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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Jan 31. 2024

한 여자와 두 남자,  현실에서는 없을 그 치명적 사랑

유리로 민든 배,  쥴 앤 짐, 글루미선데이

  '유리로 만든 배'는 '대한민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라는 '전경린' 작가의 소설로  한  여자가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이야기다. 물론 육체적 사랑까지를 포함해서.

   작가 전경린은 인터뷰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합법적으로 제도에 편입되어 기념비가 되는 사랑보다, 성을 무너뜨리고 얼굴을 다치며 내쫓기는 비합리적인 사랑에 매혹되었습니다. 그런 사랑은 야생적인 것이고  제도 바깥의 것이며  세상이 쳐 놓은  휘장 너머로 무한히 열려 있지요.  거듭되고 표절되는 진부한 삶의 궤도를 이탈해 돌연변이를 보여주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 그 섬광이 나는 늘 아름다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작가의 이 말에 매혹되어 그녀가 쓴 연애소설을 거의 다 읽었다. 이 책은 2005년 발행인데 읽은 듯 안 읽은 듯 애매해서 다시 읽었다. 그녀가 그려내는 소설 속 사랑 이야기는 아름답고 어둡고 허무하고 비극적이다. 스토리보다 묘사와 은유로 가득한 작가의 문장이 좋아서 홀린 듯 읽었다.

  이 책을 읽은 후엔  아주 오래전 보았던 영화 '쥴 앤 짐'과 '글루미선데이'가 생각났다. 두 영화 모두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사랑을 그렸다.


  전경린 ㅡ 유리로 만든 배


  스물다섯 살 은령은 마마보이 같은 남자 선모 부모의 반대에 부딪치자 선뜻 결혼을 포기하고 낯선 도시의 방송국 구성작가 일을 찾아 떠나버린다.

  그곳에서 그녀는 시를 쓰는  불안하고 외로운 남자 유경과 그를 통해 마흔세 살 현실적인 재력가 술집 사장 이진을 만나 형제처럼 친한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위험하고 불안한 사랑을 하게 된다. 이 위태로운 삼각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달아 유경은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이진 역시 긴 여행 후 돌아와 그녀를 외면한다.


  작가의 묘사와 은유로 가득한 문장을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한번 더 읽게 되고,  생각하게 하고, 상상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가 그 문장 속에 들어가서 주인공이 사랑을 할 땐 내가 사랑하는 것 고 주인공이 길을 걸을 땐 나도 그 길을 는 듯 느껴진다.

  

ㅡㅡ친목계에라도 가는 중년의 아주머니들... 서로 심술스럽게 어깨를 부딪치며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햇볕 속을 걷는 남자 고교생들... 김밥 냄새를 피우며 종종걸음을 쳐가는 제복 차림의 농협 아가씨... 검은색 비닐봉지를  든 손을 높이 들어 택시를 잡는 더위에 지친 중년 남자들... 양복 윗도리를 벗어 한쪽팔에 걸친, 하소연하는 듯한 표정을 억지로 감추고 한사코 당당하게 걷는 땀에 절은 세일즈맨들... 빚에 쫓기는 듯한 얼굴로 바깥을 내다보는 상점집의 남자들... 배꼽을 드러내고 칠부팬츠에 통굽 슬리퍼를 끌고 가는, 가출이라도 했을 것 같은 노랑머리처녀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사람들... 어디에나 있지만 절대로 알게 될 리 없는, 절대로 기억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 빠르게 다가와서는 스쳐갔다. 더러는 눈이 마주치고 서로의 어떤 점 때문에 조금씩 놀라기도 하면서... 그런 사람들 속을 걸으면서 나는 이상할 만큼 위안을 받곤 다.  225  p



  쥴 앤 짐 ㅡ1997년 개봉


  1912년 파리, 문학과 예술로 우정을 쌓아가던 쥴과 짐은 아름답고 자유분방한 여자 카트린을 만난다. 쥴과 짐은 동시에 매혹적인 카트린의 매력에 빠진다. 카트린은 자유롭고 구속되기 싫어하는 짐에게 더 끌리면서도 짐보다 안정감이 느껴지는 쥴과 결혼을 한다.

