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브러져 있는 막대기도 땀이 날 만큼 푹푹 찐다. 가만히 집에서 있다 보니 지난겨울이 생각났다.
눈이 쌓인 늦은 밤, 방 안에서 뒤집어진 거북이가 엎드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죽었나? 너무 조용해서.”
“내가 겨울만 되면 계절 정서 장애가 좀 있단께.”
“그게 뭔 말이고?” “그런 거 있어. 그래도 용팔이가 나오라 하면 나가 줄란께.”
오랜만에 용팔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년 12월부터 올 2월 초까지 일 외에는 시내에 나간 적이 거의 없었다. 송년회고 뭐고 일절 땡 쳤다.
추위를 타는 나는 겨울이 되면 외출을 두려워한다. 그것도 그거지만 작년 가을에 수백 명 전화번호가 다 날아갔다. 이참에 인간관계를 정리하기로 했다.
20년 지기 용팔이(본명 아님, 본인이 용팔이라고 함)와는 밤늦게도 통화가 가능하다. 각자 집에 눈치 볼 사람이 없다.
그는 여자들이 모여있으면 쑥스러워한다. 젊은 사람 못지않게 복근에 왕자가 새겨져 있다. 그가 배를 살짝 들고 보여줘서 보았다. 팔뚝에 문신이 있다. 머리는 동자승과 같이 자르고 다닌다. 누가 봐도 깍두기다. 하지만 절대 깍두기 아니다.
용팔이는 내가 우울증이라도 걸렸나 싶어 양평에 있는 온천관광호텔을 예약했다고 했다.
“가서 온천하고 푹 쉬거라.”
“요새 누가 온천을 해.”
그는 돈 쓰고 구박받았다. 용팔이는 억울한 듯이 말했다.
“양평 호텔들을 다 뒤졌다 아이가” 양평 근처 호텔 전부가 방 하나에 침대 하나인데 이곳만 침대가 두 개라고 했다. 여기는 단체도 가능하다고 해서 예약을 했다고 한다. “니 혼자 올 것 아니잖아” 나는 좋은 곳에 가면 혼자 가는 것이 아까워 떼로 가야 한다.
다른 호텔은 두 명 이상 오면 이불을 알아서 가져오라고 했다고. 혼자 애쓴 거 생각하니 용팔이한테 미안했다.
구정이 가까워 다들 바쁘다고 해 써니 동생과 대전 동생이 가기로 했다. 나는 멀리 떠나고 싶었는데 호텔하고 집이 가까워 좋았다. 이건 무슨 맘인지 모르겠다.
며칠 후 우리는 용팔이가 호텔 근처 예약해 놓은 식당서 만났다. 말이 서툰 베트남 아가씨가 서빙을 했다. 용팔이가 팁을 줬다. “멀리서 와서 고생이 많구만” 그가 한 말에 나는 호박죽을 뜨다가 멈췄다. 별생각 없이 밥을 먹었다는 게 뒤통수가 따끔했다.
나는 집 떠나온 이들을 보면 ‘그냥’ 짠하다. 살아오면서 나의 인간관계는 언제나 그놈의 그냥이 문제가 됐었다.
우리는 식사를 끝내고 보슬비에 녹고 있는 눈을 밟으면서 걸었다. 우리가 묵을 호텔 앞에 상수원 보호구역이라고 써진 천에 물안개가 자욱했다.
날이 어둑해졌다. 용팔이는 호텔 문 앞에 서서 “가서들 씻고 쉬거라 마” 이 말을 투척하고 차 시동을 걸었다. “용팔아, 아무도 너 찝적거리지 않을 텐 게 방은 보고 가라” “내가 있으면 서로 불편하지. 내일 아침에 보자 마” 말을 남기고 경상도 사내는 멋지게 토꼈다.
동생들은 침대에 날아가 누웠다. 나는 욕조에 물을 받아 반신욕을 하였다. 혼자 등을 자주 밀다 보니까 손이 늘어나 등 구석구석이 닿는다. 나만의 기술이다.
