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벤셔널 와인과 네추럴 와인에 관하여
예전 게시물에서 네추럴 와인에 대해서 개괄적인 설명을 해드린 적이 있는데요. 그 글에서 저는 네추럴 와인에 대한 확고한 정의가 아직 없다고 말씀드렸죠.그런데 현실에서는 스스로를 ‘네추럴 와인바’라고 부르는 와인바들이 있고 와인 리스트를 컨벤셔널과 네추럴로 나누어 놓는 레스토랑들이 많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이분법을 좋아하지 않아요. 흑백논리는 단순해서 받아들이기 쉽기는 하지만 현실과 괴리가 있기 때문이에요. 현실 세계의 많은 것들은 검은색과 흰색 사이의 각기 다른 뉘앙스를 가진 수많은 회색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단순하게 정리되지 않은 미묘한 불확실함은 사람을 불안하게 하기에 인간은 대체로 확실함을 갈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 마음으로 불확실함을 받이들이면 삶이 주는 다양한 경험들을 총체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고 저는 믿어요.
저는 네추럴 와인에 대해서도 이런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컨벤셔널 와인과 네추럴 와인을 칼같이 나누는 것은 무의미해요.
물론 양극단은 비교적 쉽게 알아볼 수 있어요. 마트와 편의점에 있는 만원 이하의 저가 와인들은 극단적인 컨벤셔널 와인이에요. 극단적인 네추럴 와인은 마주치기가 쉽지는 않은데요. 체제전복적인 ‘펑키한’ 생산자가 차고에서 아무런 첨가물도 넣지 않고 만든 네추럴 와인들이 있어요. 이런 와인들은 많은 경우 ‘잘못’ 만든 와인과 구분하기가 힘들어요.
이 양극단 사이에 수많은 와인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유기농 재배한 포도로 만들지만 생산자가 인공 효모를 비롯한 여러 첨가물을 넣는 와인도 있고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으로 재배한 포도를 사용해 자연 효모를 이용해 발효시키며 최소한의 첨가물만 넣지만 여과 및 청징 과정을 거치는 와인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어떤 와인을 컨벤셔널과 네추럴 와인으로 딱 잘라서 구분하는 것은 피하고 있어요. 어떤 와인은 컨벤셔널 뉘앙스가 강하고 또 다른 어떤 와인은 네추럴 뉘앙스가 강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네추럴과 컨벤셔널 와인이라는 타이틀보다는 개별 와인 생산자들의 와인에 대한 자세와 관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몰개성 하지만 일관성 있는 맛의 와인을 대량 생산해서 전 세계에 가능한 싼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이 목표인 생산자, 유기농 인증은 받지 않은 채 친환경 컨셉을 셀링 포인트로만 이용하는 greenwashing을 하는 생산자, 장인 정신(artisanal)을 가지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즐겨 마실 수 있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생산자 등 세상에는 다양한 와인 생산자들이 있습니다. 저는 마지막에 언급한 스타일의 생산자들이 더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여러분도 흑백의 분류법으로 스스로를 가두지 마시고 다양한 와인들을 마셔보고 그것의 생산 방식을 찾아보시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뉘앙스를 찾아가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