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과 라면

프리랜서의 밥상

by 김하은

대학을 다닐 때 생활비를 타서 썼다. 하지만 그때 아버지는 일을 그만둔 상태였고, 뻔한 형편을 아는 터라 돈이 부족하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만났고 동아리에도 나갔다. 동창들을 만나든 과 친구들과 만나든, 사람을 만나면 돈이 든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시는 게 다 돈이다. 내가 받는 생활비는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달에는 그 돈이 부족했고, 어느 달에는 아주 조금 남았다. 심지어 어떤 달에는 열흘이나 남았는데 돈이 똑 떨어져서 곤란했다. 그래서 남은 돈을 탈탈 털어 도시락 통을 샀고, 하숙집 할머니 눈치를 보며 도시락을 싸 갖고 다녔다.


반려가 실직하자, 나는 도시락을 들고 다니던 때를 떠올렸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서 가장 먼저 쌀을 한 포대 샀고, 라면도 한 박스 샀다. 그리고 나는 더 일하기 시작했다. 어떤 달은 일이 없거나 적었고, 또 어떤 달은 코에서 단내가 나도록 많았다. 그 돈으로 또 쌀을 샀다. 반찬은 한두 개만 만들었고 상당 부분은 얻어 먹었다. 반려의 실업급여가 나오는 동안은 버틸 셈이었지만, 다시 취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우리가 살던 집의 옆집이 시댁이고, 한 집 건너에 시누이가 살았다. 혹시 쫄쫄 굶을까 걱정이 되었던 가족들이 반찬을 건넸다. 그때 시부모님이 텃밭에서 키우던 채소도 우리 식탁에 자주 올랐다. 입이 짧았던 큰애는 음식을 조금 입에 대다 말았고, 나 또한 둘째를 뱃속에 넣고 일하느라 정신이 없던 때라 대충 먹었다. 요리하는 방법을 배웠지만 그걸 내 식탁으로 옮겨오진 못하던 때였다.


큰애가 잘 먹었던 반찬 중 하나가 달걀찜이었다. 대부분 달걀을 뾰족한 부분에 부딪혀서 깬다. 이를테면 싱크대 모서리라든가 그릇 모서리를 이용한다. 그런데 그렇게 깨면 달걀 껍질이 그릇 안으로 들어가기 쉽다. 달걀은 편평한 곳에 대고 깨는 게 좋다. 깬 달걀을 그릇에 놓고, 물을 깨진 달걀 껍질로 계량한다. 달걀 1개로 달걀찜을 하면 껍질은 두 쪽이 나오니, 그 두 쪽에 각각 물을 부어서 그릇에 넣고 달걀과 섞는다. 달걀과 물을 동량으로 넣고, 숟가락으로 잘 풀고, 다진 파와 소금 혹은 새우젓을 약간 넣고 섞는다. 일식집에서 나오는 몰랑몰랑하고 폭신한 달걀찜은 이보다 물을 더 많이 넣는다. 한식 달걀찜이 1대 1로 물을 넣는다면 일식 달걀찜은 1대 2로 잡는다.


쌀이 떨어지면 불안하던 시기를 견디며 임신 8개월로 접어들었다. 정기검진을 갔는데,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가 너무 작아요. 이대로라면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합니다.”

머리가 띵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잘 먹고,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

그날 병원에서 돌아오면서 펑펑 울었다. 내겐 그 두 가지가 너무 먼 이야기 같았다. 무리하지 않으려면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미 큰 애를 제왕절개로 낳은 나로서는 둘째 수술비도 걱정해야 했다.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을 때 여윳돈을 마련해 놓아야 했다.

잘 먹는 건 또 뭐람. 뭘 어떻게 해야 잘 먹을 수 있을까.


반려와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지금은 사정이 나아졌지만, 그때는 아이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면 병원비로 고생하던 때였다.

“일단 애는 건강해야지.”

그때부터 두 달 동안, 돼지갈비를 자주 먹었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를 지켜야 했고, 나 또한 건강하고 싶었다.

둘째를 낳던 날, 핏덩어리 아이를 보면서 다짐했다.

“절대 굶기지 않을게.”


프리랜서가 가족들을 굶기지 않으려면, 열심을 다해야 한다. 때로는 열심을 다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긴다. 몇 년을 품었던 원고였지만 책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고, 나오더라도 잘 팔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굶지 않을 방법을 새롭게 짜야 했다. 지금까지 배웠던 모든 요리들을 총동원해서 내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 방법이 필요했다. 비싼 식재료가 없어도,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식탁에서 웃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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