맥주 한 병을 셋이 나눠 마시고 채널을 돌리다 동생들은 잠이 들었다.
밤새 보슬비가 내렸다. 나는 정수리가 쑤셔 한밤중까지 잠들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커튼 한쪽을 살짝 젖혔다. 길가에 쌓인 눈이 거의 녹았다. 소리 없는 어둠이 층층이 쌓여갔다. 하지만 물 흘러가는 소리가 장마 때 폭포 소리처럼 들렸다.
물안개 싸인 개천 건너편 집들을 보면서 몇 년 전 미얀마 인레호수 가에서 보았던 집들이 떠올랐다. 인레호수 가에서 본 집들은 색이 바랜 운동화 같았지만 평화롭게 보였다. 그런데 개천 건너편 희미한 집들은 죄 없이 사과하고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아마 날씨와 기분 탓인 것 같았다.
아침이 오자 곧 사라질 같은 집들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셋은 천변 안갯속을 걸었다. 머리카락이 축축했다.
팔당대교 근처에서 용팔이와 합류했다.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먼 길 가는 자동차는 눈보다 비가 났다. 점심을 먹고 각자 제 갈 길을 가기로 했다. 나는 집에 가서 쉬고 싶기도 하고 빗속을 뚫고 집에 가기도 싫었다.
도로에는 빗자루로 쓸어모았던 새카만 눈의 흔적만 남아있다. 우리는 각자 을씨년스러운 빗속으로 사라졌다.
집으로 오는 길 자동차 유리창에 빗방울이 타고 흘러내린다. 와이퍼가 빗물을 닦아내고 있다.
2
운무로 덮인 남한산성 북문 꼭대기가 아슬하게 보였다. 비를 맞고 야옹이가 나에게로 뛰어왔다. 야옹이 사료를 주고 집으로 들어왔다. 공기가 써늘했다. 어제 나갈 때 졸졸 틀어놓은 주방 수돗물을 껐다. 야옹이가 턱을 손등에 올려놓았다. 밖에서 떨었나! 수염이 바늘처럼 굳었다. 수염을 비비다가 내 발을 내려다보았다.
손톱 깎기를 들고 신문지를 바닥에 깔았다.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에 힘을 줬다. 딱 소리와 함께 발톱이 신문지 밖으로 날아갔다. 발톱은 겨우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집 근처에서 뱅뱅 돌다 온 나와 같았다.
인간 몸에서 먹지 않아도 자라나는 것은 머리카락과 손톱과 발이다. 슬픔도 울지 않고 안으로 자란다.
손톱 발톱을 깔끔하게 잘라도 얹힌 것 같은 답답함은 그대로였다. 여태 수다를 떨고 깨끗이 씻고 왔는데도 말이다. 머리칼도 자를까 하다가 그만뒀다.
길지도 않은 발톱을 왜 자르고 싶었을까. 거울 속 겨울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밤비 속 새들도 발톱을 감추고 날아갔다.
발톱을 드러낸다는 말은 본색을 드러낸다고도 한다. 본색을 잘라냈는데도 답답함이 남아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는 즐거운 일은 남들에게 알리면서 거시기할 때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하고 나면 알약을 씹어먹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가슴 밑바닥에 검은 달을 품고 사는 것도 아닌데, 누가 나의 바닥을 아는 척하면 머리를 집어넣은 거북이가 된다. 밑바닥을 내색하면 자존심에 먹칠이라도 하는 줄 아는 내가 문제다. 오늘도 애꿎은 발톱만 잘랐다. 너무 바짝 파버렸나. 엄지 양쪽이 욱신거렸다.
생각해 보면 넘어져도 혼자 일어났지 누가 나를 일으켜 세워주지 않았다.
자판을 두드리고 연어 샐러드로 안주를 만들고 발톱을 자르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방에서 웅크리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혼자 있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