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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May 14. 2024

불량품들의 사계

공무원은 출장 중 99

공무원은 출장 중    

         -고골 전나무는 수호신

    

해가 질 때면 나는 평상에 앉아 “나무”하고 부른다. 나무는 물속에서 걸어 나온다.

집 계곡을 지나면 맞은편에 백 년은 훨씬 넘은 전나무가 서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나무는 가지를 흔들어 자신이 곁에 있음을 알렸다. 전나무는 남한산성 북문 꼭대기를 넘어 하늘을 찌를 듯했다. 치솟듯 솟구치는 그 거침없는 기세가 정말 대단했다.

산에 갈 때면 나는 전나무 옆을 지나갔다. 나무 허리에 손을 대고 내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산으로 발을 뗐다.   

  

생강나무와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놀러 온 친구들이 산에서 진달래꽃을 따왔다. 화전을 부쳐 막걸리에 꽃잎을 띄워 마루에서 마시고 있었다. 나는 숟가락으로 식탁을 치며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를 흐느적거리며 뽑아 올렸다. 트로트 가수 송가인이 혜성처럼 나타나고부터 나는 노래를 끊었다. 그런데 오늘은 겸손하지 않기로 했다.

술이 올라왔다. 여자 셋은 봄바람에 눈이 가물거렸다. 오늘따라 풀치 떠드는 소리 대신 까치가 심하게 울었다. 그때 어디선가 굉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감기던 눈을 뜨고 창밖을 일제히 내다봤다. 계곡 건너 밭 끝에 소나무가 넘어가고 있었다. 소나무를 자른 사내들이 그 곁의 거대한 전나무를 베기 위해 나무 옆으로 사다리차를 대고 있었다.

“저런 염병할 놈들!” 나는 물로 입을 헹구었다.

고등학교 미술 선생인 친구 주경이가 제일 먼저 뛰어갔다. 한문 선생인 친구 지향이도 발이 안 보이게 뒤를 따랐다. 나는 술 냄새를 지우기 위해 물을 한 모금 더 마시고 뛰었다. 그 사이 사내들은 사다리차에서 전나무 가지를 자르고 있었다.     

“미쳤어요! 세상에나 이 나무를 자르고 싶어요?”

우리는 합창하듯 사내들을 향해서 악을 썼다.

“누가 나무를 베라고 헙디까?”

나는 따지듯이 말했다.

“민원이 들어와 시청에서 베라고 해 나왔어요.”

전기톱을 든 두건 쓴 젊은 사내가 말했다.

“돌아도 제대로 돌아부렀구만.”

나는 다시 한번 저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누구 맘대로 잘라요? 동네 사람 전부가 민원인이에요. 우리 생각은 물어나 봤어요!”

평소 조용하던 주경이가 격렬하게 말 폭탄을 쏟아냈다.

“얼마 안 있으면 이 나무도 베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디 그새를 못 참아 굳이 지금 벨라고 그러요!”

나는 열에 뻗친 말투로 하소연을 했다.

이미 전나무 근처의 수많은 나무가 잘려나갔다. 그 자리에 물류창고가 들어섰다. 그때 지은 물류창고 지붕으로 전나무가 넘어질까 봐 벤다고 사내들이 설명했다.

“나 참, 그동안 멀쩡허던 나무가 갑자기 쓰러질 것 같어 벤다고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허는 거요!”

나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은 저들에게 코 아래까지 다가서서 말했다.

주민 대여섯이 모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중에 안면이 있는 아줌마도 있었다. 대형 강아지를 키우는 아랫집 그 아줌마는 내 눈빛을 피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시청에 전화했다. “담당자가 출장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내 통화를 듣고 있던 그 아줌마가 기가 죽은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가지만 잘라주라고 했는데 통째로 베어야 나온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요.”

세상에 저게 할 소리인가. 자기도 저 나무를 벤다는 것이 뭔가 마음에 걸리니까 내 얼굴을 피하는 것이 분명했다. 처음부터 자기가 민원을 넣었다고 당당하게 말도 못 하면서 도대체 왜 자신이 혼자서 민원을 넣었을까. ‘구신은 뭐 하고 있을까, 저것들 다 안 델꼬 가고.’     

그동안 이 마을을 지켜봐 온 저 전나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에 의해 조선 병사 3백 명이 이곳 고골 법화골에서 몰살당하였다. LH는 그 뼈 위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우리를 나가라고 했다. 묻고 싶다. 굳이 여기에다 아파트를 지어야 할 이유를. 주민들은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하니까, 큰 나무 하나 베고 그 아래에 수십 개 나무를 여기저기 심었다. 나무하나하나에 가격을 쳐준다는 소문이 마을을 떠돌았다.

