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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May 11. 2024

불량품들의 사계

구멍 난 너를 꿰매 입는다 98

구멍 난 너를 꿰매 입는다          

                   



검정 셔츠 서너 개가 옷걸이에 걸려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청바지에 셔츠를 받쳐 입는다. 봄가을에는 셔츠를 겉옷으로 입고 여름에는 소매를 걷어입는다. 겨울에는 겉옷 안에 받쳐 입는다.

낡은 검정 셔츠를 입고 어깨를 올리자 겨드랑이가 찢어졌다. 셔츠가 찢어지면 대충 꿰매서 입는데 겨드랑이 꿰매기는 고약하다. 기워 입으려고도 해 봤지만, 언제부턴가 바늘귀에 실을 넣기가 어렵다. 눈이 나빠진 것도 있지만, 오른쪽이 황반변성이다. 거리 감각이 없다. 그래서 그냥 세탁소로 달린다.

나는 맘에 드는 옷은 닳아져 찢어질 때까지 입는다. 세탁소에서 기워 입은 옷들이 몇 개나 되는지 모른다. 단추가 떨어지면 떨어진 대로 입고 다닌다. 짝 없는 양말과 구멍 난 양말도 무진장 많다. 급하면 짝짝이 다르 게 신고, 눈 밝은 친구들이 오면 꿰매달라 하려고 버리지 않았다.     


내 유니폼이나 마찬가지인 찢어진 청바지는 처음부터 찢어진 것을 산 게 아니었다. 입고 자고 출근하면서 몇 년을 입었더니 너덜너덜해졌다. 너덜거리다 못해 살짝만 힘을 가해도 찢어졌다. 세탁소에서 천을 대고 또 찢어지면 덧대고 재봉틀로 논바닥 쟁기질하듯 박아 입었다. 이렇게 흐물흐물한 청바지가 장롱 속에 몇 개나 있다.

언젠가 버스 타고 집에 오다가 의자에 일어나면서 바지 허리를 잡아 올렸다. 엉덩이가 지직직 찢어져 버렸다. 속옷이 보였다. 셔츠를 벗어 허리에 묶고 엉덩이를 가리고 집으로 왔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친구들은 제발 찢어진 옷을 버리라고 한다.

“너랑 창피해서 못 다니겠다. 제발 버릴 것은 버려야!”

“그럼 느그들도 버려분다!”

친구들은 나의 한방에 웃고 만다.

“그래 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      


방이동 살 때다. 집 맞은편 백양 세탁소에 맡긴 청바지를 찾으러 갔다. 세탁소 사장이 아내와 둘이 나눈 이야기를 나에게 말했다.

“요새 누가 이렇게 꿰매 입을까?.”

부인은 이해가 안 된다는 투로 말했다.

“떨어진 옷 자주 가져오는 사람이야.”

남편이 말했다.

“아, 그 사람?”

부인이 깔깔대고 웃더니 두말 안 하고 꿰맸다고 사장인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말했다.

“옷이든 사람이든 맘에 들면 나는 끝까지 가요.”

내 말이 끝나자 재봉틀을 돌리던 손을 멈추고 부인이 나에게 말했다.

“이제 갖다 버려요.”

“내가 뭘 쉽게 내뿔지 못하는 성격이라.”

“요새 누가 옷을 꿰매 입어요, 이쁜 옷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몇 살까지 옷을 기워입나 보고도 싶고, 떨어진 청바지는 언제까지 입을 수 있나 해 볼라고요!”

“아이고. 그냥 버려요.”

“나는 누가 싫증 난다거나 낡아서 버린 옷도 내 맘에 들면 가꼬 와서 입어요.”   

내 성격이 그런 걸 어떻게 하겠냐고 했다. 부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깔깔거렸다.     


한 번은 잠옷을 얼마나 오래 입었는지 엉덩이에 구멍이 났다. 놀러 온 친구들이 내가 잠깐 시장 보러 갔다 온 사이 잠옷을 버렸다. “잘 때 입은 것 좀 찢어지먼 어쩌냐고! 방바닥이 잠 안 재워 준다고 허디!” 그날 그 친구들은 죽음 직전까지 갔다. 119를 부를 뻔했다.   

   

그렇다. 나는 준 정을 쉬 버리지 못한다.

지난 시절 나를 버렸던 사람들과 내가 밀어낸 사람을 아직도 가슴속에서 내치지 못하고 있다. 그 사람들 숨소리가 내 안에서 들릴 때면 나는 그 시절의 상처를 쓰다듬으며 산을 오른다. 그 흉터가 나를 쑤시고 흔들지만, 이상하게 낡은 것들은 나를 편안하게 한다. 내 몸을 따뜻하게 한다. 그래, 재봉틀로 박은 실밥 좀 보이면 어때. 내 옆 구멍 난 사람들, 실밥의 힘으로 구멍을 메꿀 것이다. 그 구멍을 꼭 껴입고 갈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래된 사람이 좋다. 몸에 익은 옷을 입으면 가장 나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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