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부터 최강 한파가 몰아닥쳤다. 며칠 전부터 코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월요일부터 코감기는 더욱 심해지고 목감기까지 걸렸다. 코는 막혔다가 뚫리기를 반복하고 목에는 까끌까끌한 덤불이 뭉쳐서 걸려있는 듯 따끔거렸다. 감기증상으로는 한 번도 병원 진료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나는 어떻게 해서든 집에 있는 상비 감기약으로 나을 것이라 믿고 버텼다. 찌룩찌룩 큭큭거리다가 가끔 토를 할 듯이 요란을 떨다가 재채기는 또 얼마나 나오는지... 한파 속을 뚫고 새벽출근을 하고 밤늦게 추위에 파리한 얼굴로 들어서는 아들과 남편에게 내 요란한 감기증상이 조금 무안하기도 했다.
"아 씨... 집에만 있는데 웬 감기야... 나을 듯 나을 듯 낫지를 않네..."
나의 중얼거림에 아들이 말했다.
"집에만 있어서 그런 거지 엄마... "
모든 게 다 그렇게 사소하게 시작되는 거다. 추위를 핑계로 미루고 미루던 산행에 나섰다. 아들이 무심코 던진 이 한 마디로, 감기가 걸린 와중에 말이다.
거의 3개월 만에 30분 전철을 타고 수리산역에 내려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전철역과 주택가와 가까워서 사람들이 많이 오르내리는 산인데 추운 날씨 때문인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봄이 와도 새싹 한 장 돋아날 것 같지 않은 삭정이 같은 겨울나무와 거름처럼 퇴적된 나뭇잎들과 곳곳의 히끗한 잔설과 매운 산바람뿐이었다. 산길은 얼어서 돌처럼 딱딱했고 넥워머로도 감싸지 못해 노출된 눈 밑의 살은 매운바람에 얼얼해졌다. 그래도 막혀있던 코가 시원하게 뻥 뚫렸는데 너무 뚫려서 콧 속이 시렸다. 아무려나 나는 점점 상쾌해져 갔다.
그래 나는 산을 좋아했어. 특히나 혼자서 내 마음 내 속도에 맞게 올라가는 것을 좋아했잖아. 힘들수록 보람과 희열을 느꼈잖아. 산에 오면 어느 것 하나 맘에 들지 않는 나에게 그나마 조금은 너그러워질 수 있었잖아. 그런데 3개월 동안 왜 산에 오지 않았지? 직장에 다닐 때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가던 산에를 퇴사 후에는 한 달에 한번 겨우 가다가 그것만 저도 중단해 버렸지.
왜냐고?
그놈의 독서와 글쓰기 때문이잖아. 산에 가는 거보다 한 자 라도 더 읽고 한 줄이라도 써야 된다는 강박이 생겼어. 너무 늦은 건 아닌가... 이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뭘 이룰 수나 있을까... 어쩌면 또다시 내 길이 아닌 엉뚱한 곳에서 시간과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렇다고 달리 하고 싶은 일도 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냥 이루려고 하지 말고 그냥 취미라고 생각하고 즐기면 되지 않겠니?
취미 말이야... 산행처럼... 취미로는 더없이 좋잖아... 독서도 쓰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그냥 즐기기 위한 독서, 글쓰기도 뭔가 인정받기 위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보다 그냥... 그냥 말이야... 그냥... 누추하고 지리멸렬한 일상의 데코레이션 정도로만 말이야... 그러다가 어떤 결과가 나오면 좋은 거고.... 그렇게 가볍게 말이야.... 그러니까 나에게 독서와 글쓰기는 일상의 구원이면서 족쇄인 것 같아... 족쇄이면서 구원 말이야... 그런데... 이 생각이 맞나?
목이 칼칼하여 중간에 두세 번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물을 마셨다. 거친 숨결을 내뿜으며 한 시간을 쉬지 않고 올랐다. 드디어 벤치와 정자가 있는 넓은 쉼터인 임도오거리에 도착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꽃보다 더 울긋불긋한 산행객들로 시끌벅쩍하던 곳인데 오늘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사방으로 반투명 바람막이를 설치해 놓은 정자 안에 두 사람의 형제가 어른거렸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벤치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슬기봉을 올라갈 것인지 아니면 호숫가에 닿는 둘레길을 선택해 내려갈 것인지 갈등했다. 그때 이웃 시에 사는 ㅂ의 전화가 왔다. 위암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다가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ㅊ의 동생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오늘 저녁 6시 반쯤 모여서 조문을 가자고 했다. 시계를 보았다. 바로 내려가면 씻고 준비할 시간이 넉넉할 것 같았다. 나의 갈등을 종식시켜 준 전화 한 통이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하산길을 서둘렀다.