민원이 만능인가. 대대로 살아온 원주민들을 내쫓고 이 마을의 기억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위해 아파트 짓는 것을 주택정책이라 할 건가. 수십 년이 걸리더라도 주민들 설득해 합의가 이루어졌을 때 이주할 곳을 마련해 주면 누가 뭐라고 할까. 이사 가기 싫어 밤마다 뒤척거리는 주민들의 마음을 반나절이라도 헤아려 본다면 좀 더 섬세한 정책이 될 텐데, 그런 정부는 어느 책에나 있는 꿈같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강줄기 하나 산맥 하나 땅 한 평이 사람과 맺는 인과를 굳이 설명해야 한다는 말인가.  남한산성은 유네스코에 등재 되었다.

나는 흥분한 상태로 고개를 꼿꼿이 들고 나무를 자르러 온 사내들한테 말했다. 내가 이렇게 바득바득 대들 수 있었던 것은 막걸리 덕이다.

“이 전나무는 마을 수호신인디 이렇게 막 자를 수 있는 거요?”

“이 나무가 수호신이라면 저놈들이 벼락 맞아버렸겠지요.”

옆에 서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이 말했다.

“나무는 그냥 나무일뿐입니다.”

두건을 쓰고 가지를 자르던 전기톱이 냉정하게 말했다.

“너는 너희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으니 할아버지 묻힌 자리를 그냥 흙일뿐이라고 할래. 이런 것들이 공무원이라니...”

조용히 말씀하시던 어르신이 분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해 냈다.

“그렇게 생각하면 쉽겠죠. 사람도 사람일 뿐 언젠가는 다 죽어 사라지는 겁니다. 저 나무가 고골 수호신이라면 이 마을이 사라지도록 놔두겠습니까?”

전기톱은 여전히 냉정한 톤으로 대꾸를 하고 있었다.

시청에서 공무원이 나올 때까지 우리 셋은 나무를 막고 서 있었다. 사내들이 사다리차에서 내려왔다. “무슨 이런 여자들이 다 있어?” 그런 얼굴로 우리를 윽박질렀다. 그중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한 사내는 시청에서 사백만 원을 받고 나무를 자르기로 했다고, 오늘 무조건 잘라야 돈을 받는다고 했다. 나는 시청직원에게 전화로 말했다.

    

“당신들이 나무를 직접보고 결정 헌 거요? 전문가들을 모시고 와서 보고 결정했소? 당신들 눈에는 이 나무가 바람 불면 넘어가게 보입디까? 허기야 담당자가 출장 갔다니 여기 와보기나 했겄어. 당신들이 올 때까지 우리는 여기 누워 있을랑 께. 알아서 허시요”

시청직원은 여전히 자기가 담당자가 아니라서 무어라고 답을 못하겠다고 했다.

사내들과 우리는 네 말이 맞니 내 말이 맞니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여자가 나무주인이라면서 말했다.

“내가 심은 나무예요.”

나는 웃음이 나왔지만 참았다. 이제 50을 막 넘긴 듯한 여자가 자기가 나무를 심었다고 나서다니 제정신인가 싶었다.

“나 참, 무슨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여. 구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도 아니고 아줌마 나이가 백 살이 넘었소? 백 년 전에 타임머신 타고 와 여기다 이 전나무를 심었구만. 참 대단 허요. 대단해. 돈이 필요하면 조상 묘도 팔 것 네!”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주민들이 여기저기서 킥킥거렸다. 몇몇은 손을 아래로 내려 손바닥 치는 시늉을 했다.

옆에서 이 말을 다 듣던 지향 친구가 말했다.

“이 나무는요, 바람과 햇빛과 비와 수많은 시간이 쌓이면서 마을과 함께해 온 나무예요”

“옳소” 주민들과 나는 박수를 쳤다.

“내가 나무를 몇천 개 베러 다녔어도 이런 사람들은 첨 봤네.”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사내가 말했다.

“아따, 오늘 보게 생겼구만. 근디 그렇게 많은 생목숨을 톱으로 짤라 불고 댕겼소.”

나는 막걸리 덕분에 일 미터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내들에게 비꼬는 투로 말을 투척했다.

옆에 서 있던 눈이 부리부리한 젊은 남자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약간 쫄았다.

“어이, 아줌마들이 뭔데 남의 일 방해하는 거요.”

“아, 내 성격 테스트를 허나. 나도 열받으먼 도는 사람이여. 뭐 아줌마라고? 나도 돌아 불먼 제자리로 안 돌아온께 건들지 말어.!”     


