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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Jan 23. 2024

나는 당신보다 더 잘 쓰거나 더 못 쓸 의향이 없다

  박연준 산문ㅡ고요한 포옹


  

  박연준 시인은 시를 좋아하는 친구가 좋아하는 시인이어서 알게 되었다. 도서관의 서가를 어슬렁거리다가 시인의 첫 산문집 (소란)을 우연히  만나 읽게 되었고 이후 (모월모일) 읽었다.  좀 오래된 듯하다.

  이 책은 며칠 전 도서관의  신간 코너에 꽂혀 있어서 신간인 줄 알았는데 작년 봄에 나온 책이다.  

  시인의 산문을 읽으면 뭉툭했던 마음은 섬세해지고 뾰족했던 감정은 순해진다. 누추한 일상에도 애정이 가고 늘 보던 길가의 나무 한 그루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집에는 손이 안 가니 나는 역시 산문적인 인간인가 보다.        여기엔 다 옮겨 적을 수 없기에 순전히 개인적으로 나의 마음에 와닿아 흔적을 남긴 문장만을 옮겨 보았다.



  

      이 책에는 수많은 금이 들어 있다. 금 간 영혼을 수선하느라 골똘히 애쓴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되고 싶은 나'와 '되기 쉬운 나' 사이에서 괴로워하다 금을 간직한 내가 되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제 나는 열정적 포개짐보다 고요한 포옹이 좋다. 당신이 간직한 금이 혹시 나로 인해 부서지지 않도록 가만가만 다가서는 포옹이 좋다. 등과 등에 서로의 손바닥이 닿을 때, 가벼운 포개짐이 좋다. 고양이처럼 코끝으로 인사하며 시작하고 싶다. 끔찍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금 간 것을 계속 살피고 보호하려는 마음을 키우고 싶다. 어렵더라도.  -책머리에



  나는 당신보다 더 잘 쓰거나 더 못 쓸 의향이 없다. 나는 딱 나만큼 쓸 것이다.

  살면서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 한다. 창작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잘하고 못할 수가 없다. 딱 자기만큼(정확히는 자기 안목과 성실한 만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연연해야 할 건 나, 내 삶, 내 생각이다. 네, 네 삶, 네 생각은 다른 차원에서 생각할 문제다.   67 - 68 p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모든 규칙과 규율을 싫어하는 타입이다. 재미는 불균형과 불규칙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글쓰기가 반복적인 일 같지만 천만의 말씀! 글쓰기는 매일 다른 걸 보고 다른 걸 생각하며 다른 걸 쓰는 일이다.


  재밌고 신선한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어느 하루는 구름을 발견하며 아침을 시작해 구름을 보내며 밤을 맞이하고 싶다. 구름은 균형을 몰라도 아름답다. 각자의 속도로 흐르다 사라진다. 의무와 책임과 걱정에서 놓여나 창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낭비하는 삶(그게 뭐든!)을 두려워하지 않고 싶다. 

  낭비 이후에 오는 건 가난함인데, 그 가난한 마음이란 예술과 닿아 있어 이게 참 괜찮다. 버려지고 떨어지고 실패한 다음, 그다음에야 갖게 되는 게 있다.

  어느 하루는 나태함이라는 가운을 입고,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느끼며 휘청휘청 걷고 싶다. 뜬구름처럼, 완벽한 하루일 게 틀림없다.  71 p


  우울은 슬픔을 두드려 얇게 펼친 것.  엷은 분노. 슬픔보다 진하진 않지만 광활하고 끝을 알 수 없는 무엇.

  우울의 우물은 좁고 깊습니다. 누구도 빠질 수 있고 습관적으로 빠지거나, 들어가면 나오기 싫어하는 자도 있습니다. 우울한 사람은 무엇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문을 닫고 돌아눕지요. 누워서 무언가를 기다립니다. 그 무엇이란(심각할 때 말이지만) '죽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우울한 사람은 죽음을 생각하지만 실행할 힘이 모자랍니다. 누가 저에게 우울이 뭔지 한마디로 말해보라 하면 모든 면에서 힘이 모자란 상태라 답하겠습니다. 우울한 사람은 시들어 있습니다. 빛, 흙, 물을 앞에 두고도 양분으로 삼지 못하는 식물과 같은 상태이지요. 사계절을 겨울나무로 살아야 하는 힘없는 존재, 돌아누우면 베개 위로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는 것. 도망치고 싶은 매일의 낮과 밤을 사는 것입니다. 73 p


  이제 누구도 우연에 기대지 않는다. 우연에 깃든 낭만성을 무시한다. 가끔 아무 곳에나 내려(검색 없이!) 며칠간 헤매는 여행을 하고 싶다. 아무 정보 없이 헤매다 발견하는 우연들, 진짜 삶을 살고 싶다. 누군가 간 곳, 누군가 먹은 음식, 누군가 묵은 곳, 누군가의 발자취를 좇아 하는 여행은 피로하다. 다 남이 떠먹여 주는 삶이다.  85 p


  나무는 단순하지 않다. 나무 안엔 단단함과 부드러움, 축축함과 건조함, 부동성과 유동성, 성장과 늙음, 화려함과 수수함, 고요함과 수선함, 크고 작음, 수평과 수직이 고루 들어 있다. 나무의 뿌리, 흙을 훔켜쥔 손가락 같은 뿌리는 성장의 열쇠다. 나무는 뿌리를 이용해 흙을 훔켜쥐고 물을 흡수하고 어둠 속에서 기지개를 켜며 성장한다. 이파리가 마음껏 흔들릴 수 있는 건 뿌리 덕분이다. 뿌리가 아래에서 튼튼하게 버티고 있기에 나뭇가지가 가벼이 흔들릴 수 있다. 91 p


