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와 접시

프리랜서의 밥상

by 김하은


지금까지 내가 차린 밥상이 몇 번인지 계산해보려다 금방 포기했다. 하루에 세 끼만 차린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일곱 끼, 여덟 끼를 차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밥상에도 처음이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면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던 때 말고, 오롯이 나 혼자만을 위해 밥상을 차렸던 그때로 돌아가고자 한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부모와 분리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생활비는 타서 쓰고 있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아껴 쓰면 지낼 만했다. 그러다가 취직을 하면서 내 생활비는 내가 벌어서 쓰겠노라고 선언했다. 부모님께는 큰 소리를 쳤지만, 월급이 얼마 되지 않는 터라 걱정스러웠다. 그 월급으로는 도저히 하숙비를 낼 수 없었다.


처음에는 친구 집에 얹혀서 몇 달을 지냈고, 친구가 마련해 둔 살림살이를 썼다. 그곳에 있는 내 물건은 책들과 옷가지, 이부자리, 컵 두 개뿐이었다. 친구는 언니와 함께 자취를 오래 했기 때문에 밥상을 그럴싸하게 차렸다. 내 첫 요리 선생이었던 친구는 간단하면서 빨리 해먹는 음식을 좋아했다. 아침에는 토스트와 잼, 우유와 과일을 먹었다. 점심은 각자 해결했고 저녁은 밥과 간단한 찌개나 국, 집에서 가져온 반찬을 먹었다. 그러다 가끔 반찬을 만들었는데, 우리가 만든 반찬은 간혹 타거나 설익어서 웃기는 맛이 나곤 했다. 그래도 구색을 갖추어 먹으려고 애썼다. 둘 다 건강하게 오래 버티자는 목표를 갖고 있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 독립하겠다는 후배와 의기투합해서 방을 얻었다. 가진 돈을 탈탈 털어서 구한 집은 반 지하의 방 한 칸이었다. 그 집은 햇볕이 들어오는 창이 없었고, 부엌이 작았고, 화장실은 마당으로 돌아나가야 했다. 작고 초라한 방이었지만 후배와 내겐 독립의 상징이었다. 내 돈으로 벌어서 구한 집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이삿짐을 나르던 선배들 몇 명이 후다닥 짐정리를 마쳤다. 가진 게 별로 없어서 사실 정리랄 것도 없었다. 중고로 산 냉장고에는 김치만 있었고, 다른 건 아예 없었다. 숟가락은 후배가 집에서 가져왔고, 그릇은 내가 샀다. 냄비와 프라이팬 등을 사서 부엌에 정리한 뒤 뿌듯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드디어 독립이다! 내 돈으로 마련한 방 한 칸!


기분 좋게 선배들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싸고 푸짐한 백반집에서 밥을 먹었고, 남은 반찬을 그대로 놓고 일어섰다. 그런 뒤 선배들이 맥주를 사겠다고 했다. 말로는 독립을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짐을 옮기면서 우리 살림살이가 얼마나 곤궁했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선배가 자주 가던 카페에서 맥주를 마셨는데, 선배가 카페 주인에게 우리 둘을 가리키며 얘들이 방금 독립했다고 알렸다. 그러자 카페 주인이 우리에게 물었다.

“컵은 몇 개 있어요?”

“두 개요.”

그건 내가 갖고 있던 컵 전부였다.

“그럼 국그릇은?”

“국그릇이랑 밥그릇은 네 개씩 있어요.”

“접시는?”

“접시, 두 개 있어요. 그거면 충분하지 않아요?”

지름이 20cm인 접시 두 개였다. 그러자 카페 주인이 한숨을 쉬었다.

“생각보다 컵이랑 접시가 많이 필요해요. 내가 좀 싸줄 테니까, 그걸로 시작해봐요. 독립을 축하합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그릇장을 뒤지더니, 맥주회사 로고가 선명한 유리잔 열 개와 접시 대여섯 개를 주었다. 접시들은 대부분 커피잔 받침이었다. 커피잔이 깨져서 쓸 수 없는 받침을 따로 두었는데, 처음 독립한 사람들에게는 요긴할 것이라며 챙겨주었다.


그때는 접시의 용도를 잘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접시를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접시는 무언가를 담는 그릇이다. 국이나 밥처럼 오목한 형태는 아니지만, 편평하면서 살짝 안으로 기울어져서 음식물이 쏟아지지 않게 한다. 과일, 김, 달걀 프라이, 떡, 과자, 토스트, 식빵, 치즈 등을 담을 수 있다.

그리고 요리를 준비할 때 재료들을 정리하는 그릇으로 쓸 수 있다. 큰 접시일 경우에는 더 많이 담을 수 있다. 두 가지 요리를 할 때는 큰 접시 두 개, 세 가지 요리에는 세 개에 나눠 담는다. 한 접시에 놓인 재료들은 한 가지 요리에 모두 쓰인다. 이렇게 분류하는 방식은 손님이 많이 오는 날 정신이 혼미해지기 쉬운 요리사에게 딱 좋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인절미를 자르는 도구로 쓴다.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시댁 식구들은 떡을 말 단위로 방앗간에서 해서 덩어리로 나눠가졌다. 큰 떡 반대기를 나눌 때는 접시를 세워서 접시날을 이용한다. 그러면 칼처럼 날카롭진 않지만 인절미를 자르기엔 충분하다. 가끔 쑥떡이나 찰떡을 덩어리로 선물 받을 경우에 이 방법을 쓴다.

이처럼, 내게도 ‘접시가 충분하지 않아요?’ 하고 물어볼 때가 있었다. 그 접시가 깨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접시 한 개를 채울 반찬도 못 만들 때가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밥상이 신기했다. 내 손으로 밥을 하고, 월급을 타는 날에는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를 끓였다. 뭘 잘 해먹겠다는 의지보다 굶지 않겠다는 의지가 더 강했다.

그래서 자취할 때 어떤 요리를 만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달걀 프라이와 라면, 밥, 김치찌개가 최선이었다. 그리고 뻔뻔함을 몸에 익혔다. 늘 빈 통을 들고 다니면서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남은 반찬을 싸왔다. 그 반찬으로 한 끼에서 두 끼를 해결했다.

그때는 밥상이 신기했다. 혼자서 하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오이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게 다인 밥상이어도 좋았다. 밥상은 요리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꼼지락에 가까웠다.


지금도 카페에서 받은 접시가 내게 남아 있다. 유리컵은 진작에 깨졌고, 접시도 깨졌지만 딱 한 개가 아직 남아 있다. 그때 내게 접시와 컵이 더 필요하다고 알려줬던 주인은 돌아가셨지만, 커피잔 받침도 접시로 쓸 수 있음을 깨닫게 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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