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량품들의 사계 Aug 10. 2024

불량품들의 사계

팽팽한 고무줄을 놓아버렸다 아팠다 126

팽팽한 고무줄을 놓아버렸아팠다



         

“언니 누룽지 갖다 줄 수 있요?”

석촌동에서 사는 신앙이 깊은 연주 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누룽지를 싣고 총알같이 석촌동으로 갔다.

“언니 교회 나가봐 초심자 기도는 다 들어줘요.”

“나도 요새 가끔 혼자 간다.”

해가 지자 둘이 질주하던 수다를 멈췄다. 연주는 저녁밥을 하러 갔다. 주부는 해가 지면 밥 하러 집으로 가는데, 딱히 갈 곳이 없는 나는 털레털레 산밑 집으로 왔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집이 젤 편허다.’

분명 나갈 때 창고 문을 닫고 갔는데 문이 열려있었다. 쌀 한 포대가 문 안에 단정하게 앉아있었다. 메모도 없었다. 연주 동생에게 전화했다.

“누가 쌀을 갖다 놨으면 말을 해줘야재. 벌써 하나님이 갖다 놨으까?”

“킥킥 기다려봐요. 연락 오겠지요.”     


아직 주인이 나타나지 않은 쌀은 창고 문 열 때마다 생각났다. 생각해 보니 언젠가 동사무소에서 혼자 사는 사람에게 쌀을 준 적이 있었다. ‘혹시 동사무소?’   

  

나는 오랜만에 창고청소를 했다. 쌀 포대가 출입구에서 걸리적거렸다. 쌀 포대를 들어 주방에 갖다 놓았다. 시간이 지나자 쌀 포대가 창고에 있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문정동 카페에서 시 쓰는 도반들과 만나고 있었다. 그때 성길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혹시 쌀 한 포대 있어요?”

나는 금방 알아들었다.

“ 예, 누구 거예요?”

“뒷방 할머니 거라네요”

“네, 저녁에 집에 가서 주께요.”

성길씨가 비밀번호를 알게 돼 비번을 바꾼 지 얼마 안 됐다. 쌀이 발이 달려 어디 가는 것도 아니라서, 비번을 가르쳐 주고 싶지 않았다.  

    

모임이 끝나고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오니 뻗어 버렸다. 나는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갑자기 문을 누가 세게 두들겼다.

“누구세요? 간 떨어지겄네!”

“나와 봐요.”

 뒷방 할머니 목소리였다. 문을 열고 안에서 내다봤다.

“아니 쌀을 받았으면 나한테 물어봐야지, 동사무소서는 보냈다고 하는데 왜 갖고 있으면서 말 안 했어?”

나에게 말할 틈도 없이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큰소리로 했다.

“가만히 듣자 하니 지금 제가 쌀을 가지려고 말을 안 했다는 거예요?”

“그럼 왜 말을 안 했냐고?”

“이 할머니가 나를 도둑 취급허네!”

“당장 쌀 내놓으라고.”

나는 화가 나 주방에서 쌀을 질질 끌고 와 문밖으로 내동댕이 쳐 버렸다.  

“나는 친구들이 가져온 쌀이 남아돌아 오히려 내가 남들 나눠 준다고요. 글고 남아있는 쌀도 날이 더워 벌레 생겨 가꼬 나방이 집안에 날아다니고 있는디. 사람을 뭐로 보고.”

“그래 안 먹은 줄은 알아.”

덕소 사는 써니가 작년 가을에 부모님이 직접 농사지은 쌀을 가져다준 게 아직 굴지 않고 있다. 친구들이 거의 매일 집에 오는 것을 뒷방 할머니도 봤다. 그래서 내가 쌀 걱정은 안 하고 사는 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할머니가 나에게 험악한 말을 계속했다. 나는 더는 말을 듣기 힘들어 쌀을 발로 차버렸다.

“왜 쌀을 차고 그래?”

“내가 지금 안 차게 생겼쑈?”

나는 열이 받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작년 뜯지 않은 쌀을 주방에서 씩씩거리면서 끌고 나오는 사이 할머니가 쌀 포대를 들고 뒷방으로 가버렸다.     

‘누굴 삐비 껍딱으로 아나.’

나는 분해서 쌀을 질질 끌고 뒷방 할머니에게 갔다.

“작년에 준 쌀 뜯지도 않고 있고. 글고 쌀을 찾는 사람이 없어 나도 궁금했었다고요.”