  불안은 달라지고 싶다는 열망이 담긴 씨앗이다.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알 수 없는 캄캄한 씨앗. 불안은 내게 요구한다. 행동하길, 건조한 표피를 뚫고 돋아나길, 푸르러지길, 자라길, 타오르길, 사방으로 흩어지고 다시 하나로 모여 다른 나로 변하길.  성장은 이 캄캄한 씨앗(불안)이 내면에서 싹튼 결과일 거라 믿으며, 나는 허기를 느낀다.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의무감으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자연스레 내게 스며드는 공부를 원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채워야 커진 배가 부를 수 있을까. 불안은 어른을 공부하게 한다. 95 p


  운전을 하면 내 삶을 원하는 쪽으로 몰고 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운전대를 잡다'라는 관용어가 있는 것처럼.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방식 중 하나가 운전을 직접 하는 일이란 걸 알았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운전을 하면서 '위험하니까' 당신은 운전을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편안하게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라고. 그는 왜 우리가(그렇다. 아직 운전에 미숙한 우리들) 유독 위험에 취약할 거라 단정 짓는 걸까? 마치 험하니까 혼자 여행하지 말라는 말, 위험하니까 혼자 살지 말라는 말,  위험하니까 무언가에 도전하지 말라는 말처럼 위험하다.

135 p

(나, 초보운전자... 그래그래... 겁먹지 말자 포기하지 말자고...)


  죽음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할머니의 늙어가는 모습이었다. 죽음은 직방이지만 노화는 회적이고 점층적이다. 노화는 반복이다. 속절없음이다. 노화는 오랜 시간 한 사람 곁을 배회한다. 떠나는 듯 보이나 더 확고히 돌아온다. 돌아와 머문다. 노화의 주특기는 협박이다. 주기적으로 독촉장을 보내는 쟁이처럼 끈질기다. 갚아야 할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시달리는 일, 노화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언제나 복판에 서 있는 기분을 준다. 141 p

(언제부턴가 노화나 죽음이란 단어가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는다...)


  술은 우리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네 정신을 다오. 그러면 나는 정신을 제외한 모든 걸 네게 줄게 "........ 술을 마시는 자는 준비하는 사람이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준비, 슬픔을 해방할 준비, 매일의 긴장으로부터 벗어날 준비, 웃고 떠들 준비, 울고 하소연할 준비, 잠잘 준비, 모든 준비로부터 벗어날 준비, 술은 준비하는 우리를, 우리의 정신을 조종한다. 술은 매혹적이고 위험한 열쇠다.......  정신을 차리고 싶어 술을 마시는 자는 없다. 흐트러지고, 위안을 얻고, 잊고, 기억하고, 놓치고, 그리워하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용기를 얻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 술은 '잠시'라는 여원의 시간을 우리에게 허락한다. '잠시' 인생에 응석을 부릴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우리는 술잔을 든다.......  지금은 술잔을 쥐고도 술에게 정신의 전부를 내주지 않는다. 술의 입장에선 약아빠진 거래자이고, 세상의 입장에선 더는 젊지 않은 취객으로 보이려나? 이제 나는 한 잔 혹은 두 잔을 마실 뿐이다. 내일을 생각하고, 마음 한가운데의 추를 염려한다. 여러 잔이 되더라도 갈 길을 헤아리며 취한다. 145 - 147 p

(술 쫌 하는 나, 이기에 아주 격하게 많이 많이 공감했다....)





  사람들은 마음을 쓰고 싶지 않을 때 숨는다. 정확히는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을 때 숨는다. 161p

  (나 요즘 거의 칩거 중인데... 그럴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에 앞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알맹이가 '스스로 나오고 싶어질 때' 말이다.

  가령 글을 쓸 때 쓰고 싶은 마음이 안에서부터 치밀어 오르길, 종이 위로 글자들이 뛰어내릴 준비를 마치길 기다려야 한다. 그럴 때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편안한 글이 태어난다.  196p

(언제? 언제? 도대체 언제??)


  주란 씨 소설은 극적인 장면 없이 고루 팽팽하고, 대단한 플롯 없이도 완벽하며 시 없이 시로 가득하고, 청승 없이 슬픔의 끝점을 보여주죠. '도- '라는 음계만으로 이루어진 음악 같고, 연노랑으로 그린 핏물 같고, 발 없이 멀리 가는 구두 한 켤레 같고 또..... 제가 잘 아는 세계, 잘 아는 사람, 오래 지켜온 비밀을 모아둔 화단 같아요..... 251p (시인이 이주란 소설가에게 쓴 편지글 중에서)




 

 글 중에 시인의 집에 책이 8천 권이 넘으며 남편이 책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고 해서 찾아보았더니 시인 장석주가 시인의 남편이다. 둘은 시인이 대학교 때 스승과 제자로 만났으며 나이 차이는 25살. 나는 특별한 이력(특히나 사랑은 더욱!!)의 작가에게 맘이 더욱  이끌리는 성향이기에 박연준 시인이 더욱 좋아졌다. 시인의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보고, 특히 시인이 팬이라고 편지글을 쓴 이주란 작가의 책도 찾아 읽어보아야겠다. 나는 이런 식으로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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