오후 6시 반쯤, 다섯 명이 모여서 한 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감기에 걸려서 산에 갔다가 내려와 씻고 바로 오는 길이라고, 감기가 좀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하나같이 그래, 참 너답다 너 다워...라고 했다. 그래 이게 나 다운 거지...
장례식장 입구에 장례 중인 고인의 사진과 이름과 나이와 상주들의 이름을 알려주는 게시판을 올려다보았다. 가장 나이 많은 분이 102살이고 가장 나이가 적은 분이 54살이다. 친구의 동생은 그날 그 장례식장에서 나이가 가장 어린 고인이었다.
1월 25일 목요일
신기하게도 산에 갔다 왔더니 감기가 조금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잠깐 외면했다고 산은 날 배신하지 않았던 거다. 늘 거기 그곳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다. 지치고 고단하고 아플수록 더욱 찾아오라고.
오늘 산에 가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토요일에 있을 산악회 산행 때문이었다.
2년 전쯤 평소 등산을 즐기는 남자 동창 두 세명에 의해 만들어졌다. 모두 나와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이고 내가 평소 산을 곧잘 다닌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도 섭외를 받았다. 혼자 산에 가는 것을 즐기는 나로서는 조금 망설이기도 했지만 수락했다. 혼자 산에 다니는 단점이라면 내가 자주 가고 잘 아는 두 세 곳의 산만, 그것도 내가 잘 아는 산길로만 다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렇게 겁이 없는 것도 담력이 두두룩한 것도 아닌 셈인가? 그리고 워낙 길치인지라 다른 길로 갔다가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산악회에 들어가면 다른 산도 다닐 수 있을 것이었다. 무엇보다 한 달에 한 번이니 부담도 없을 것 같았다.
네 명이 오픈멤버로 시작하면서 더 인원을 모아보자 했는데 지금까지 겨우 세 명을 추가로 모았을 뿐이다. 그래서 여자 2명 남자 5명이 되었다. 동창회에 소문을 많이 내놨는데 등산보다 골프모임에나 나오라는 역섭외를 더 많이 받았다. 그리고 다니고 싶은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친구가 많았다.
그렇게 7명이 한 달에 한번 서울의 근교나 가끔 지방의 산을 일박으로 다녔는데 지난달에 여자 1명이 건강과 개인사정을 이유로 탈퇴했다. 그래서 또다시 나는 홍일점이 되었다. 남자들과의 산행이다 보니 힘들어하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나름 체력관리를 하는 편이었다. 나의 퇴직과 연말의 겹치는 모임으로 인해서 산악회도 두 달을 빠진 상태였다. 그래서 행여 체력이 약해져서 뒤처지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감기를 핑계로 가지 말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여자 1명이 빠지면서 혼자 남게 된 내가 혹시 맘이 흔들릴까 신경 쓰는 멤버들의 마음을 헤아려 참석하기로 했다. 어제의 하다 만 산행을 오늘 다시 하자 싶었다. 그리고 미진하게 남아 있는 감기기운도 한번 더 갔다 오면 다 떨어져 나갈 것도 같았다.
이번에는 차로 움직이기로 했다. 운전연습과 산행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심산이었다. 오전 11시 무렵 출발했다. 물론 도서관에서 잔뜩 빌려다 놓은 책 앞에서의 갈등이 없지 않았다.
수암봉주차장에 주차시키고 산행을 시작했다. 수리산의 많은 봉우리 중 한 개인 수암봉(398m)으로 올라가는 가장 짧고 가파른 코스다. 몇 번 숨이 턱까지 차올라 걸음을 멈추고 쉬어야 했다. 어제보다 바람의 날이 좀 무디어진 것 같았다. 얼음장 속 계곡물이 조금 녹아 가냘픈 소리를 내면서 흘렀다. 등산객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고 20명 정도 단체로 올라온 학생들로 인해 잠깐 산이 왁자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정상에 올라 우리 사는 번잡한 산밑을 내려다보며 잘했다, 잘하고 있다, 괜찮다, 괜찮다고... 평소 스스로 나무라고 자책만 하던 나 자신을 따뜻한 시선으로 격려했다.
1월 26일 금요일
금요일은 남편이 별일 없으면 집에서 재택으로 일처리를 하는 날이다.
