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달이의 고민

대한민국 야생 너구리, 달이

by viper

도시하천, 인간들에게는 단순히 운동이나 산책 등을 할 수 있고 자연을 느끼는 공원 정도로만 여겨지지만 실상은 크고 작은 생물들이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지는 하나의 전쟁터이자 생태계다.


이곳에는 고라니나 시궁쥐, 생쥐 같은 피식자부터 삵, 오소리, 수달, 맹금류 등의 크고 작은 육상 포식자, 메기, 가물치, 잉어와 같은 수생생물들이 각기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현재 나는 영역에 침입자가 나타나 인생 아니 축생 역사상 심각하디 심각한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방금 그 발자국, 분명 그 녀석이 틀림없어... 그동안 포식자의 눈을 피해 안전한 곳에 숨어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너구리들은 4~5개월이면 완전히 성장하고 8월 말에서 9월 사이에 부모 곁을 떠나 혼자 살아가게 된다.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첫 직장을 얻은 사회 초년생 같은 거다.


나 역시 부모님에게 배운 대로 먹이를 찾으면서 자신이 정착해서 생활한 영역을 찾아 그곳에 눌러앉아 첫 독립생활을 보내고 있다.


물론 부모님이 가르쳐준 대로 나에게 위협이 되는 천적들의 흔적을 구별하고 그런 천적들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으면서 천적들이 오지 않는 장소에 내 영역을 만들었다.


덕분에 독립하고 며칠 동안은 천적들과 조우하지 않고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냈다. 오늘까지만 해도 평화로웠다...


오늘 내가 자리 잡은 영역에 다른 포식자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는 이제 막 독립을 한 나에게 있어 크나 큰 문제였다.


"아까 그 발자국, 분명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보였어... 게다가 발자국 크기로 가늠해 보면 성별은 수컷에 체급이 1kg은 되어 보이는 녀석이야..."


" 체급과 힘에선 내가 앞선다고는 해도 그 녀석은 워낙 포악하고 유연한 데다, 자신보다 큰 흰뺨검둥오리도 능숙하게 사냥하는 무시무시한 녀석이라 지금의 내가 덤빈다 해도 오히려 역으로 공격을 허용하여 목덜미를 물려서 죽게 될 거야..."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있어 영역에 침입한 침입자의 흔적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나의 생존에 있어서는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이제 막 독립한 아성체 너구리?! 이거만 해도 온갖 포식자들이 나를 죽이려들 텐데... 부모도 없이 혼자 있으니... 얼마나 만만하겠어..."


"차라리 영역을 버리고 도망갈까...? 아니 아니... 그랬다가 다른 포식자라도 만나면 어떡해... 특히 들개, 그 놈들은 우리 부모님보다 훨씬 크고 무리를 짓는 데다가 포악한 놈들이라 영역을 옮기다가 마주치면 끝장이라고...."


"게다가 영역을 옮기는 데 성공해도 새로 옮긴 영역에 어떤 불청객이 있을지 모르는 데다 그 영역에 먹이가 풍부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아흑..! 어떡하지?!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인데... 도대체 어른들은 어떻게 이런 걸 다 해결하면서 살아가는 거지...?!"


나는 머리를 굴려가며 침입자를 피해 영역을 버릴 것인지 아니면 침입자와 맞서 싸울 것인지 등 다양한 대응법들을 생각해 보지만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큰 문제는 그냥 넘기기는 어려웠다.


"아, 진짜 나더러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그렇게 나는 머리만 복잡해진 채 보금자리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런 내 뒤를 영역을 침범한 불청객이 바짝 추격해오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로 말이다.


"크륵, 크륵, 크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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