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에서 만난 동행, 행운일까 불행일까
어마어마한 숙취와 함께 눈을 떴다.
간만에 행복한 기분을 느끼다 보니 너무 과음한 탓이다.
체크아웃 시간이 코앞이다! 서두르자.
무거운 머리와 몸을 일으켜 대충 씻고, 비싼 호스텔을 떠나 15유로짜리 순례자 숙소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알베르게로 가니, 먼저 와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그나저나 이렇게 많은 순례자들은 처음 본다! (그래봤자 20명 내외지만)
문은 작지만 건물로 들어오니 속이 어마무시하게 넓다.
순례자들을 위해 15유로로 운영되는 자선단체 같은 곳
스페인이 순례자들에게 얼마나 호의적인 지 그 따뜻한 손길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예전에 어떤 건물이었을지 가늠이 안 되는 큰 규모의 숙소를 돌아다니다 보니 벌써 저녁시간이다.
오전을 숙취로 날려버린 탓이다..
내일부터 다시 걸어야 하니 간단한 간식도 사고, 저녁도 먹고 들어와야겠다.
저녁은 간단하게 고기와 감자튀김, 계란프라이, 샐러드
배부르고 맛도 좋다. 가격도 무척 저렴해 슬슬 재정적 압박이 오는 나에겐 제격이었다.
알베르게로 돌아오는 길도 그림처럼 아름답다.
내일 나갈 채비를 마치고 생명수 같은 와이파이를 잡아 핸드폰을 하고 있으니, 한국어가 섞인 대화가 들려왔다.
이번엔 캐나다로 이민한 한국 아주머니(국적은 캐나다)를 만났다.
이 아주머니는 프랑스길을 완주하고 포르투부터 다시 걷는 분이다.
본인도 혼자 걸어야 해서 걱정했는데 내일부터 같이 다니자는 제안을 해주셔서 덥석 좋습니다! 얘기했다.
프랑스에서 시작하는 순례길은 한국 사람도 많고, 이것보다 인프라가 훨씬 좋다고 한다.
동키라는 배낭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도 있단다!
다만 단점은 너무 많은 한국인들이 있는 탓에 혼자 걷기가 쉽지 않고, 무리가 생긴다는 점이라고 하셨다.
따로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사람들은 오히려 포르투갈 길이 더 나을 거라고
프랑스 길을 걸었다면 지금까지 했던 걱정과 불안들이 조금이나마 나아졌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 못한 길, 갖지 못한 물건에 대해 아쉬움이 생긴다.
사실 내가 가는 길, 갖고 있는 물건들이 참 소중하고 귀한 건데 말이다.
내일 오전 5시에 출발, 경로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숙취로 인해 포르투 구경도 못하고, 시간을 헐레벌레 보낸 거 같아 아쉽다.
뭐 이런 날도 있지 않겠어?
잠을 청하려니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걸어야 한다는 두려움일까 아님 낯선 환경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걱정일까
똑같은 주제로 몇 날며칠을 계속 생각하다 보니 우울의 근본이 무엇인 지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우리 집, 그곳이 사무치게 그립기 때문이다.
다행히 알베르게에도 고양이가 있어 집사는 잠시나마 우울을 털어냈다.
지금 내가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것이 내 전부이고 행복이다.
이 마음을 절대 잊지 말자!
내일 부엔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