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 친구 대여섯 명이 같은 시(市)의 10 - 20분 거리에 산다는 것은 그 존재를 모르고 사는 경우를 포함해서 어쩌면 흔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창 친구 6명이 고향도 아닌 타향의 어느 한 곳에 우연히 모여들었고 한 명씩 두 명씩 그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 중 한 두 명의 주선으로 첫 모임을 가진 이후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은, 주변을 둘러보아 그리 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만 이웃시에 살지만 거리나 위치상 같은 시에 산다고 해도 될 만큼 가깝다.
물론 그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일곱 명이었다가 여섯 명이었다가 다섯 명이었다가 다시 여섯 명이 된 변화도 있었다.
모임의 인원과 영업시간에 제한을 받던 코로나 시기에는 당연히 모임을 갖지 못했다. 코로나가 점차 잠잠해지고 사회적 제약이 조금 느슨해졌을 때는 친구의 사무실에서 먹을 음식을 배달시키고 집의 음식을 바리바리 싸 와서 모임을 가졌다. 씻은 쌀이 담긴 전기밥솥과 금방 끓인 어묵탕이 담긴 냄비와 휴대용 노래방기기와 사이키 조명까지 가져왔었다. 그러니 오히려 가게에서 모임을 가질 때보다 더 푸짐하고 여유 있는모임이 되었다. 모두 직장도 가까운 거리에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섯 명 중 세 명이 개인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멤버들끼리 마음이 맞지 않으면 또 불가능한 일일 터이다. 무엇보다 이 모임을 세상이 두 쪽 나도 이어가려는 의지가 강한 회장과 총무의 남다른 애정이 없었다면 진즉에 흐지부지 되고 말았을 터이다.
회장(남)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다른 그 어떤 모임보다도 동창 친구들로만 구성된 우리의 이 모임처럼 편하고 즐겁기만 한 모임은 없다며 모임 때마다 '우리 이 세상 하직하는 그날까지 함께 쭈욱 가는 거야...'를 외친다. 모임이 끝나면 바로 다음 달 모임날이 기다려지고 모임날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니들은 그렇지 않냐고 술기운을 빌어 불콰해진 얼굴로 지주 고백한다. 정말 못 말릴 애정이다.
그리고 총무(여)로 말할 것 같으면 무조건 재밌게 즐겁게 살자,라는 좌우명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 열혈 놀이 파다. 한 달에 5만 원씩 내는 회비로 실컷 먹고 놀고도 늘 통장에 잔고가 두둑할 정도로 세심하고 알뜰하다. 그래서 지난여름 대부도에서의 총동창회 때는 우리 모임의 이름으로 음료수와 비스킷과 건과류 한 봉지씩을 선물을 나눠줬으며(총무가 밤새 봉지봉지 쌌다) 30여 명 분의 점심 칼국수 역시 우리 회비로 대접을 했다. 서울에서 거제도까지 총동창회의지역 모임 중에서 우리처럼 오래도록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은 우리 모임이 유일하다.
우리 모임의 총무는 총동창회의 총무도 역임했었다. 그 2년 동안 회원이 가장 많이 늘었으며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각 지역의 지역장을 선출했으며 리와인드 수학여행을 추진했으며 한탄강에서의 래프팅을 추진했으며 먹고 마시는 동창회에서 산악바이크 레일바이크 등 액티브 한 동창회로의 변화를 시도했으며 모임에 맞는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도 그때 등장했다. 동창 모두는 우리의 총무를 '태어날 때부터 총무, 뼛속까지 총무'라는 칭찬을 진심으로 아끼지 않았다.
그 때 우리 여섯 멤버는 노래방에서 연습한 당시의 (2018년쯤?)인기 섹시걸그룹 (시스타)의 (나혼자)에 맞춰 엉망으로 망가진 섹시한 공연도 했었다. 당연히 총무의 의견으로 시작했었다. 풍성한 가발과 선글라스로 최대한 일굴을 감추고 눈꼽만큼도 섹시히지 않은 중년의 남녀 6명이 섹시하려고 어설프게 흉내내려 애쓰는게 웃겨서 더욱 함성과 박수를 많이 받은 공연이었다. 앵콜까지 받은 성공적인 공연이었지만 다시 하라면 죽어도 하지 못할, 우리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코믹 섹시 공연이었다. 공연의 리더는 그나마 춤실력이 좀 나은 '나'였다는...
시스타
무엇보다 그런회장과 총무의 의견에 무조건 따르고 보는 나를 비롯한 나머지 네 명 멤버의 전적인 믿음과 의리도 빠질 수 없다. 어떤 의견을 내놓아도 무엇을 하자 해도 반대를 하지 않는다.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 송년회는 코로나 시국도 아닌데 친구의 부동산 사무실에서 할 거라는 밴드 공지가 떴다. 이번에도 역시나 왜 분위기 좋은 가게에서 안 하고 부동산 사무실이냐, 와 같은 이의를 아무도 제기하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좋아요, 오케이, 네, 넵.... 이런 댓글만 달렸다.
