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 83세 염초롱 어르신의 미열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오전부터 37.5도를 오르락내리락. 주말엔 당직 간호가 한 명뿐이라 세심히 자주 관찰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어르신들은 오전에 괜찮으시다가도 오후나 밤에 고열이 오르는 일이 잦다.
당직 간호사께 잘 부탁드리고, 중간중간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께 전화로 상태를 확인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해 보니 어르신은 여전히 미열이 있었지만, 식사도 잘하시고 전반적인 컨디션은 양호한 상태였다.
다행히 화요일엔 가정간호 선생님이 원내에 들어오셔서, 가래를 묽게하는 주사제와 비타민 수액을 투여해주셨다. 수요일 오전, 어르신은 미열이 있기 전처럼 큰소리로 뭐라뭐라 응답하시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반응해주셨다. 우리가 '염초롱 어르신'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그 맑고 또렷한 눈빛 때문이다.
염초롱 어르신은 치매 진단을 받으셨고, 한때는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와상 환자셨다. 콧줄과 소변줄을 끼고 계셨던 분인데, 얼마 전 둘 다 제거하고, 지금은 주사기로 미음을 드시며 자가 배뇨도 가능하시다.
"인사해요, 어르신!"
"밥맛은 어때요?"
"혈압이 좀 높네요?"
이런 말에 어르신은 항상 큰소리로 대답하신다.
“워우우 다다... 다다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뭐라뭐라 외치시는데, "더 자고 싶으신가?", "양이 적은가?", "저리 가라고 하신 건가?"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어르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각자 마음대로 해석하며 웃곤 한다.
그런데 그날 오후, 갑자기 열이 38도까지 오르기 시작했고, 산소포화도는 80대까지 떨어졌다. 결국 보호자에게 연락을 드리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검사 결과는 흡인성 폐렴.
콧줄을 빼고 입으로 식사를 하시면서부터 조심스러운 순간들이 있었다. 언젠가 다시 콧줄을 하자고 조심스레 제안드렸지만, 보호자이신 따님은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는데, 엄마가 입으로 드시게 하고 싶다”며 울먹이셨다. 위험을 알면서도, 남은 시간만큼은 어머님이 사람답게 드시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우리가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그날 결국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입원이 결정되었고, 병실로 옮기기 전 응급실에서 대기하던 시간. 나는 어르신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어르신, 꼭 이겨내고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오자고요.”
예전만큼 큰소리는 아니었지만, “다다다…” 하며 어르신은 분명히 대답하셨다.
‘알았다’라고 하신 걸까.
‘그래, 지나갈 거에요’라고 말해주는 내 마음은 먹먹했다.
불과 한 달 전, 같은방 어르신을 떠나보낸 기억이 선연해서였을까.
괜찮을 거라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자꾸만 나쁜 생각이 들었다.
요양원으로 돌아와 어르신의 빈 침상을 바라보는데, 허전함이 밀려들었다.
다시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내 마음 한편엔, 또 다른 질문이 들었다.
‘과연 어르신이 이 갇힌 육체의 삶을 계속 이어가시길 바라야 하는 걸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말할 수 없는 이 세계에서
간호조무사로서의 나는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럼에도 오늘은, 유난히 마음이 무겁다.
글을 저장하고 있는 동안 폐렴과 싸우던 초롱 어르신이 드디어 돌아오셨다.
긴 금식으로 인해 뺨은 보조개처럼 깊게 꺼졌고, 기력은 다 빠져 눈만 겨우 뜨신 채 입술만 움직이셨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 요양선생님들과 나는 그저 반가운 마음뿐이었다. 교대 근무로 들어오는 선생님들마다 제일 먼저 어르신 방으로 달려갔다.
“집에 잘 오셨어요~ 얼른 기력 차려서 예전처럼 고함도 치셔야죠!”
오늘 간호 팀장님이 우리에게 특명을 주셨다.
‘염초롱 어르신 살찌우기 작전!’
그렇게 잘 이겨내고 돌아오셨다.
마음 한켠은 복잡하고,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어르신을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핑계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