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긴 소풍이었어요

by 박신영

계신 열분 어르신 모두 경증 또는 중증 치매를 앓고 계신다.

그중에서도 올해 아흔아홉, 최고령이자 가장 작은 체구를 지닌 어르신이 계시다.


그분의 삶에는 긴 사연이 있다.

6·25 전쟁 때 남편은 전장에 나갔고, 어르신은 당시 임신 중이셨다. 젊은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홀로 딸을 낳아 평생을 지내셨다. 그러나 얼마 전, 그 딸마저 먼저 떠나보내셨다.


어르신이 콧줄을 했을 때는 손이 얼마나 빠르고 섬세하신지, 제재 장갑이나 줄을 능숙하게 풀어내곤 하셨다. 작은 체구이지만 민첩하고 기민하신 분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길이 순식간에 얼굴을 스치고, 거친 욕설도 서슴지 않으셨다.

“네년은 발로 밟아 죽이고, 네년은 단칼에 쳐서 죽이고, 네년은 살려둔다.”

말씀하시며 손바닥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시는데, 우리 요양 선생님들은 오히려 그 모습이 귀여워 머리맡에 모여 웃곤 했다.


얼마 전 어르신은 “저고리감 한 감 좋은 거 갖고 온나.” 하셨다.

“뭐 하시려고요?” 묻자, “엄마 보러 갈라고.”

순간 멍해졌다가 곧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런 어르신이 요 며칠은 잠만 계속 주무시고, 한두 끼 드시면 세네 끼를 거부하신다. 혈압이나 체온, 혈당에는 이상이 없지만 목소리는 바람만 스칠 뿐 소리를 내지 못하신다.

마치 장작이 다 타고 남은 불씨가 바람에 한 번씩 깜박이는 듯 위태롭게 보인다. 욕설을 퍼부으시던 모습조차 그리울 만큼.


문득 답답하고 먹먹한 마음이 들어

열 분의 어르신을 한 버스에 태워 가고싶은데 모시고 가고싶단 엉뚱한 상상을 했다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안다.


집.

입소자 파일 첫 장에 적힌 주소, 바로 집.

그러나 어르신들은 그곳으로 살아서는 돌아갈 수 없다. 오직 마지막 길에서야 여길 나가실 수 있다.


어르신, 오늘 밤 꿈에서라도 새 저고리 곱게 차려입고 집에 한번 다녀오세요.

그리고는 깨어나지 말고, 편안한 잠결에 엄마 품에 안기시길.

이만하면 충분히 긴 소풍이었습니다.

부디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더 이상의 고통은 없으시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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