전날 내린 눈이 곳곳에 쌓여 그대로 얼어붙은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모두가 퇴근하는 저녁 6시 반 무렵 친구의 부동산 사무실에 하나 둘 모여들었다. 창은 오는 길에 미리 예약해 놓은 해물찜 전문 속초집의 코다리조림을 찾아서 들고 오고 총무는 김장김치와 파김치 마늘장아찌 무말랭이 김 등 밑반찬들과 크리스마스 연말 분위기를 낸다고 특별히 알전구와 사이키조명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부동산사무실 주인 친구는 햇반을 데우고 어묵탕을 끓이느라 분주하고 마지막으로 회장은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들고 들어왔다. 아이스박스엔 오늘의 주인공 산지 직송 대방어 한 미리가 들어 있었다. 회장은 낚시를 오랫동안 즐겨온 낚시꾼답게 사무실에 딸린 작은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망설임 없이 회를 뜨기 시작했다. 멤버 중 가장 소극적이어서 늘 미안한 마음인 나는 오는 길에 뉴욕롤빵 세트를 사들고 갔다.
역시 제철인 대방어, 제주도에서 막 도착한 대방어, 직접 큼지막하게 승덩숭덩 회를 떠서 한 점도 두껍고 푸짐한 대방어회는 그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오게 했다. 낚시꾼인 회장은 방어회는 흰 부분을 먼저 먹으라는 것과 초고추장과 간장겨자에 찍어 먹는 것보다 김치 한 조각과 함께 김에 싸서 먹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색다른 맛이었다. 먹으면서 마시면서 떠들면서 동영상도 찍으면서 사진도 찍으면서 9시까지 놀고 자리를 치웠다.
이제 귀가냐고?
천만에....
우리 모임의 필수코스인 노래방으로 고고!!
우리의 노래방도 10년 단골이어서 한 시간 요금에 한 시간 추가 서비스 시간을 넣어 준다. 총무와 부동산 친구는 술을 못 마시는데 노래방에서는 가장 많은 노래를 부르고 가장 늦게까지 춤을 춰가며 지치지도 않고 잘 논다. 반면에 나를 비롯해서 술을 마시는 나머지 친구들은 그날의 술 주량에 따라 어떤 날은 노래도 잘하고 늦게까지 노는데 어떤 날은 몇 곡 못 부르고 취기를 못 이겨 소파에 누워서 잠을 자기도 한다. 일부러 깨워서까지 노래를 시키지는 않는다. 노래 부르는 친구는 노래 부르고 춤추는 친구는 춤추고 계속 술을 마시는 친구는 계속 술을 마시고 한쪽에서는 잠을 자기도 한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각자 자유롭게 놀거나 쉬지만 귀가는 꼭 같이 한다. 초창기에는 거의 새벽 한 시나 두 시, 세 시까지 이어지기도 했는데 그때쯤에는 노느라 배가 꺼진 시간이라 24시간 영입하는 가게에서 잔치국수와 김밥으로 마무리를 했다. 모두의 집이 가깝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처음보다는 그 분위기가 시들고 나이도 적잖게 들어서 초창기만큼 늦게까지 놀지 못한다. 가끔 우리 전에는 이랬는데... 하면서 아련한 추억으로 회상할 뿐.
이렇게 그 달의 모임이 미무리되면 부동산 친구가 모두를 자기 차에 태워 각자의 집 앞까지 안전 귀가를 시켜준다. 술을 못 마시면서도 끝날 때까지 함께 하는 운전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는 것은 그 모임의 아주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다음날 총무는 우리 모임 밴드에 'ㅇㅇ모 보고서'를 올린다. 전날 들어온 회비와 모임의 지출 영수증과 사진과 동영상을 간단한 소회와 함께 올린다. 그 소회란 길든 짧든 요약하면 '덕분에 어제도 즐거웠다 앞으로도 즐겁게 놀자'는 내용이다. 그리면 우리도 '이번 모임도 즐거웠다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다음 모임에서 또 즐겁게 놀자 회장 총무 애썼다' 같은 댓글을 올린다.
가끔 밴드에 들어가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함께 해 온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차곡차곡 쌓여 있는 추억의 책장 속에서 우리를 공평하게 즈려 밟고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본다.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시간이다.
내년이면 우리 모임이 10주년이다.
회장과 총무는 10주년 기념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벤트 한 두 개를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사진관을 빌려 기념시진을 찍는다던가 여행을 간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