“그래도 말을 안 했잖아.”

“이 할머니가 사람 미치게 허네! (할머니는 나이가 70대 중반이다) 앞으로 서로 모른 척 헙시다.”

이때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등장했다. 바람 잘 날 없는 마당에서 큰 소리가 들리자 성길씨가 나왔다. 성길씨는 우리를 한방에 정리했다.

“아줌마가 잘못했네.”

“내가 뭘 잘못했어? 내 쌀 갖고 내 맘대로 못 해?”

성길씨 말에 의하면 예전에 할머니가 월세를 내지 않아 나가라고 했었다. 그 시절 아줌마는 죽어도 못 나가겠다고 해, 경찰을 불러도 꿈쩍하지 않았다. 성길씨는 포기하고 여태 같이 살게 됐다고 나에게 말했었다.

나는 더 있으면 할머니에게 심한 말을 할 것 같아 집으로 들어왔다. 성길씨가 할매가 잘못했다고 싹 정리했는데 거기서 더 말하면 내가 구질구질 해 보일 것 같았다.

방에 들어와서 열을 삼키지 못하고 방바닥을 서성거리다 성길씨에게 전화했다.

“아저씨! 분명히 저 할매 돌아다니면서 자기 쌀을 내가 발로 찼다고 동네방네 이야기하고 다닐 거 같은께, 지금 있었던 일 아저씨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해요.”

“잊어버려요. 나하고도 전기세 때문에 자주 싸워요. 나도 싸우기 싫어 어지간하면 하남 시내에 사는 여동생이 와서 전기세를 계산해 주고 가겠어요.”

“그래도 그렇지 나를 도둑 취급 허잖아요? 그리고 얼마 전 아저씨 여동생 왔을 때 내가 창고에 있는 쌀 가져가라 했어요. 여동생이 집에 쌀 많다고 안 가져갔어요.”     

나는 분한 기분을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까. 어쩌다 이런 일까지 당하게 되었는지 내가 쪼다 부실이 같았다. 당장 보따리를 싸야겠다는 마음이었지만 갈 곳이 없었다. 있는 집도 날려 먹었다. 그 어떤 집들도 지금 나에게는 화중지병이다. ‘너는 경제관념도 없이 어리버리 살다 여기까지 들어와서 이 짓을 당하고 있냐. 에라, 이 부실아’ 나의 자책은 검정 고무줄 늘어나듯 마구 늘어났다.

지인들과 밥 먹으면 카운터에 날아가 밀치고 제치면서 먼저 계산하고, 옆 사람 표시 안 나게 돈 쓰고, 강아지 때문에 밥 먹듯 했던 이사비용만 아꼈어도, 오늘 같은 황당한 일은 안 당했겠지. 마술사 손에 카드가 줄줄이 달려 나오듯 떠오르는 후회의 고무줄을 놔버렸다. 아팠다. 머리가 띵했다.

그렇지만, 초저녁별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네요, 눈 뜨면 사방이 산이요 밭이지요, 마당에 호두나무, 감나무, 발톱 달린 나비들까지 나랑 놀아주지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있는 이런 좋은 데가 어디 있어요? 하면서 나 스스로 다독여도 옆구리 터진 김밥 같았다.

교회 다니면 좋은 일 생긴다고 했던 연주 동생 말이 생각났다. 벌써 쌀 포대를 하느님이 갖다 주고 갔나!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웃기기만 했다.

처음 이사 왔을 무렵, 뒷방 할머니와 나는 마당에서 마주쳐도 서로 멀뚱멀뚱 쳐다 만 볼 뿐이었다.

그렇게 무심히 지내고 있었는데 진달래꽃이 만발한 어느 봄날이었다. 성길 씨가 평상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면서 나에게 말했다. 할매가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시집간 간호사 딸도 갑자기 세상을 떴고, 남편도 병으로 보내고 혼자됐다고 했다. 나는 그날부터 나는 음식도 갖다 드리고 말도 붙여 가며 당신께 한다고 했는데 그만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슬플 때는 술 푸자. 나는 평상에서 소주를 마셨다. 달을 향해 죽도를 휘둘렀다. 열이 가라앉자 조금 차분해졌다. 달빛에 비친 노란 달맞이꽃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하물며 마당에 서 있는 나무만 베어내도 가슴이 먹먹한데, 자식 잃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뒷방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밤하늘 머리 위에서 깜박거리는 별들이 애처로워 보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