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어르신 이야기를 씁니다.

by 박신영

이 어르신 이야기를 쓰려다 접기를 수차례, 오늘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써보려 한다.

짐작하겠지만, 떠나보낸 어르신 이야기다.


그분은 온몸에 구축이 심하고 소통은 전혀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신음소리와 숨소리만 기억에 남는다. 항상 콧줄을 꽂고 계셨고, 특히 팔 구축이 심해 늘 힘을 꽉 주고 계셨다. 두 뺨은 깊게 패였지만 눈이 참 예쁘셨다. 회색빛 테두리에 밝은 갈색 눈동자, 그 연세에도 탁함 없이 맑고 투명한 빛이었다. 말을 하지 못하셔도 무언가 여쭤보면 눈으로 대답하듯 똑바로 마주보시곤 했다. 젊었을 땐 참 미인이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으니 땀도 많으셨다. ‘육체에 갇힌 삶이 이런 걸까’ 싶어 뵐 때마다 마음이 아려왔다.


어느 날, 어르신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열이 오르내리고 산소포화도가 80%대로 떨어져 산소를 공급하며 보호자에게 연락을 드렸다. 딸들이 다녀가고, 요양원에서 임종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다시 회복하셨다. 열도 내리고 산소포화도도 안정되었다. 그러다 며칠 뒤 또 같은 증상이 나타났고, 퇴근 후 밤늦게 요양보호사 선생님 전화를 받고 요양원으로 달려갔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힘들어하시는 모습에 보호자를 다시 불렀고, 딸 세 분이 특별침상에서 함께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몇 번을 더 고비 넘기셨다.


요양 선생님들이 “누구 기다리시는 분이 있으신가 봐요” 하실 때가 있었다. 입소카드에는 아들이 두 분 계셨지만, 끝내 오지 않았다. 흔히 하는 말이라 생각했지만, 어쩌면 정말 기다리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쁜 숨을 쉬는 어르신께 산소포화도를 체크하며 속으로 여쭸다.

“어르신, 많이 힘드시죠? 혹시 아들 기다리세요?”

그러나 어르신은 눈조차 뜨지 못하셨다.


주말에 손자가 면회 온다는 연락이 전해졌다. “어르신, 모레 손자가 온대요.” 그렇게 말씀드리며 혹시 아들도 함께 오실까 기대했지만 끝내 오지 않았다. 토요일 오전, 간호팀장님께서 전체 톡으로 ‘임종 임박’ 소식을 전했다. 세수도 못한 얼굴로 차를 몰고 달려가는 20여 분, 심장이 쿵쾅거렸다. 도착했을 때 이미 5분 전, 어르신은 편히 숨을 거두신 뒤였다. 늘 힘을 주고 계셔서 찡그린 얼굴에 주름이 많았는데, 그날만큼은 힘을 다 빼신 편안한 얼굴로 누워 계셨다. “어르신, 먼 길 편히 가세요.”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잠시 후 손자들과 따님들이 도착했고, 아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운구차로 이동하는 복도 끝에서 둘째 따님이 내 손을 꼭 잡으며 울먹였다. “우리 엄마 잘 보살펴줘서 고마워요.” 그 순간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다음 날, 조문을 가야 할지 망설였다. 내가 가도 되는 자리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머뭇거리다가 결국 오후 다섯 시쯤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1층 로비에서 호실을 찾다 영정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알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사진 속 어르신은 70대쯤, 단아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은 모습이었다. ‘오길 잘했다’ 싶었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 온몸이 뒤틀린 고통의 얼굴이 아니라, 행복해 보이는 영정 속 모습이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왔다 싶었다.


큰 영정사진 속 어르신과 눈을 마주치고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다음 날 출근해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다가, 빈 침상을 보며

“어르신, 거기서는 어떠세요? 이제 아프지 않으시죠?” 맘속으로 여쭤보는 순간, 영정 속 환한 어르신 얼굴이 떠올랐다. 마치 어르신의 대답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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