장아찌를 먹는 경상도 사람이고, 반려는 홍어삼합과 콩나물 잡채를 먹는 전라도 사람이었다. 그 꾸러미에도 느껴진 차이는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바로 그 차이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자취와 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