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서 근무한 지 이제 4개월째.
그전엔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에서 상담실장으로 수년간 일했고, 요양원 오기 직전까지는 한의원에서 상담과 관리 업무를 7년간 해왔다.
그동안은 ‘아픈 사람’을 상대하기보다는, 예뻐지고 싶어서 오는 사람이거나, 중증이 아닌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성형외과에선 병원이긴 했지만, 간호복 대신 정장을 입고, 또각또각 구두를 신고 병원 안을 다니는 ‘간호조무사를 가장한 영업사원’에 가까웠다.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나.
그런 내가 요양원에 출근한 첫날 느낀 건,
‘엄마의 와상 간호 경험이 없었다면, 이 일을 시작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맡은 층에는 열 분의 어르신이 계셨는데,
그중 한 분은 산소포화도가 조금만 떨어져도 바로 이송이 필요한 응급상황의 연속이었고,
두 분은 코에 튜브를 꽂고 식사를 하셔야 했고,
또 한 분은 폭언과 폭력, 식사 거부까지 하시는 분이셨다.
‘이게 맞나...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첫날부터 버거웠다.
열흘쯤 지나자 조금씩 적응이 되기 시작했고, ‘이 일이 어쩌면 나한테 잘 맞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해보니 밤사이 경관식(콧줄식사)을 하던 어르신 두 분이 콧줄을 손으로 뽑아버리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 한 분은 벌써 두 번째였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입으로 드시게 해보면 안 될까?’
물론, 삼킴이 어렵다면 흡인성 폐렴의 위험이 있고, 수발의 번거로움도 크다.
요양 선생님들의 일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라, 누구도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시도해보고 싶었다.
누워 계신 어르신들에겐 뭐가 낙일까.
적어도 ‘먹는 즐거움’이라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다.
두 번째로 콧줄을 뺀 그 어르신,
며칠 전 콧줄을 다시 넣을 때, 얼마나 괴로우셨는지
양손을 제지하던 내 이름표를 보며 작게 말했다.
“아프다… 신영아…”
그 순간, 울컥.
말씀을 거의 하지 않던 분이셨기에 더 놀랐고,
무엇보다도 그 억양이…
돌아가신 엄마가 나를 부르던 그 목소리와 너무 닮아 있었다.
그날 이후, 그 어르신에게 더 마음이 쓰였다.
다시 그 고통을 드리고 싶지 않아, 복지사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콧줄 다시 꽂지 말고, 입으로 한번 드시게 해보면 어떨까요?”
“삼키실 수 있을까요?”
“양치하실 때 양치물이 넘어가면 가끔 삼키시기도 하거든요.
너무 묽지 않은 요거트 같은 걸 한번 시도해보고, 안 되면 그때 다시 꽂는 건 어떨까요?”
다행히 복지사 선생님도 동의해주셨고,
그날 간식 때부터 요거트를 드려봤다.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잘 삼키셨고, 미음에 갈은 반찬을 섞어 드리자 그것도 잘 드셨다.
지금은 편마비이신 두 어르신 모두,
움직일 수 있는 손으로 직접 떠서 드신다.
스스로 식사하시니 맛도 느끼고, 목 넘김도 훨씬 편하신지
말씀도 더 잘하시고, 표정도 밝아지셨다.
‘보람’이라는 단어가 이런 순간을 위해 있는 말이구나 싶었다.
예전 엄마가 잘 드시던 기억이 나서
스타벅스에서 생크림이 들어간 카스테라를 사다 드렸더니,
“뭐가 이리 맛있노…”
그러자 요양사 선생님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거 머리 푼 여자네 집에서 파는 거라 더 맛있는 거예요~ 어르신 드시라고 신영이가 사왔어요~”
어르신은 오물오물 녹여 드시며 말씀하셨다.
“맛있다, 고맙다…”
그 한마디에,
오늘도 너무 행복하고,
너무 보람찬…
‘장수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