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더하기

프리랜서의 밥상

by 김하은

제대로 된 요리 몇 개만 배울 줄 알았는데, 한식 조리사 자격증 반은 의외로 까다로웠다. 이 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험에 대비하는 과정을 배웠다.

조리사 시험 때는 화구, 즉 가스레인지가 1인당 1개만 배정된다. 한정된 시간에 2개 요리를 제출해야 하며, 요리는 시험장에서 공개된다. 실기 시험을 치르려면 필기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첫 시간에 ‘필기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말을 들었고, 시간에 맞춰서 요리를 하는데 서툰 초보자에겐 힘든 과정이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 때 내 밥상의 기본을 모두 배웠다.


“조리 과정에서 어떤 돌발사항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늘 안전화를 신어야 합니다. 안전화는 발 전체를 감싸는 형태이고요, 집에서 조리하실 때는 꼭 슬리퍼를 신으세요.”

이 당부는 여러 번 나를 살렸다.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깼을 때 발을 보호했고, 어쩌다 칼을 놓쳐서 떨어뜨렸을 때에도 발등에는 상처를 입지 않았고, 기름이 튀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칼은 도마 위에 가로로 놓으시되 칼날은 나를 향하게 놓으세요.”

이렇게 칼을 놓으면 조리 과정에서 칼을 치더라도 내가 다치지 않을 수 있다. 두 사람 이상이 조리대에 서는 경우에는 상대방의 안전도 고려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조리 순서를 깨우쳤다. 조리사 시험 때 2가지 요리를 짧은 시간에 해야 하고, 화구는 한 개뿐이기 때문에 순서를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한순간 판단을 잘못하면 접시 두 개를 채울 수 없다. 그래서 조리 순서를 재배치해야 한다.


두 가지 요리를 하든 세 가지 요리를 하든, 모든 재료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배치한다.

‘씻고, 불리고, 절이고, 데치고.’ 이 네 가지 순서를 ‘씻, 불, 절, 데’로 외웠다. 『한식, 우주를 담은 밥상』(해와 나무, 2012)를 쓸 때, ‘씻, 불, 절, 데’를 요리 도깨비 쫄기가 알려주는 것으로 써먹었다.

이 순서를 익히면 곤란에 빠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표고나물과 오이소박이를 만든다. 먼저, 재료들을 씻는다. 그 다음 말린 표고를 불린다. 그 사이에 오이에 칼집을 넣고 소금에 절인다. 오이 소박이 소를 양념하고, 불어난 표고를 꼭 짜고 양념을 해서 볶는다. 그런 다음 절인 오이를 짜고, 소를 집어넣는다.

두 가지 이상의 요리를 할 때는 어떤 재료가 어디에 들어가는지 확실하게 정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물을 다 볶거나 무쳤는데 다진 파를 넣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황당한 일이 생긴다.


그 다음으로는 손가락을 자처럼 이용한다. 손톱을 바짝 깎았을 때, 내 새끼손가락 손톱은 세로로 1cm다. 그리고 손가락의 마디와 주름으로 어디에서 어디까지 2cm, 3cm, 5cm를 외웠다. 시험장에는 자를 가져갈 수 없으므로 계량숟가락에 자처럼 눈금이 있는 것도 반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손을 이용해 정확한 수치를 익혀야 했다.


나는 조리사 자격증 과정을 즐겼다. 평소 내가 얻어먹거나 사 먹거나 대충 어설프게 만들었던 반찬을 내 스스로 만들어서 기뻤다. 내 밥상을 내가 책임지는,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 과정을 배우는 동안, 큰애는 시댁에 맡겼다. 일주일에 두 번, 한 번에 두 시간 동안 나는 육아에서 벗어났다. 아이 엄마가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으로 사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게 요리를 잘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딴 다음, 제과 제빵 자격증에 도전했다. 제과와 제빵, 두 가지 시험을 치르고 나자 빵과 과자의 기본은 할 수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학원에서 함께 배우던 수강생이 내게 떡을 배우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솔깃했다. 지금까지 떡은 떡집에서 사먹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떡, 내가 먹고 싶어하는 떡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병과교육원에 등록했다. 이곳에서 떡과 한과를 만드는 수업을 들었다.


온갖 자격증과 요리를 배우러 다니는 동안, 내가 일한 돈들은 강습료와 재료비로 새어나갔다. 그리고 낯선 재료들을 실컷 만졌고, 그 재료들로 생전 처음 보는 요리들도 만들었다. 불 앞에서 요리하는 순간이 행복하고 즐거웠다. 전생에 수라간 나인이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그 사이 둘째를 가졌고, 임신한 상태로 궁중음식을 배웠다.

처음 요리를 배우는 과정이 자격증반이었던 까닭도 있겠지만, 집에서 독박 육아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프리랜서의 답답함을 벗어나려는 몸부림도 있었다. 요리를 배우는 동안 나는 칼질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렸다. 재료에 내 손길을 더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바꾸는 마술 같은 과정을 즐겼다.


집에서 떡을 해 먹었고, 문헌에서나 본 듯한 음식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내 밥상을 재구성하던 그때, 또 다른 전환점이 생겼다.

임신 8개월 즈음, 반려가 실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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