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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May 28.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뭐를 알고 말을 하든지 103

뭐를 알고 말을 하든지          



강풍이 비를 몰고 산 밑까지 쳐들어왔다. 친구하고 마천동 한의원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취소했다. 방구석에서 이불을 둘러쓰고 앉아 있었다. 풀치도 조용하다. 하기야 바람이 풀치 안다리를 걸어버릴 것이 뻔하다.

정오가 되자 비는 그쳤지만, 큰바람이 앞산을 거세게 흔들고 있다. 사방에서 산불이 났다. 나무들이 부러졌다. 지붕 천막이 날아갈 것 같다. 우당탕탕 정체 모를 것들이 땅 위를 구르는 소리, 바람이 휘익 마당을 긁고 가는 소리, 맞은편 공터에 매달아 놓은 ‘산불 조심’ ‘이곳에 아파트가 웬 말이냐’ 플래카드 펄럭이는 소리가 뒤엉켜 귀속을 파고들었다. 어젯밤 분리수거를 내놓은 게 궁금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마당으로 나갔다.    

  

텃밭 가운데 막사를 덮어 놓은 플라스틱 귀퉁이가 떨어져 마당에서 저공으로 날아다녔다. 풀치가 마시다 버리고 간 플라스틱 소주병도 뱅글뱅글 돌아다녔다.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신문지와 스티로폼은 공중으로 날아다녔다. 그 와중에 쓰레기 버리는 날도 아닌데 누군가 집 입구에 몰래 쓰레기를 버렸다. 십중팔구 k인데 물증이 없다. 여우처럼 들키지도 않고 잘도 버린다. 날 잡아서 전봇대에 매달려있는 ccTV를 돌려봐야겠다고 다짐만 수백 번 했다. 빈 박카스 병과 생수 빈 병이 연자방아를 지나 큰길로 날아갔다. 그것들을 잡아다 신문지 위에 올려놓고 돌로 눌러 진정시켰다.

“거기다 쓰레기 버리면 안 되는데.”

생길 씨 생뚱맞은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그가 수돗가에 서서 남 말하듯 구시렁거렸다. 본인은 그냥 하는 말이었지만 내 눈에는 깐죽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오늘 재활용 버리는 날이라 내놨어요.”

“거기다 버리면 남들도 다 버리는데.”

성길씨 저 말에 나는 뚜껑이 열렸다.

“아 진짜 왜 그래요?”

“그래도 쓰레기를 거기다 버리면.”

‘진짜, 오늘 쓰레기 같은 날이네!’

나는 표정 없이 말하는 성길씨 얼굴이 더 이해가 안 되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던 플라스틱 컵을 버려도 못 본척했던 성길씨였다. 그런 그가 새삼스럽게 저런 말을 하니. 남들 듣기 싫은 소리는 내가 다하는데. 그는 오늘부터 나를 기점으로 집 앞 쓰레기 버린 사람 색출이라도 하겠다는 건지.

“목요일이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이라 어젯밤에 내놓았다니까요.”

짜증 섞인 말이 나도 모르게 목구멍에서 기어 올라왔다.

‘풀치가 조용하니까 이제 니가, 돌아가면서 사람 열받게 허네!’

열받아 문을 꽝 닫고 들어와 버렸다.  

    

처음에 내가 이사 왔을 때, 동네 사람들이 쓰레기를 성길씨 집 입구에 죄다 버렸었다. 날마다 쓰레기로 가득 쌓여 정말 보기 싫었다. 자기 집 놔두고 남의 집 앞에 양심을 갖다 버리는 사람들의 심보를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성길씨 집이 허술하고 사람이 착해 보이니까 그러는 것 같았다. 동네 이웃들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나는 하남시청에 전화했다. 쓰레기 버리는 날은 수요일, 재활용 버리는 날은 목요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집 입구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해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하루는 뒷집 아줌마가 쓰레기를 버리다 나한테 딱 걸렸다. 아줌마는 ‘어디서 이상하게 생긴 게 나타나 지랄이야’하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다 뒤돌아갔다. 그래도 조금은 눈치가 보였는지 며칠 조용했다.

같은 집에 산다고 나까지 대충 보는 것 같아 나는 더 약이 올랐다. 이런 사소한 일로 이웃끼리 전쟁을 할 수도 없고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했다.

    

‘몰래 쓰레기를 버리면서 자신의 양심을 낮추지 마세요.’     

도저히 말로는 시정이 되지 않아 나는 송파에 살 때 잘 가던 알파문방구에서 에이포 용지에 코팅해 왔다. 나는 지지대를 세워 공고문을 매달았다. 전에 성길씨가 사용했던 것 같은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내 키 반만 한 공고판이 성길씨 집 옆구리에 널브러져 있었다. 성길씨에게 그것도 세우라고 했다. 성길씨는 머뭇거렸다. “계속 이러고 살 거예요? 이게 내 집 이이예요? 아저씨 집을 깨끗이 허겠다는디” 내 성질에 못 이겨 뭉그적거리다가 얼른 갖다 세웠다.

공고판을 세우고 나서 “집 앞에 쓰레기 버리는 사람은 CCTV로 찾아내 벌금을 물리겠다” 내가 말을 하고 다녔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공고판은 며칠 지나 슬며시 제자리에 가서 자빠져있었다. 성길씨에게 “공고판 왜 치웠어요?”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끌고 나와 세우려 했더니 오히려 말렸다. 이해가 안 됐다.                

어쨌든 내가 나서서 지금은 주민들이 쓰레기도 버리는 것도 조심하는 척하고, 집 주변도 깨끗해졌는데 성길 씨가 나한테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새삼스럽게 저러니 섭섭하고 부아가 치밀었다.  

   

글을 맺기 전 한마디 하겠다. 이웃들도 그렇다. 다 좋다 치자. 쓰레기 버린 거 미안해서라도 성길씨에게 달달한 커피 한 잔이라도  갖다 주면 어때! 나는 주민들이 성길씨에게 물 한잔 건넌 거 본 적 없고. 노모 모시고 사는 성길씨에게 음식 나눠주는 것 본 적 없다.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려면 요일이라도 지키든지. 이웃들은 성길씨 집을 얕보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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