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시작되었다. 부엌을 채운 습하고 더운 공기는 음식을 하기에 두려움을 갖게 한다. 여름철이면 집에서 해 먹는 비빔국수와 냉면 광고를 많이 접하는데, 그 또한 면을 삶아야 하기 때문에 망설일 때가 있다.
오늘 점심 때에는 부엌에 들어서자마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런 더위라면 뭘 해먹기도 힘들다. 특히 불을 써야 하는 요리라면 더욱 엄두가 안 난다. 비빔국수도 다른 부엌에서 누군가 해서 갖다줬으면 하고 바랄 정도다. 이럴 때는 불을 쓰지 않는 요리를 하는 게 좋다. 나물이 아니라 샐러드를 하고, 볶음보다 무침을 만드는 것이 여름을 잘 견디게 한다.
그런데 무침을 할 때 항상 망설인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채소마다, 요리마다 양념을 조금씩 달리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요리가 하기 싫을 정도로 더울 때는 단순한 게 최고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간편하게라도 해 먹는 게 좋지 않은가. 특히 프리랜서로 일해야 하는 처지라면 부엌에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내 일에 집중할 시간을 버는 결과와 이어진다.
다행히 우리 가족들은 매콤한 맛을 좋아한다. 매운 맛을 즐기는 정도를 따지자면, 나는 맵기 2, 반려와 둘째는 맵기 4, 첫째는 맵기 5.5 정도로 맵게 먹는다. 그래서 청양고추를 채소 칸에 두면, 금방 떨어진다. 입맛 없을 때 된장에 청양고추를 찍어먹거나 찌개에 넣어 먹으면 입맛이 돌아온다.
청양고추를 활용한 반찬들 가운데 여름에 만드는 반찬이 있다. 바로 청양고추 된장무침이다. 청양고추를 잘 씻고 꼭지를 딴다. 그런 다음 어슷 썬다. 그러고는 어슷 썬 청양고추에 된장과 참기름을 넣어서 비빈다. 보통 청양고추 열 개 정도면 된장 한 숟갈 정도를 넣는데, 집집마다 쓰는 된장의 염도와 되직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처음 비빌 때는 조금씩 넣어가면서 양을 가늠하면 된다. 이 요리는 불을 전혀 쓰지 않는데다 입맛을 돌아오게 하는데 딱이다. 매운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삭이 고추나 풋고추를 비벼도 괜찮다. 이것만으로도 훌륭한 반찬이 된다.
그 다음으로 많이 쓰는 방법으로 ‘비빔장’을 권한다.
사실, 불 옆에 서기 싫을 정도로 더울 때는 만사가 귀찮다. 그렇지만 끼니는 계속 이어져야 하고 요즘처럼 면역력이 중요할 때는 채소를 다양하게 먹어야 하기 때문에 칼을 잡는다.
비빔장을 한 번 만들면 유리병으로 두 병 정도 나오는데, 이 정도면 온갖 채소들을 다 비빌 수 있다.
오이무침을 만드는 방법 중에는 어슷 썬 다음에 소금에 살짝 절였다가 다시 물기를 짜서 만드는 방법이 있는데, 그러면 물기가 안 나오긴 하겠지만 여름에는 이 방법도 생략한다. 조금 만들어서 금방 무쳐서 먹으면 물기가 생겨도 무시할 만한다.
무생채도 젓갈을 넣어서 무치거나 채 썬 무를 고춧가루로 미리 물들인 다음 양념을 하는 방법을 쓰는데, 이 또한 여름에는 건너뛴다.
오이도 어슷 썰고, 무는 채썰어서 비빔장에 비빈다. 이 비빔장은 굳이 만들어서 쓰는 편인데 한 번 만들면 두달 동안 쓸 수 있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추천하고 싶다.
비빔장 – 고추장 2컵, 고춧가루 1/2컵, 식초 1컵, 설탕 1/2컵, 물엿 1/2컵, 간장 1/4컵, 양파 간 것 3큰술, 다진 마늘 2큰술, 소금 3/4큰술, 연겨자 1/2큰술
내가 만들어 쓰는 비빔장은 위와 같은 레시피로 만든다. 연겨자가 살짝 들어가 있어서 채소나 면과 비볐을 때 독특한 맛이 난다. 그리고 채소에 버무리면 물기가 나와서 살짝 묽어지므로 먹을 때는 적당한 맵기가 된다. 맵기 정도 2에 해당하는 나도 잘 먹을 수 있다. 이 2 정도는 라면국물은 먹을 수 있지만, 매운 라면국물은 즐기지 않으며 청양고추 한 개를 다 먹지 못하고, 아주 매운 고추를 먹으면 딸꾹질을 심하게 하는 정도다.
더운 여름, 불을 쓰지 않아도 되는 반찬들로 식탁을 채워보자. 기력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입맛을 붙드는 것이 필요하다. 올 여름은 몹시 무덥다고 하는데, 비빔장으로 시간을 아끼고 건강도 챙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