 쥴과의 결혼생활에 권태를 느낀 카트린은 짐과 사랑에 빠진다. 카트린의 곁에 친구로라도 끝까지 남아 있고

싶은 쥴은 그녀와 짐의 사랑을 인정해 준다. 침실도 내어주고 셋이 같이 살기도 한다. 셋이 함께 하는 사랑도 잠시, 짐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자 카트린은 자신의 차에 짐을 태우고 끊어진 다리 위로 달려 나가 추락한다.

  자신의 사랑 앞에서 솔직하고 자유분방했던 카트린이 짐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운 것은 어째서 그토록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일까.  까트린의 사랑은 '나는 이중의 사랑을 해도 너는 절대 나만 사랑해야 한다, 내 사랑은 변해도 너의 사랑이 변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지독히 이기적인 사랑이었을까.  

 



글루미 선데이   2016년 개봉

자보와 일로나는 연인사이로 부다페스트에서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레스토랑에 새로운 피아니스트 안드라스가 취직한다. 안드라스는 아름다운 일로나에게 첫눈에 반해 자신이 작곡한 아름답고 우울한 선율의 노래 '글루미선데이'를 선물한다. 일로나의 마음도 안드라스를 향하기 시작한다. 일로나는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차마 일로나를 포기할 수 없던 자보는 그녀의 사랑을 인정해 주기로 하고 안드라스도 일로나의 동시 사랑을 받아들인다. '전부를 잃느니 반만이라도 갖겠다'는 세 사람의 사랑은 표면적으로는 순탄하게 유지된다. 안드라스의 자작곡 '글루미선데이'가 유명해지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하는 가운데 부다페스트는 나치에 점령당한다.

  유대인이었던 자보는 수용소에 끌려갈 위험에 처한다. 일로나는 독일군 장교 한스의 육체적 요구를 들어주면서까지 자보를 구하려 한다. 그러나 한스의 배신으로 자보는 수용소로 끌려가고 안드라스 또한 자신의 존엄을 짓밟는 독일장교 앞에서 권총 자살한다.

  60년 후 부유한 사업가가 되어 레스토랑을 찾아온 한스에게 일로나는 자신이 사랑했던 두 남자의 복수를 한다. '글루미선데이' 노래가 울러 퍼지는 가운데.


  유튜브로 무료로 제공되기에 '글루미 선데이'를 다시 또 보았다.( '쥴 앤 짐'은 유튜브에 제공되지 않았다.)  '너의 전부를 잃느니 반만이라도 갖겠다'는 자보와 안드라스의 사랑엔 언뜻언뜻 슬픔과 아픔과 혼란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동시에 두 남자를 사랑하고 동시에 두 남자의 사랑을 받는 일로나는 그냥 행복하기만 했을까.  나치의 점령으로 인해 세 사람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런 외부적 상황이 아니었더라도 분명 비극으로 끝났을 것 같다. '유리로 만든 배'가 그랬고 '쥴 앤 짐'이 그랬듯이.

  제도권 밖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야 한다. 그래야만 권태를 습관처럼 걸치고 슴슴하게 사는 제도권 안의 평범한 우리가 덜 억울하지 않겠는가.  


  다시 듣게 된 '글루미 선데이'의 선율은 여전히 아름답고 우울했다.  그 아름답지만 어두운 정서에 함몰될 것 같아 듣다가 중간에 그만두었고 다시 듣지도 않았다. 이 영화를 봤던 당시에는 이 노래를 껴안고 살았던 것 같은데.... 젊었던 나는 어둡고 우울한 정서를 기꺼이 받아들였다면 지금의  나이 든 나는 아예 그런 정서를 내쳐버린다. 그만큼 현실적이 되었다는 것인가 싶어 안도하면서도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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