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때문에 놀림받는 점심이가, 집에서 점심을 먹자고 전화가 왔다. 옷을 대충 주워 입고 나갔다. 집에서 오금동까지 차를 세 번 갈아탔다. 걷기 좋게 바람이 불었다. 버스에서 내려 싸묵싸묵 걸었다. 식탁에 반찬이 반듯하게 차려져 있다.
“내가 좋아하는 시금치도 있네.”
나는 시금치를 제일 먼저 집었다. 갈치 속 젓갈을 젓가락으로 찍어 든 점심이가 활짝 핀 얼굴로 말했다.
“언니, 나 딸한테 소족 선물 받았어.”
“소뼈?”
“응, 언니도 내가 끓여서 줄게. 이제 몸 챙겨야 해.”
“소뼈로!”
요즈음 나는 염소 고기를 먹을 때면 염소 눈이 똘망똘망 아른거리고, 소고기를 굽다가도 풀을 뜯고 있는 소 눈이 말똥말똥 떠오른다.
며칠 전 티브이에서 아직도 소가 쟁기질을 하며 농사짓는 시골을 보여주었다. 구전으로 전해오는 노동요를 배경음악으로 깔았다.
나는 노랫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오직 소가 쟁기를 끌기 위해 온 힘을 쏟는 것만 눈에 들어왔다. 입에서 하얀 거품이 흘러내리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모습이 곧 죽을 것 같았다.
TV에서 소 주인이 말했다. “3개월 뒤면 새끼를 낳아요”나는 채널을 돌려버리려다 참았다. 소가 갈아엎은 붉은 황토가 화면에 나왔다. 정말 아름다웠다. 저 밭에 고추, 콩, 옥수수, 깨, 무, 배추, 가지가지 심어 올해도 도시에 사는 자식들에게 보낼 것이다. 지금이야 트랙터가 다 갈아엎지만. 옛날에는 소가 다 뒤집었다.
나는 온갖 생각을 하면서 순두부를 입안에 넣다가 바짓단에 국물을 떨어뜨렸다. 고개를 숙여 내 발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언니 뭐 해?”
“임신한 소에게 내 발목을 고아 멕이먼 어떨까!”
“언니 징그럽게 뭔 소리여!”
“개 풀 뜯어 잡수는 소리 한 번 해봤다.”
어렸을 때 이모네 야외 화장실은 창고만큼 컸다. 화장실은 출입문도 없고 칸막이도 없었다. 화장실 한쪽에 깔아놓은 지푸라기 위에서 소가 살고 있었다. 소는 새벽부터 해가 저물도록 빡 세게 일하고 와서 구석에 누웠다.
나는 화장실 들어설 때 소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엉덩이 까는 일이 부끄러웠다. 그러면 이러지도 저리지 못하고 있었다. 참다 참다가 배속에 그것이 대장 끝까지 내려와 항문이 열릴 때 옷을 내리고 앉아 일을 봤다. 만약에 소가 발을 뻗다가 나를 밀어버리면 영락없이 똥통에 주저앉을 수도 있었다.
나는 후다닥 일을 보고 나왔지만, 소는 그 역겨운 냄새를 다 맡으며 구석에서 먹고 자고 했다. 사람들이 한밤중에도 화장실을 드나드는 통에 뜬 눈으로 날을 새다가 새벽에 일어나 터벅터벅 밭을 갈러 갔다.
‘그래, 차라리 밭에서 쟁기질하는 게 더 낫겄다’
나는 소가 불쌍했지만 내가 소가 아니라는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게으른 내가 다음 생에 소로 태어나면 어쩌지 걱정됐다.
그런 생각이 들면 이모네 집에 갔다 오는 날 빗자루 잡고 마당 쓸고 방도 닦았다. 며칠 지나면 까만 소눈의 약발이 떨어졌다. 그러면 빗자루를 구석에 휙 던져버렸다. 한편으로 돼지는 일을 안 해도 잔밥을 준다. 돼지랑 소랑 비교를 해봤다. 불공평했다.
생각해 보니 빗자루 내 던질 때부터 나를 알아봤어야 했다. '인생은 잘 놀다가는 것' 장자의 실천을 나는 너무 잘했다. ‘일은 잠깐, 휴식은 매일’ 띵가띵가 하다가 멀리까지 와버렸다.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고 할까.
그래도 지금껏 소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것에 변함없듯, 사회 밑바닥에서 소처럼 일하는 사람이 멸시받는 것도 여전히 만연하고 있다.
‘누구는 소처럼 일해’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비아냥거리듯 들렸다. 가만 보면 꼭 요령 핀 사람들이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들을 천치 취급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럼 누가 소를 대신할 것이여!
우리는 소처럼 코뚜레를 뚫지 않았어도 보이지 않은 코뚜레를 매고 살아간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법, 전통, 조직, 의무, 의리, 예의, 배려로 엮여 살아간다. 그런데 누군가 그 끈을 자르면 우리는 도미노처럼 무너져버린다. 안갯속 같은 지금 우리는 누군가가 고삐를 잡고 흔드는 대로 가고 있다.
그래도 자갈밭을 갈아 옥토를 만드는 ‘위대한 소’들이 사회 곳곳에서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바닥이 튼튼해야 넘어지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이 없어 조선소 문을 닫을 판이라니. 현장에서 책무를 다하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사회가 하루빨리 정착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