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그 행복에 대하여
강가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휴식도 취하다 느지막이 호스텔로 돌아왔다.
같인 방에 묵는 대학생 3명이 "우리 오늘 파뤼나잇이야~~ 먼저 자"라는 얘길 남기고 떠났다.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대학생들이 노는 건 비슷하구나..
4명이 묵는 방을 혼자 차지하니 고요하고 편안하다.
이제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잘 수 있는 몸이 되었나 보다. 핸드폰을 하다 스르르 잠에 들었다.
추운 에어컨 바람에 일찍 눈이 떠졌다.
어제 예매해 둔 포르투행 기차를 타야 한다.
첫날 스페인 자라에서 산 외출복을 입고, 왠지 더 가볍게 느껴지는 배낭을 메고 기차역으로 출발했다.
걸어서 갔으면 족히 4~5일은 걸렸을 텐데 기차로 오니 1시간 30분 남짓, 창문으로 바다와 강을 번갈아 보면서 오니 금방이다.
포르투 기차역은 웅장했고,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유럽만의 묵직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해리포터에 나왔던 기차역과 더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곳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했다.
기차역 입구엔 포르투 명물인 아줄레주 타일이 가득한 벽면이 있다. 아마 이걸 구경하러 온 거겠지?
기차역에서 나와 예약해 둔 호스텔로 향한다.
포르투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여행을 많이 오고, 유명한 곳이다 보니 숙소비가 만만치 않게 비쌌다.
1박당 25~30유로 정도(남녀공용 6인 도미토리)
그간 순례자 숙소를 이용하거나 저렴한 곳을 찾아다녔는데 포르투에선 순례자 숙소가 1곳만 존재했고,
나는 다음날 포르투 관광을 하기로 했기에 조금은 비싸지만 중심에 있는 호스텔에 묵기로 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숙소를 구경하다 보니 한국 사람인가? 싶은 분들을 봤다. 제발 한국인이길!
K-유전자가 너무나 필요해!
숙소에서 나와 포르투 시내를 둘러보았다.
보케리아 시장에서 에그타르트도 먹고 전망이 좋은 공원으로 향했다.
코임브라와 비슷한 풍경이지만, 좀 더 활기찬 느낌이 든다.
사람들의 말소리,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귓가에 퍼진다.
"나도 이곳에 있구나"라는 게 실감이 난다.
마트에 들러 팩으로 된 와인과 치킨랩을 사 숙소에 돌아오니, 아까 한국분인가? 했던 분들이 모여 계셨다.
그립던 한국말을 들으니 너~무 반가워 와다다 말을 걸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깨달은 사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미 프랑스에서 출발하는 순례길을 다 걷고 포르투로 관광을 왔다던 세 분
얼굴도 팔도, 발까지 새까맣게 탄 모습이었다.
순례길을 마친 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두 분은 직장을 그만두고, 한 분은 직장에 휴가를 내고 오셨다고 한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오신 분은 와이프와 같이 순례길을 걷는 것이 버킷리스트였는데,
아이가 생겨 혼자 오셨다고 했다. 이런 멋진 풍경을 아내분께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괜스레 위로받는 기분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집에서 나를 걱장하고 있을 남편이 더욱 그리워졌다.
내가 한국 가면 잘할게..(?)
저녁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다, 포르투의 저녁노을을 함께 보고 야식을 함께 먹기로 했다.
햇살은 슬그머니 지고 노을은 빨갛게 피어났다.
서로 인생 사진도 찍어주고 싸 온 간식도 나눠먹으며 근 며칠간 가장 따뜻한 시간을 보낸 거 같다.
혼자 왔으면 이렇게 멋진 풍경을 두고 얘기 나눌 사람이 없어 아쉬웠을 텐데,
같이의 가치를 느낀다.
자정을 향해가는 시간에 문을 연 식당에 찾아가 하몽과 멜론, 감바스,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다.
우린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불완전하고 불안한 삶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고자 하는 마음은 같았다.
그 불안함을 이해하며 따뜻한 대화를 나눴다.
서로 다른 인생의 길을 걷는 우리지만, 순례길이라는 공통된 길로서 우린 연결되었다.
세 분은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신다고 하셔서 짧은 만남의 작별 인사를 마쳤다.
다시 만날 순 없겠지만, 부디 잘 사시기를!
내일은 순례자 숙소로 이동한다. 기분 전환도 했으니 모레부턴 다시 힘차게 걸어야지
그나저나 와인을 꽤 많이 마셔서 내일 숙취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