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량품들의 사계 Aug 08. 2024

불량품들의 사계

까불이는 보름달 뒤꿈치가 부르트도록 놀았다 125

까불이는 보름달 뒤꿈치부르트도록 놀았다



                

까불이 새끼들은 땅바닥에 개미가 지나가도 까르르 웃는다. 새끼들은 흥을 주체할 수 없어 호두나무를 발톱으로 찍으면서 올라간다. 나무에서 내려올 때 무서워서 머뭇거리다가도 어미가 소리를 내자 펄쩍 뛰어내린다.

어느새 새끼들은 다래나무를 타고 막사 위로 올라간다. 다래 이파리 그늘에서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 세상을 구경하고 있다.

아빠 까불이는 새끼들을 지긋이 지켜보다가 연자방아로 뛰어간다. 새끼들도 뒤따라간다. 까불이는 새끼들과 놀다 지치면 연탄창고로 들어간다. 까불이는 연탄 꼭대기로 올라가 명상을 하다 하품을 한다. 어미인 도도는 까불이 그런 모습에 ‘아이고 철없는 양반’ 하면서도 즐거워한다.


까불이는 비가 오는 날이면 연탄이 묻은 채로 내 집 소파에 올라와 잠을 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천진하고 귀여운지 “연탄 푸다 왔냐? 얼른 나가야!” 하면서도 내버려 둔다.

요즈음은 새끼들도 아빠를 따라 대놓고 한 번씩 들어와 소파를 더럽힌다. 그런 새끼들을 보고 나무 그늘에 앉아있던 어미는 ‘얘들아, 남의 집에는 발 닦고 가야지’ 하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뜬다. 그런 도도와 나도 눈이 마주치면 ‘괜찮어’ 눈을 감았다 뜬다. 새끼들은 만지려 하면 삼십육계다.


길고양이였던 어미 도도는 나에게 허락하는 거리가 생겼다. 하지만 고작 2m다. 아직도 먹을 것을 던져줘야 먹는다. 고양이들은 갈치를 굽는 냄새를 맡고 평상에 앉아 주방을 쳐다보고 있다. 나는 맥주 안주로 꼬불쳐놓은 황태를 뜯어 창문 밖으로 던져주었다.

던져준 황태를 새끼들이 먹고 난 후 어미가 먹는 동안 까불이는 지켜보고 있다.

까불이는 새끼를 낳은 뒤로 의젓해졌다. ‘짜식 멋져부러.’     

기분이 좋은 새끼들이 밭에 앉아있는 참새를 꼬나보고 있다. 까불이도 어렸을 때 사료를 먹고 나면 새들을 쫓아다녔다. 새끼들은 까불이 어렸을 때 하던 짓을 똑같이 하고 있다. 그래 그렇게 맘껏 뛰어라. 나무 타고, 땅에서 뒹굴고, 멍을 때리면서 타고난 소질을 계발하여 개성 있는 고양이로 자라다오.

도시 불빛에 쫓겨 자동차 밑이나 창고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길 고양들을 생각하면 성길씨 고양이들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강아지 산책을 일삼아 시킨다. 가족끼리 서로 산책하러 가라고 다가 칼을 휘둘러 사람이 죽었다는 외국기사를 본 적 있다. 내 친구도 산책 문제로 부부싸움을 자주 한다.  


내가 밥 먹듯 올라가는 남한산성 북문에서 내려다보면 우리 집도 보이고 하남시도 보인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거대하게 솟구친 아파트 숲뿐이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면 공항에서부터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아파트를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디자인이 비슷한 옷을 입고 거의 흡사하게 성형한 여자들이 가득 한 거리 외국인들은 한국인의 성형문화와 패션에 한 번 더 놀란다고 한다.      


유년시절을 떠올려 본다. 장난감이 없고 노는 장소가 마땅찮아도 아이들은 부엌으로, 마당으로, 대청으로, 토방으로, 장롱 속으로 오르락거리며 놀았다. 집 밖을 나서면 갯벌에서 조개, 맛, 꼬막을 캐고, 산딸기를 따 먹고, 방아깨비 다리를 모아 방아를 찧게 하고, 묏등에서 놀다가 어른들한테 혼나고, 술래잡기 놀이를 하였다. 이렇게 놀다 보면 해가 금방 떨어졌다. 그렇게 놀고도 헤어지기 아쉬워 친구네 집에 가서 자고 오기도 했다. 지금은 어림없는 소리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뭐든지 부족했던 그 시절이 오히려 허전하지 않았다.

박스 위에 박스, 박스 옆에 박스가 쌓이고 쌓인 납골당 같은 아파트, 눈만 뜨면 태어나는 사람 수보다 아파트가 더 많이 생겨나는 것만 같은 이 도시. 아파트에 살다 보면 벽 하나로 집을 갈라놓았는데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옆방이나 다름없다. 개미지옥의 실체다   


해가 넘어가자 까불이가 각시도도랑 지붕 위에서 뛰어내린다. 까불이는 나를 보고 배를 드러내놓는다. 까불이 부인은 저만치 앉아있다. 새끼들은 마당에서 뒹굴고 있다.

나는 평상에서 앉아있다가 고양이들을 불렀다.

“까불이, 도도, 순둥이, 점박이 집합! 이모 말 잘 들어봐. 마당 한 바쿠 돌고 연자방아 돌고 발톱으로 나무 찍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거야, 알았지? 고고 출발!”

나는 보름달이 뜰 때까지 까불이 가족 발뒤꿈치를 따라다녔다.       

까불이는 나를 마구 뺑뺑이 돌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