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영을 좋아했던 건 언제부터였던가. 언제부터선가 나는 물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다, 잔잔한 호수, 흐르는 계곡물 상관없이 물이 많은 곳이라면 좋아하고, 욕조에 받아놓은 물과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조차 차별없이 좋아한다.
특히 수영장의 물은 나를 감싸준다. 물이라는 너른 품 안에 안겨 끝없이 어리광 부리고 싶다. 흐르지도 않고, 내가 젓는 대로 갈라지고 내가 디디는대로 받쳐주는 물이 마치 나에게는 하나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는 수영을 싫어했다. 그런것 치고는 상급반까지 올라가 다이빙과 턴까지 배웠지만 나는 수영이 끔찍이도 싫었다. 수영장에서 나오면 추운 게 싫었고, 수영복이 물 밖에서는 내 살에 철석 달라 붙어 몸매 굴곡에 따라 번질번질 빛나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수영 전후로 꼭 샤워를 해야한다는 것도 귀찮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억지로 보낸 수영장 근처에서 수영 수업이 끝날 때까지 놀다가 샤워실에서 머리만 감은 채 나를 데리러 온 엄마에게 간 적이 여러번 있었다. 내가 능청스럽게 오늘 수업이 어땠는지 거짓말을 쳐도 엄마는 귀신같이 내가 수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채고 나를 혼냈다. 나는 굴하지 않고 정말 꾸준히 같은 방식으로 수영을 가지 않았다. 그런데 10년이 더 넘은 지금에서야, 나는 관내 스포츠 센터의 수영 강습을 찾아 300명이 넘는 대기자 명단 맨 끝에 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무언가가 싫어졌다가 다시 좋아지고. 좋아진 것이 싫어진다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다. 싫어했던 것을 좋아하게 되면 과거의 나를 배신하는 기분이다. 그만큼 내가 변화했다는 것이 무섭다. 내 변화의 방향은 예측할 수 없기에. 또 무언가가 싫어지면 그것을 다시는 좋아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예감이 나를 서글프게 만든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우리는 영원히 좋아할 수는 없는 걸까. 계속해서 사랑할 수는 없는 걸까? 하다못해 우리 스스로 무엇을 싫어하고 좋아할지 결정 할 수는 없는 걸까. 사랑과 혐오는 늘 내 의지대로 찾아오지 않는다. 대기자 명단에 쓰인 내 이름 석 자 밑에 내 생각이 덧씌인다.
“넌 수영을 싫어하는 사람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