녀석이 얼굴을 붉히는 동안 시청직원이 왔다. 나는 속으로 정말 반가웠다. 실은 내 작은 심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전기톱을 나무에 대면 그걸로 종 치고 막 내리는 것이었다. 서류에 도장 찍는 일이라면 도장을 안 주면 되지만, 지금은 힘으로 밀어붙이면 덩치가 작은 내가 아무리 뛰어도 바위에 메추리 알 던지기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인부들도 자기들이 보기에 세 여자가 자연보호 운동을 하는 사람들같이 보였는지 더는 심하게 굴지 않았다.

시청에서 보냈다는 사람은 키가 크고 말이 느렸다. 5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그 사람은 옆에서 우리말을 듣다가 말을 꺼냈다.

“나도 여기서 저 나무를 보고 자랐어요. 저분이 아침마다 일어나 나무에 인사를 한다 하니 이 년 뒤에나 벱시다.”

“함께 사는 방법은 없소! 저런 나무를 조경수로 사다 심을라먼 몇억이 필요할지 모르는디 공무원들 좋은 머리를 좀 굴려보쇼!”

사람들이 손바닥을 쳤다. 이렇게 좋아하는 이유는 눈만 뜨면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가지를 흔드는 전나무의 모습이 한없이 믿음직스럽고 생기가 넘쳤기 때문이었다.

그중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긴 대장 같은 남자가 철수 명령을 내렸다.

“이 백만 원어치 밖에 못 자르고 가네. 별사람들을 다 보네!”

친구들과 주민들은 웃으며 각자 집으로 향했다.

나는 나무를 문지르고 서 있었다. 철수 명령 내린 사내가 저만치 가다 다시 내 앞으로 걸어왔다.

‘아, 왜 또요. 그냥 가시지. 막걸리 기운도 다 떨어졌구만’

그러나 나는 다시 전투 모드로 눈에 힘을 주었다.

“아줌마! ”

‘뭐, 아줌마! 야, 이 사람아 난 결혼한 적 없다고.’

사내가 얼굴을 들이밀며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왜 그리 이쁘요!”

난 의외의 말에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 나갔다.

“아따, 타고난 것을 어쩌겄소. 오늘은 겸손허고 싶지 않소.”

사내와 나는 웃고 말았다.  

   

아마 그 사내는 마무리를 좋게 짓기 위해 돌아온 거 같았다. 우리가 이미 잘라 버린 나무를 문제 삼지 않을까 싶어 내게 그런 말을 한 거 같았다. 이쁜 것으로 치면 나보다 친구들 미모가 더 나은 데. 나도 눈치는 있다.

나중에 안 일지만 시청직원은 그날 오지 않았다. 그는 시청에서 보낸 우리 마을 이장이었다. 시청직원은 계속 출장 중이다.   

  

그 뒤 얼마 안 있다가 기습적으로 전나무를 베어버렸다. 날이 꾸물거려 나는 방에 있었다. 라디오 노랫소리에 기계 소리를 못 들었다. 쫓아갔지만 이미 토막 난 몸통이 밧줄에 묶여 내려오고 있었다. 신고했던 그 아줌마는 팔짱을 낀 채 야릇하게 웃고 서 있었다.

“세상에나, 등걸에 막걸리나 꼭 부어줏쑈.”

나는 집에 들어와 콧물을 화장지로 닦았다. 며칠 동안 마음이 시렸다. LH에서 아무리 마을에서 나가라고 해도 나는 최후의 1인으로 이곳에 남겠다고 맘먹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마을에 미련을 두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내가 갈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꿈속에서 나는 땅속에 뿌리를 박고 서 있었다. 나무로 변한 내 허리로 전기톱이 들어왔다. 벌거벗은 채 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가위눌린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데모할 때 경찰들과 LH 직원과 낮에 사다리차를 댔던 사람들이 뒤섞인 아사리 판 꿈에서 겨우 깨어났다. 그날 이후 전나무는 내 기억 속으로 들어와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존재가 되었다.

어젯밤 꿈속에서 보았던 얼굴들이 수족관에서 서로 엉겨 붙었다가, 물 밖으로 고개를 쳐드는 갯장어들을 연상시켰다. 전나무와 함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 지나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계곡을 건너갔다. 전나무 등걸에 막걸리 한 잔과 눈물 한 방울을 나눠주었다   

  

전나무 나이테를 따라 수 세기 속을 걸어 들어간다. 낫과 쇠스랑이 널려 있는 언덕 아래에 흰옷을 입은 제비꽃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고골 법화골, 새순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숲에서 물동이를 인 처녀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집을 잃은 까치들이 전나무 그루터기 위를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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