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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갓난아기는 안 키워봤어도, 어른아기 열 키우는 중

by 박신영


내가 관리하는 층 어르신들은 모두 열 분. 평균 나이는 87.4세다.

나는 쉰 살, 미혼이고 아이를 키워본 적은 없다.


흔히 “늙으면 아이가 된다”고 하는데

나는 매일 그 사실을 마주하며 일한다


처음엔 어르신들께 깍듯하게 존댓말을 썼다.

“어르신, 잘 주무셨어요?”

출근하면 인사를 드렸고,

“머리 아프세요? 눈곱 닦아드릴게요~”

이런 말들도 정중하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말한다.

“머리 아파?”

“눈곱 봐라~ 으이그, 눈곱이 내려앉아 말랐네, 말랐어.”

“알았어, 해줄게. 있어봐~”


원칙대로라면 이러면 안 된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르신들을 가벼이 대하거나 무시해서 그런 건 아니다.


나도 10년간 파킨슨병을 앓으시다

마지막 2년 반은 와병 생활을 하셨던

어머니의 보호자였다.

2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 집으로 오셔서 도와주셨던 요양보호 선생님이 계신다.

목소리도 크고 말씀도 많으셨다.

요즘 말로 ‘극E 성향’.

그분은 지금의 나처럼 엄마에게 아주 편하게 말을 하셨다.


“할매!! 운동을 해야 또걷지 "

“밥을 잘먹어야 딸래미가 걱정을 안해!!"


처음엔 낯설었지만,

엄마는 그런 분이 오히려 더 편하셨던 것 같다.

조용하고 점잖은 분보다

그렇게 다가와주는 사람이

마음에 더 와닿았던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요양원에서는 대부분의 대화가

일방적으로 흘러간다.

열 분 중 인지가 분명한 분은 두 분뿐이고,

나머지는 경도 또는 중증 치매를 앓고 계신다.

그중 두 분은

눈을 뜨고 숨만 쉬실 뿐

의사소통이 거의 어렵다.


아침마다 혈압과 체온을 측정할 때면,

“혈압 잴 거야~ 열이 좀 있네~”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시면

“알았어, 알았어~ 아픈 거 아니야~”

그렇게 말을 건넨다.


대화만 들으면

마치 어린아이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식사나 간식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국물도~ 아~~”

“맛있어? 한 번만 더 먹자~”

“이거 약이야. 써. 아, 쓰다 쓰다~ 국물 자~”


한 숟갈 한 숟갈 받아 드시는 모습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

그게 이런 마음일까?


어르신들도 그 시절,

아이를 먹이고 입에 넣어주며 키웠겠지.

그걸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동시에 한끼를 다드시면 안도의 맘이 들기까지한다


말로 다 표현할 순 없어도,

이 감정은 분명 많은 분들이

짐작하리라 믿는다.


평균 나이 87.4세.

나는 오늘도 어른아기들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 밖에 디게 더워~ 그치? 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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