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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은 Apr 08. 2021

밍글라바 미얀마, 밍글라바 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나도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무상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내겐 술 한 번 마시면 사라질 돈이지만 그 아이에겐 학교를 계속 갈 수 있는 돈이 된다니, 이 또한 뜻깊은 일이 아닐까 싶었다.      


첫 후원 어린이는 아프리카에 살고 있었다. 2년쯤 편지가 오가더니 갑자기 그 아이와 가족이 행방을 감췄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 일이 가끔 있는 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어린이를 후원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나라 어린이를 후원할 때에는 중간 단체를 거친다. 이때 신뢰할 만한 단체와 함께 해야 아이에게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다. 

내가 아이에게 편지를 써서 단체로 보내면, 단체에서 영어로 번역해서 그 나라로 보낸다. 그러면 그 나라에 활동하는 사람이 다시 그 나라 언어로 번역해서 아이에게 준다. 아이가 보내는 편지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친다.     


첫 번째 후원 어린이의 행방이 묘연해졌을 때, 다른 나라로 대상을 바꾸겠다고 했다. 그러자 소개받은 아이가 바로 미얀마에 사는 툰이다. 툰은 초등학생일 때부터 우리 가족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뚱한 표정으로 사진을 보내오던 툰이 어느 순간부터 활짝 웃었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에 대해 조금씩 밝혔다.     


한 번은 학교에 입고 가는 교복 사진을 보내왔다. 하얀 셔츠와 ‘롱지’라는 녹색 치마였다. 천 가방을 매고 학교에 다니는 툰을 상상하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얼굴에 흰 따나카를 바른 사진도 있었다. 머드팩을 바른 것처럼 흰 색이 뺨에 칠해져 있었는데, 따나카는 나무껍질을 갈아서 나온 즙을 쓴다고 했다.      


우리 가족이 낸 후원금은 툰이 학교를 다니는 데 쓰였고, 마을에 우물을 파는 데 쓰였고, 마을 어린이들의 예방접종에 쓰였다. 그리고 물축제 때 양동이로도 지급되었다. 툰은 후원자님이 보내준 양동이로 물축제가 더 의미 있었다고 편지에 썼다.     


나는 툰을 멀리 있는 친구이자 막내라고 생각했다.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 기회가 된다면 만나겠노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툰이 사는 곳은 양곤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이었다.     


툰이 살고 있는 미얀마를 알고 싶었다. 그러다가 미얀마에서 망명한 소모뚜 씨를 알게 되었다. 소모뚜 씨를 통해 미얀마의 정치 상황을 자세히 들었고, 우리 툰이 정치적 억압이 심각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소모뚜 씨를 통해 미얀마의 독특한 생활들도 배웠다.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들도 꽤 많으며 소모뚜 씨처럼 정치적 망명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묵묵히 수행하였지만 사회적 편견과 혐오는 곳곳에 넘쳤다. 그런 표현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 사회가 진짜 성숙하려면 어떤 자세로 바뀌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소모뚜 씨와 함께 미얀마에서 온 노동자들이 모이는 자리에 간 적 있다. 그분들이 직접 만든 요리를 함께 나눠 먹었는데, 우리 음식과 비슷하면서 독특한 맛이 살아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메기로 육수를 낸 쌀국수를 좋아한다. 베트남식 양지 쌀국수가 아니라 메기 쌀국수는 담백하고 국물까지 깔끔하다. 밥은 꼭 오른손으로 먹는다는데, 외국인인 우리에게는 숟가락을 권했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먹는 건 익숙하지 않을 것이라고 배려해주었다.     


그리고 지금 미얀마에는 군부가 시민들에게 총칼을 휘두르고 있다. 사망자 수가 급격하게 늘었고, 20대 청년들이 시위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후원이 중단된 툰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아이가 저 전선 앞줄에 서 있을까? 일거리를 찾아 양곤으로 나왔다가 친구들과 함께 어깨를 겯고 구호를 외치고 있을까? 아니면 혹시…….

미얀마의 젊은이들은 툰과 비슷한 또래라서, 내 눈에는 모두 툰으로 보인다. 제발 무사하기를, 별 일 없기를, 늘 노심초사하면서 국제 뉴스를 본다. 생명을,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진 미래는 암울하다. 광주민주화 항쟁이 일어난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발포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우리 나라에도 있지 않은가.     


툰은 편지 앞머리에 늘 ‘밍글라바!’라고 꼬불꼬불 미얀마어로 썼다. 밍글라바는 ‘안녕하세요’라기보다는 ‘축복입니다.’라는 뜻에 가깝다. 주로 외국인을 만날 때나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인사할 때만 쓰는 표현이다.     


나는 툰을 만나면서 미얀마를 알게 되었고, 미얀마의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평화롭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미얀마의 무고한 생명들이 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제발, 학살을 멈추라고 외치고 싶다. 

대한민국에서도 미얀마의 시민들을 후원하는 여러 움직임들이 있다. 모쪼록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거기, 툰이 있다.

내 딸, 툰과 그 친구들이 있다.     


밍글라바 미얀마, 밍글라바 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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