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야생 너구리, 달이
"헥, 헥..."
"거기 서라!"
나는 지금 인생 아니 축생 역사상 가장 빨리 달리고 있다. 잡히면 죽는다 그것도 끔찍하게 고통스럽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최대한 빨리 달려야 한다.
"저 코딱지 만한 너구리 자식, 요리조리 잘도 피하는 군..."
"이렇게 된 이상, 플랜 B로 간다, 넌 저쪽으로!"
"Ok!"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나는 뒤를 돌아보니 내 뒤를 쫓고 있던 들개들이 흩어지기 시작했고 내 뒤에는 1마리의 들개만이 추격해오고 있었다.
"1마리뿐이잖아?! 다른 녀석은 어디 갔지?"
왠지 모를 불안감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다른 들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 어디로 갔지?! 저 놈들이 단순 무식하게 쫓아올 놈들은 아닌데?"
한참을 달리던 순간 갑자기 풀숲에서 기척도 없이 뒤쫓아오던 다른 들개가 튀어나왔다. 그 개체는 커다란 입과 송곳니로 나를 물어뜯으려고 시도했지만 다행히 빗겨나갔다. 그리고 나는 계속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어떻게 하면 저 놈들을 따돌리지?"
그렇게 정신없이 얼마나 달렸을까 나는 어느새 습지를 달리고 있었고 들개들은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뭐지, 저 녀석들 포기한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물속으로 뭐가 들어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뭐지, 뭐가 있는 거지? 거북인가?!"
습지 곳곳에는 온갖 생물들의 기척이 느껴졌고 벌레가 엄청 많았고, 발이 하천가보다 훨씬 더 푹푹 빠졌다. 생물들이 많아서 중간중간 곤충들로 배를 채우고 계속 걸어갔다.
나는 놈들의 영역을 벗어나기 위해 날이 저물 때까지 걸어갔고 기어이 들개의 영역으로부터 멀어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안됬군."
그렇게 도달한 곳에 나를 맞이한 건 나를 뒤쫓았던 들개 무리였다. 대장 개체로 보이는 상처가 난 들개는 나의 야속한 운명을 조롱이라도 하는지 자신들의 언어로 중얼거렸다.
"켈켈켈, 습지로 도망치는 건 좋았다. 하지만 끝이 좋지 않았군, 켈켈켈..."
"용케도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지만 이제 진짜 끝이다. 이 미꾸라지 같은 너구리 자식!"
사방에 들개 무리가 나를 에워쌌고 몇몇 들개들은 이런 나의 운명을 조롱하는 듯한 말을 했다. 정말이지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도망갈 힘도 없고, 아니 도망쳐봤자 들개들에게 따라 잡혀서 죽을게 분명한, 죽음밖에 선택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렇게 얌전히 삶을 되돌아보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들개 무리가 뭔가에 놀랐는지 뿔뿔이 흩어지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뭐지?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삐, 삐, 삐, 삐."
들개 무리 뒤쪽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와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