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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양갱

머리에 불이 나버릴 것 같던 그때

by 또피

얼마 전 장기하와 비비가 출연한 라디오스타 “좋은 노래 있으면 소개시켜줘” 특집을 보았다. 밤양갱이라는 노래가 발매되기 전 라디오스타에서 짧게 선공개를 하였는데 잠깐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었지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중독성이 있는 멜로디가 너무 인상 깊어 2월 13일, 음원이 발매되자마자 뮤직비디오까지 찾아보며 가사를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밤양갱’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친숙함이 주가 된 가벼운 노래일 줄 알았는데 한 커플의 현실적인 이별이 담긴 이야기였다.

떠나는 길에 네가 내게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잠깐이라도 널 안 바라보면 머리에 불이 나버린다니까’ 나는 흐르려는 눈물을 참고 하려던 얘길 어렵게 누르고 ‘그래 미안해’라는 한 마디로 너랑 나눈 날들 마무리 했었지

가사에서 어딘가 모호한 느낌도 들고, 그들 사이에서 [밤양갱]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 궁금해 해석까지 찾아보았다. 밤양갱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시를 제거하는 과정이 선행되는데, 즉 상대를 아프게 할 만한 자신의 모습들을 지우는 배려가 필요하다. 그래서 밤양갱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사소한 행동들에 묻어나는 것으로 연애 초에 상대가 나를 사랑해 주던 방식과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연애를 하며 상대방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 주인공을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닌데 여기서 오는 둘의 갈등을 표현한 노래이다.

이 해석을 보고 격한 공감을 했다. 사실 나도 남자친구에게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 단 밤양갱을 원했고 남자친구는 나에게 진수성찬을 차려주려고 했었다. 나는 화려한 것이 아닌 따뜻한 관심과 달달한 한마디를 원했던 것인데 밤양갱을 받지 못했을 때의 나는 비비처럼 머리에 불이 날 거 같아 그 마음을 상대에게 부정적으로 표출하며 관계에 갈등이 있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연애의 안정기에 접어들어 이러한 다툼은 사그라들었지만 아마 모든 커플들이 이러한 과정을 경험하며 노래에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남자친구와 밥을 먹다 이런 대화를 했다. “요즘 우리 진짜 안 싸우지 않아?”, “이제는 정말 싸울 일이 없을 거 같아”, “우리가 변했다기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법을 터득한 거 같아” 이런 식의 대화였다. 죽고 못살아 좋아서 만났지만 죽일 듯이 싸우며 시간을 낭비했던 힘든 시기가 있었다. 나는 왜 그토록 밤양갱을 고집했었을까 하며 후회도 했다. 다행히도 따뜻한 성격에 넓은 배려심을 가진 사람을 만나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 단 연애를 하며 안정적이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상대방이 내게 줄 밤양갱을 기대하기보다는 상대에게 줄 밤양갱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가시를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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