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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00Km를 날렸다.

포르투, 그 행복에 대하여

by 고군분투 삼십대


강가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휴식도 취하다 느지막이 호스텔로 돌아왔다.

같인 방에 묵는 대학생 3명이 "우리 오늘 파뤼나잇이야~~ 먼저 자"라는 얘길 남기고 떠났다.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대학생들이 노는 건 비슷하구나..


4명이 묵는 방을 혼자 차지하니 고요하고 편안하다.

이제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잘 수 있는 몸이 되었나 보다. 핸드폰을 하다 스르르 잠에 들었다.


추운 에어컨 바람에 일찍 눈이 떠졌다.


어제 예매해 둔 포르투행 기차를 타야 한다.

첫날 스페인 자라에서 산 외출복을 입고, 왠지 더 가볍게 느껴지는 배낭을 메고 기차역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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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갔으면 족히 4~5일은 걸렸을 텐데 기차로 오니 1시간 30분 남짓, 창문으로 바다와 강을 번갈아 보면서 오니 금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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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 기차역은 웅장했고,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유럽만의 묵직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해리포터에 나왔던 기차역과 더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곳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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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입구엔 포르투 명물인 아줄레주 타일이 가득한 벽면이 있다. 아마 이걸 구경하러 온 거겠지?


기차역에서 나와 예약해 둔 호스텔로 향한다.

포르투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여행을 많이 오고, 유명한 곳이다 보니 숙소비가 만만치 않게 비쌌다.

1박당 25~30유로 정도(남녀공용 6인 도미토리)


그간 순례자 숙소를 이용하거나 저렴한 곳을 찾아다녔는데 포르투에선 순례자 숙소가 1곳만 존재했고,

나는 다음날 포르투 관광을 하기로 했기에 조금은 비싸지만 중심에 있는 호스텔에 묵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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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분위기의 숙소를 구경하다 보니 한국 사람인가? 싶은 분들을 봤다. 제발 한국인이길!

K-유전자가 너무나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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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나와 포르투 시내를 둘러보았다.

보케리아 시장에서 에그타르트도 먹고 전망이 좋은 공원으로 향했다.

코임브라와 비슷한 풍경이지만, 좀 더 활기찬 느낌이 든다.

사람들의 말소리,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귓가에 퍼진다.


"나도 이곳에 있구나"라는 게 실감이 난다.


마트에 들러 팩으로 된 와인과 치킨랩을 사 숙소에 돌아오니, 아까 한국분인가? 했던 분들이 모여 계셨다.

그립던 한국말을 들으니 너~무 반가워 와다다 말을 걸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깨달은 사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미 프랑스에서 출발하는 순례길을 다 걷고 포르투로 관광을 왔다던 세 분

얼굴도 팔도, 발까지 새까맣게 탄 모습이었다.

순례길을 마친 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두 분은 직장을 그만두고, 한 분은 직장에 휴가를 내고 오셨다고 한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오신 분은 와이프와 같이 순례길을 걷는 것이 버킷리스트였는데,

아이가 생겨 혼자 오셨다고 했다. 이런 멋진 풍경을 아내분께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괜스레 위로받는 기분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집에서 나를 걱장하고 있을 남편이 더욱 그리워졌다.

내가 한국 가면 잘할게..(?)


저녁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다, 포르투의 저녁노을을 함께 보고 야식을 함께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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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슬그머니 지고 노을은 빨갛게 피어났다.


서로 인생 사진도 찍어주고 싸 온 간식도 나눠먹으며 근 며칠간 가장 따뜻한 시간을 보낸 거 같다.

혼자 왔으면 이렇게 멋진 풍경을 두고 얘기 나눌 사람이 없어 아쉬웠을 텐데,

같이의 가치를 느낀다.


자정을 향해가는 시간에 문을 연 식당에 찾아가 하몽과 멜론, 감바스,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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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불완전하고 불안한 삶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고자 하는 마음은 같았다.

그 불안함을 이해하며 따뜻한 대화를 나눴다.


서로 다른 인생의 길을 걷는 우리지만, 순례길이라는 공통된 길로서 우린 연결되었다.


세 분은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신다고 하셔서 짧은 만남의 작별 인사를 마쳤다.


다시 만날 순 없겠지만, 부디 잘 사시기를!

내일은 순례자 숙소로 이동한다. 기분 전환도 했으니 모레부턴 다시 힘차게 걸어야지


그나저나 와인을 꽤 많이 마셔서 내일 숙취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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