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의 밥상
내 밥상을 제대로 차리겠다 마음을 먹었으나, 과연 어디에서 시작하고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막막했다. 집으로 손님이 찾아올 때는 더 난감했다. 특히 시댁 식구들이 우리 집에서 밥을 먹겠다고 하면 갖은 핑계를 댔다.
“제가 요즘 좀 힘들어서요.”
이건 큰애를 임신했을 때 핑계였고,
“애 때문에 정신이 없어요.”
이건 큰애가 돌 되기 전까지 댔던 핑계였고,
“일이 밀려서요.”
이건 수시로 했던 핑계였다.
사실 그때는 우리 집에서 먹으나 시댁에서 먹으나 반찬이 똑같았으므로 별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 집에는 그릇이 많지 않아서 계속 그릇을 씻고 닦으면서 대접을 해야 했다. 한 번 손님이 왔다가면 나는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밥을 먹을 겨를이 없었다. 심지어 내가 요리를 하지 않을 때도 그랬다!
한식은 기본적으로 밥과 국, 반찬이 놓인다. 열 사람이 밥을 먹으면 밥그릇 열 개와 국그릇 열 개, 수저가 열 벌, 반찬 그릇이 또 여러 개 놓인다. 그런데 그것만 할 수 있냔 말이다. 그래도 명색이 손님이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 건데 뭔가 특별한 걸 차려야 한다. 거기에서 고민이 깊어졌다.
내가 고심해서 차린 음식들은 돌이켜보면 대부분 막걸리나 소주를 마실 때 먹었던 안주였다. 골뱅이 무침을 매번 차릴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때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서 요리책을 몇 권 빌렸다.
‘집에서 근사하게 차리는 잔칫상’, ‘집들이 요리’ 등등 여러 권을 빌렸다. 제목만 보면 요리 초보인 내가 근사한 잔칫상이나 집들이 요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일단 모르는 재료들이 많이 등장했고, 그 재료들 중에는 근처 마트에서 살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조리 도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또 한 컵의 기준이 다른 책도 있었다. 어떤 책에는 200cc가 한 컵, 또 어떤 책에는 미국식 한 컵인 250cc가 기준이었다.
칼질이 서툰 초보가 하기엔 무리인 채 썰기, 구하기 힘든 재료, 복잡한 조리과정 등등 할 수 없는 이유가 너무 많았다.
몇 가지 요리를 따라 해보기도 했는데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요리 하나를 만들고 나면 재료가 많이 남았다. 남는 재료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늠할 수 없는데, 속절없이 남는 재료를 째려보면서 저걸 또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 상해서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요리를 잘 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네가 잘 차리는 게 궁금하지 않을 거야. 그냥 차려.”
“아이, 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그래도 굳이 뭘 하고 싶으면…….”
“싶으면?”
“큰 접시에 음식을 차려. 몇 개만 놓아도 상이 꽉 차게. 그러면 여러 개 안 해도 되잖아.”
와우! 나는 그런 접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 여러 요리를 만들 게 아니라, 한두 가지만 하고 큰 접시에 놓으면 된다.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내 밥상을 제대로 차리고 싶었고, 그 밥상을 구성하지 못하는 무력감에 지쳐 있었다. 당시 반려는 일이 많아서 늘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했기 때문에 독박 육아를 하던 때였다. 그러니 내 밥상에 대한 간절함과 함께 약간의 우울증도 겹쳐 있던 때였다.
요즘 손님이 온다고 하면 예전처럼 발을 동동 구르지 않는다. 나도 일하느라 바쁘니까 있던 반찬을 꺼내서 다시 접시에 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싱싱한 샐러드를 곁들이긴 한다. 먼저, 샐러드용 채소들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물기를 뺀다. 여기에 곁들이는 소스로 두 가지를 사용한다. 첫 번째는 발사믹 식초(포도식초)와 올리브유에 매실청을 살짝 섞어서 뿌린다. 두 번째 소스는 플레인 요거트에 매실청(집에 있는 어떤 청도 가능하다)를 조금 섞어서 뿌린다. 마트에서 파는 온갖 소스들도 다 훌륭하지만, 이 정도만 뿌려도 먹을 만하다. 플레인 요거트는 채소와 잘 어울린다.
아무튼, 책으로 요리를 배우다가 좌절을 거듭하다가 동사무소(지금의 주민자치센터)에 등본을 떼러 갈 일이 생겼다. 그때 큰애를 업고 있었고, 등본을 떼고 나오다가 게시판을 보았다. 그 건물에 주민들을 위한 여러 강좌가 열린다는 홍보물이 붙어 있었다. 그곳에 ‘한식조리사 자격증반’이라는 강좌도 있었다.
나는 나왔던 동사무소로 다시 들어갔다.
“한식조리사 자격증 수업 신청할 수 있어요?”
“네, 신청 가능해요.”
“언제부터 하나요?”
“다음 주 화요일부터요. 일주일에 두 번이에요. 화, 목입니다.”
“신청할게요.”
등에 업힌 애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일단 부딪혀보자! 뭐, 어떻게 되겠지. 그렇게 조리의 세계로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