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예찬

by sueyon

며칠 전 넷플릭스에서 새로운 일본 드라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커피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 여주인공인 드라마로 심장이식을 받은 사람이 심장을 준 사람의 기억을 공유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내용이 좀 진부하게 느껴졌고 애초에 로맨스는 별로 제 취향이 아니지만 일단 주인공이 내가 아는 배우들이었고 무엇보다 예고편에 나온 풍경이 눈길을 끌어서 보게 되었습니다.


배경이 하와이와 홋카이도라서 그런지 파도가 밀려드는 바다를 위에서 크게 보여주기도 하고 넓은 바다의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일몰도 보여주고 바닷가 바로 옆에 위치한 카페를 만남의 장소로 보여주고 오래 된 로스팅머신으로 커피를 볶는 것도 보여주고 드리퍼를 이용해 한적한 기차역에서 커피를 내리는 것도 보여주는데 보고 있으면 커피의 향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은 장면들이었습니다. 하나같이 굉장히 아름다우면서도 자연의 경이를 느끼게 하는 정말 멋있는 장면들로 마치 바다와 커피를 좋아하는 저의 취향에 맞추어 작정한 것처럼 만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드는 장면들이었습니다.


저는 늘 커피를 마십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커피를 내리고, 수업이 일찍 있는 날이면 사무실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카페인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 체질인지 오후에 마셔도 자기 전에 마셔도 잠이 안 와서 고생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잠시 일을 쉬었을 때는 이왕 마시는 커피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자는 마음에 바리스타 수업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 비해서 커피의 맛까지 잘 구별하지는 못합니다. 가끔씩 다른 때보다 향이 좋게 느껴지거나 커피가 굉장히 입에 잘 맞는다고 느껴지는 경우는 있지만 커피 콩의 산지나 종류에 따른 커피 맛을 구별하지는 못합니다. 파나마게이샤 커피가 맛있다는 말을 듣고 한 번 구입해 본적이 있는데 처음에 마셔보고 맛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 맛이나 향을 기억하지 못해서 커피 시음을 한다면 절대 맞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일 비싸고 맛이 훌륭하다는 루왁커피도 그다지 끌리는 편은 아닙니다. 거기다가 그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게 된 이후로는 그렇게까지 해서 마실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고집하는 이유는 아마도 커피 회사 광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커피광고 하면 아침에 일어나 우아하게 요가를 하고나서 커피를 내리며 하루를 시작하거나, 창문 앞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비 오는 풍경을 감상하거나, 날씨 좋은 가을 날 전망 좋은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하는, 그런 광고 말입니다. 아마도 커피 자체보다는 광고에서 느껴지는 여유를 가지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커피 한 잔 내리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기껏해야 물을 끓이는 시간과 드리퍼에 천천히 붓는 시간, 커피가 내려지는 시간해서 합해야 10분도 안 걸리는 시간이니 말입니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만큼은 일도 좀 쉬고 생각도 쉬고 광고처럼 창문 옆에서 하늘도 바라보고 옆 사람과 이런저런 잡담도 하면서 잠깐의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실제로는 이렇습니다. 수업이 일찍 있는 날은 시간 맞춰 가느라 아침에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실 때는 늘 시간과 일에 쫓겨서 커피를 내린 것도 잊고 있다가 나중에 찬 커피를 물 대신 마시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이 너무 많아서 늦게까지 해야 할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려고 커피를 찾게 됩니다. 제가 원하는 여유와는 전혀 동떨어진 생활입니다. 그제서야 제가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맛있거나 좋아해서가 아니라 커피를 내리면서 갖는 생활의 여유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친한 친구와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그냥 수다를 떨면서 계절을 느끼는 여유가 있으면 하는 생각이 점점 커집니다. 아무때나 불러내도 괜찮을 친구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넷플릭스 드라마는 배경만 딱 제 취향 저격이었습니다. 아직 학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자꾸 바다를 보고 싶게 만듭니다.

작가의 이전글3개의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