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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May 25.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돈 캐자 102

돈 캐자    



        

친구가 토요일 날 알바 면접 보러 오라고 했다. 나는 목욕탕에 가서 때 빼고 광내고 준비를 철저히 했다.

“어디로 가먼 될까요”

“김포공항으로요”

“뭐라고? 김포공항.”

“...... ”

이건 무슨 개 풀 뜯어먹은 소리여. 순간 열이 치밀었지만 아쉬운 것은 나였다.

“아니, 그럼 근무는?”

“김포공항이지.”

“지금 내가 하남 남한산성 꼴짜기에 사는디, 거기 갈라먼 마을버스 타고 다시 시내 진입하는 버스 갈어타고 전철 갈어타고 차를 네 번을 갈어타야 하는디......”

“그래서 내가 멀어 안 된다고 했잖아!”

평소에 단정하고 어쩜 그리 내가 좋아하는 색깔로 넥타이도 잘 매는 준호 말이 반 토막 났다. 흠잡을 데 없는 친구였다. 굳이 흠을 말하자면 키가 작다는 정도랄까. 화를 낼 줄 모른 그가 열이 났다.

“멀어도 멀어도 이이렇게 멀지 몰랐지.”

내가 아쉬워 알바 부탁은 했지만, 성질이 났다.

“알바 비는?”

“192만 원,”

“우와! ”

“쉬는 날은?”

“이틀 일하고 하루 쉬어.”

“하는 일은?”

“소독하는 일이야!”

“아! 시골에서 농약 할 때처럼?”

“누가 요새 그렇게 해에 자리는 수시로 비니까 생각해 보고 다시 연락해.”

그는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아쉬워서 더 물어보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시켜 달라고 졸랐는데 멀다고 더는 구시렁거릴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나 힘들먼 자리가 수시로 빈다잖아! 방역은 여자가 하기 심들어 그렇지?’

나는 월세 걱정을 하면서도 막상 일이 닥치니까 뒤로 빠지고 싶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내가 한없이 여물지 못해 보였다.    

 

마음을 달래려고 산에 올라갔다. 햇빛이 환장하게 좋아 중간에 내려와 버렸다. 햇볕 좋고 바람도 좋았다. 나만 안 좋았다. 바람은 나무이파리를 살랑살랑 건들었다. 나도 누군가 내 어깨를 간지럽혀줬으면 하는 맘에 괜한 어린 상추에 화풀이했다. ‘이놈의 상추 싹은 나온 지 며칠이 지났는디, 아직도 떡잎 두 장 그대로야’ 상추 떡잎 앞에서 상추에 들이대고 있었다. 돈을 심어놓고 돈 나무가 자라다면 이런 심정일까... 저 여리고 만만한 상추에 열 그만 받고 양평으로 냅다 튀었다. 양평 가는 길은 물에 비친 산 그림자가 그만이다.

얼마 전 전통음식을 배운 금희 동생이 양평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그냥 맘이 싱숭생숭해서 왔어! 산이가 봄만 되면 날 끌고 꽃구경 갔잖아. 날씨가 좋은께 맘이 어수선허네.”

나는 낮에 아르바이트 면접에 못 갔다는 말은 못 했다. 대신 엉뚱한 산이 이야기가 나왔다.

“잘 왔어! 이렇게 오니까 더 좋네요.” 느닷없이 나타났으니 뭔 일 있나 싶어 묻고 싶었을 텐데, 금희는 더 묻지 않았다.

“쑥, 냉이 천지네.”

냉이는 꽃 피기 직전이었다. 나는 면접 못 간 것은 싹 잊어버렸다. 우리 집도 천지인데 나물 욕심에 산이 생각도 잊어버렸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호미로 나물을 캤다. 슥~슥~ 흙 파는 소리가 좋았다. 얼마 안 가서 검은 비닐봉지로 봄나물이 가득 찼다.

      

쑥이랑 냉이를 넣어 부침개를 부쳐 먹었다. 나는 부침개를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도 전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잔치 날 전 부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부침개는 허전함을 진정시켜 주는 기쁨이란 말과 비슷한 음식이었다.

“맛있어?”

금희는 부침개를 손으로 찢어 내게 주었다. 금희는 전 한 장을 더 부친다.

“야! 명품 빽 안 부럽다야. 이렇게 쑥과 냉이만 있어도 세상이 내 것 돼 불고”

나는 배를 까 보이며 헛웃음을 했다.

“뭐래? 기껏 이거 먹으러 여기 온 사람처럼?”

금희는 피식 웃었다.


어느새 해가 졌다. 냉이를 챙겨서 일어섰다.

“아니, 벌써 가려고? 집에 기다리는 사람도, 강아지도 없는데?”

듣고 보니 그렇다.

“집에서 수저랑 베개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여”

나는 또 헛웃음이 나왔다.

‘참, 이상도 허다. 어째 집에 가야 맘이 편헐까?’     


차 안에서 나는 내 속을 들여다보았다. 정말 알 수 없는 것은 내 마음이다.

면접 소식에 아싸! 하다가도 거리가 멀다고 마음이 싹 돌아서고, 산에 갔다가 햇빛이 너무 좋다고 도로 내려와 버리고, 갑자기 계획에 없던 양평에 와서 동생이랑 잘 먹지도 않는 부침개를 부쳐 먹고. 갑자기 급한 볼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자리를 뜨고.

‘가만있어 봐라, 뭐가 고민 이래? 지금 기분 좋으먼 됐지?’

나는 옆자리에 놓아둔 냉이를 바라보았다.

‘집이나 밖이나 천지가 다 봄나물인디 이것들 캐다 팔아볼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뭐, 내가 돈으로 보면 돈이지 뭐.’

큭큭. 혼자 웃었다. 차 안에서 신이 났다.

‘내일부터 돈 캐러 가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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