"내일 아침 일찍 ㅇㅇ봉 갔다 올까? 날씨도 좀 풀린 것 같고... 몸도 찌뿌둥한데... 토요일 당신도 나도 산행 약속 있으니까 몸도 풀 겸.... "
어젯밤 별 기대 없이 툭 던지듯 말해 보았는데 선선히 "그러든가...." 했다. (남편은 매주 토요일 등산을 간다)
그래서 오늘 또 수암봉에 가게 되었다.
가끔 남편과 산행을 하는데 확실히 남편이 앞서 간다. 나는 늘 뒤처져서 간다. 남자동창들과 갈 때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기를 쓰지만 남편과 갈 때는 뒤쳐져도 부담스럽지가 않다. 오래 기다리고 있어도 미안하지도 않다. 그러니까 나는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편한 존재인 거다.
그래도 너무 뒤처지지 않게 속도를 냈더니 어제 혼자 오를 때보다 시간이 10분 정도 단축되었다. 정상에서 따뜻한 커피와 빵집에서 사 온 샌드위치 한 조각씩을 먹고 하산했다. 오는 길에 과일 채소가 싱싱하고 싼 로컬푸드직매장에 들러 장을 보고 가끔 생각나서 일부러 먹으러 가는 서운칼국수를 사 먹고 돌아왔다.
저녁식사 후엔 내일의 각자 등산을 준비했다. 방울토마토도 두 봉, 로컬푸드에서 사 온 알배기 배추도 두 봉으로 나눠 싸고 쌈장도 뜨거운 커피를 넣어 갈 보온병도 두 개 준비했다.
남편은 아이젠을 꼭 챙겨가라고 내놨다. 오늘 가보니까 안 가져가도 될 것 같은데... 했더니 관악산은 그렇지 않다고 꼭 가져가라고 내 가방에 쑤셔 넣어 줬다.
일찍 자려고 했는데 잠이 오지 않아 브런치스토리 서랍에 끄적이다 만 글을 완성해서 올렸다. '학폭 가해자일지도 모를 그를 동창회에서 만났다'
겨우겨우 글을 완성해서 올려도 늘 올린 글에 대한 미진함과 부끄러움 때문에 마음이 편치를 않다.
그래서일 거다.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5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고 그러고도 잠이 오지 않아 6시가 넘도록 잠을 설친 것은.
1월 27일 토요일
같은 관악산인데 남편과 코스가 달랐다. 나는 사당에서 출발하고 남편은 명학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내가 먼저 집을 나섰다. 날씨는 또 어제보다 조금 더 풀려 있었다. 어젯밤 잠을 거의 못 잔 탓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산에서 강해지는 나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인원은 나를 포함해서 세 명. 한 명은 동생 장례를 치르느라 못 오고 한 명은 감기가 옴팍 들어서 갑자기 못 온다 하고 한 명은 근무라고 했다.
사당역 4번 출구에서 시작했다. 내가 감기 끝물이니 천천히 가자고 처음부터 양해를 구했다. 처음 한 시간 정도까지는 잔설 하나 보이지 않더니 올라갈수록 여기저기 눈이 보이기 시작했고 두 시간이 넘으면서부터는 곳곳에 녹지 않고 쌓여 있는 눈이 보였다. 겨울 등산의 묘미가 그대로 느껴졌다. 점점 위험해 보이는 빙판길이 시작되어 아이젠을 착용했다. 주말을 이용해서 산을 찾은 등산객이 많아 좁은 산길에서는 멈추고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아찔한 바위를 네 발 짐승처럼 기듯이 오르고 끝도 없이 이어진 계단을 무거워진 다리를 끌 듯이 오르고 멀리 보이는 하늘과 맞닿은 설산의 풍경에 취하기도 했다. 연주암 밑에서 알배기배추를 안주로 막걸리 두 병도 나눠 마시고 과천으로 하산했다. 거의 5시간 가까운 산행을 내가 앞장서서 마무리했다, 친구들의 배려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역시 산에서 강하고 등산을 하는 내가 제일 괜찮은 것 같다.
오후 4시 무렵 과천역 주변 호프집에 앉아 있는데 남편의 전화가 왔다. 나는 하산해서 호프 한잔 하는 중이라가 했고 남편은 아직 하산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어쩐지 좀 우스워서 마주 으하하하 웃다가 집에서 만나자 하고 끊었다.
산의 높이나 시간을 떠나서 나흘 연속 산행은 생각해 보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감기는 나았고 날씨는 점점 풀리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고 있다. 낮이 길어지는 만큼 나의 갈등과 방황도 길어질 것이다.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는 말은 정말 듣기 싫고 지겹다.
나는 또다시 족쇄이면서 구원인 독서와 글쓰기의 강박을 일상인 듯 살겠지만 이제 조금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산이 저기 변함없이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