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 1959년의 한 곡이 내 하루를 채운다.
오십의 내가, 여든셋 어르신과 같은 노래를 부르는 이유.
그 멜로디 속에는 고향, 젊음, 그리고 오래된 그리움이 있다.
유정천리 – 정이 있는 천리, 고향 가는 길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
못 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
눈물 어린 보따리에
황혼빛이 젖어드네
요즘, 이 노래를 매일같이 반복해서 듣는다.
1959년 영화 유정천리의 주제가.
영화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고,
한국전쟁으로 흩어진 가족의 애환을 담은 노래라고 나무위키에 적혀있다
나는 트로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전국이 트로트 열풍에 들썩였던 몇 해 전에도,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40대였지만 블랙핑크 제니, 뉴진스 하니가 부른 푸른 산호초를 좋아했고,
‘옛날 사람’이니까 신해철 골수 팬이었다.
그런 내가 요즘, 이 한 곡에 꽂혀 있다.
이 노래는 ‘콧줄을 빼고 식사하시던’ 그 어르신이 잘 부르신다.
근무한 지 얼마 안 됐을 땐,
말수도 적고 표정도 무심했던 분.
그러다 어느 날,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그 순간부터 마음이 쓰였다.
말을 더 자주 걸었고, 식사 수발도 내가 맡았다.
말씀을 많이 하시게되니 알게되는것도 많아졌다
아들만 셋.
경산에서 살았고, 친정도 경산.
오빠 둘에 외동딸.
손이 길고 고운 분이라 처녀 시절엔 수를 많이 놓으셨고,
나이 들어서는 고스톱을 즐기셨다.
지금은 뇌출혈로 편마비가 있어
늘 침을 닦기 위해 작은 수건을 쥐고 계신다.
여행 중 예쁜 타올 손수건을 보자
제일 먼저 그 어르신이 떠올랐다.
취향을 몰라서 오래 고민하고 고른 걸 드렸더니,
정성을 알아봐주신 듯 무척 기뻐하셨다.
우리 층은 모두 와상 어르신들이라
다른 층처럼 모여 프로그램을 하긴 어렵다.
그래서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개별적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팔다리 운동을 돕는다.
그날, 어르신은 이 노래를 큰소리로 부르셨다.
59년 곡이고, 어르신이 43년생이시니
16~17세 무렵에 부르셨을 것이다.
나의 열일곱살, 어르신의 열일곱살
내가 17세에 신해철 테이프를 사 모으며
마이마이로 들었던 것처럼,
그 시절 어르신에게 이 노래는 신해철
‘그대에게’ 같은 곡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나이에는 하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끝없이 많았을 것이다.
어르신은 그 뒤로 “네가 예쁘다”며
막내아들 이야기를 꺼내셨다.
“막내가 아직 장가를 안 갔다, 며느리 할래?”
“막내가 몇 살인데요?”
“서른은 안 됐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신다
어르신 나이가 83세신데...
“어르신, 저 나이 많아요.”
“몇인데?”
“오십이에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웃으셨다.
“그럼 안 되겠다, 50이면 제 취를 알아봐야지.”
그날 5층은 웃음바다가 됐다.
지금 어르신이 그저 옛 노래라서 부르시는 건지,
아니면 고향과 지난 시절이 그리워 부르시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오래 생각하면 마음이 저려서,
그저 어르신의 큰 목소리에 맞춰 나도 따라 부른다.
못 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