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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은 Apr 10. 2021

같은 재료로 다른 음식을 만들듯이

장바구니에 담아오는 채소들은 늘 비슷하다. 마트에 나오는 채소들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협에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시기를 잘 맞추면 보리순, 야콘 등 마트에서 보지 못한 식재료들을 구할 수 있다. 

어쨌든 이렇게 장을 본 것으로 내가 먹을 밥상을 구성해야 한다. 마치 글을 쓰기 위해 소재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     


글을 쓰는 재료는 나나 다른 작가들이나 비슷하다. 같은 시대를 관통하면서 살고 있으며, 세대간 차이도 비슷하게 느낀다. 하지만 쓰는 방식이나 결과로 나타나는 작품은 많이 다르다. 그 이유는 작가마다 살아온 방식과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복, 호빵, 슬리퍼.

이 세 단어만으로 작품을 구상해야 한다면 꽤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어떤 작가는 호빵을 너무 먹고 싶어서 슬리퍼를 신고 구멍가게로 나왔는데 호빵 대신 내복을 사는 이야기를 쓸 수 있다. 또 어떤 작가는 편의점에서 호빵을 사려다 내복만 입은 변태가 나타나 슬리퍼로 뺨을 때리는 것으로 쓸 수도 있다. 한겨울에 내복과 슬리퍼 차림의 아이가 울면서 거리를 돌아다니자 지나가는 사람이 이 아이를 편의점에 데려가 호빵을 사 먹이고 자초지종을 들은 다음 부모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다고 쓸 수도 있다. 혹은 내복만 입은 사람이 돌아다녀서 경찰에 신고했는데, 이 사람이 사실은 …….     


이런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은 모두 비슷한 소재에서 출발한다.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삶의 중심에 두는지에 따라 글의 방향이 많이 달라진다. 이에 따라 주제도 달라진다. 마치 비슷한 재료들을 장바구니에서 꺼냈지만, 어떤 사람은 매일 똑같은 시금치 무침만 만들고, 어떤 사람은 시금치 파스타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전에 다르게 생각하려고 애쓴다. 되도록 가볍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안 될 때는 장바구니를 떠올린다.  

   

“그래, 내가 시금치 한 단을 채 못 쓰던 때도 있었지!”  

   

처음 시금치 한 단을 샀을 때, 이 시금치를 무치면 다 못 먹고 쉬어서 버리곤 했다.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는 반은 된장국에 넣고 반은 무쳤다. 요즘은 무치는 양념을 이렇게 저렇게 바꾼다. 된장을 넣기도 하고, 두부를 으깨고 물기를 빼서 포실포실하게 만든 다음 소금 양념을 해서 같이 무치기도 하고, 국간장과 참기름으로 기본 나물 양념을 하거나 초고추장으로 비빌 때도 있다. 기본 양념을 해서 무칠 때는 잘 줄어들지 않던 시금치 나물이 양념이 조금 달라지면 반찬통에서 빨리 줄어든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글이 잘 안 써지면 양념을 바꾸듯 방법을 바꿔야 한다. 생각을 달리 하고, 인칭을 바꾸고, 인물을 좀더 움직이게 한다. 인물이 움직이면 사건이 생기고, 그러면 글이 훨씬 재밌게 변한다. 양념을 바꾸면 맛이 변하듯이.     


나는 지금, 글에 칠 양념을 바꾸는 중이다. 아주 흥미로운 맛으로 탄생하리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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