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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Aug 21. 2024

불량품들의 사계

자전거 바람도 바람은 바람이지 129

자전거 바람도 바람은 바람이지




나는 마당에 서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산 뒤로 해가 떨어졌다. 발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풀치가 나에게 살구 한 팩을 내밀었다.  

“돈 주고 산 거여?”

“응.”

“그럼 됐어야.”

“원 플러스 원이라 샀어요.”

“그냥 받을 수는 없지. 쪼금만 기다려.”

나는 두유를 갖다 줬다.

“술 참고 잘 지내먼 내가 막걸리 사 줄 텐께. 만약에 술 마시고 행패 부리먼 콧물도 없어.”

“알았어요.”

전기가 끊긴 풀치가 사는 컨테이너는 창문이 없다. 그야말로 칠흑일 것이다. 술 마시고 자다가는 통닭구이가 될 수 있다.

‘어쩌까, 그러고 본께 풀치한테 너무 심하게 말을 까고 있네.’

나는 풀치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풀치는 캄캄한 집을 들랑거리기 위해 돈을 주고 산 손전등을 보여줬다. 풀치는 나중에 발전기를 사서 돌리겠다고 결연한 눈빛을 내비쳤다.

“제2의 테슬라 나오는 것 아니여. 그래 방법은 다 있어야, 일단 일을 해야 하지 않겄어?”

“그래야지요. 그래서 누님 맛있는 것도 사 주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총각을 위해서, 일을 하먼 술을 안 마실 거 아니여. 그럼 마을 사람들도 총각을 사람대접해 줄 거고.”

늙은 총각도 총각은 총각이다.

총각은 푹 꺼진 눈에 힘을 주며 하트를 발사했다. “됐어야!” 나는 두 손으로 하트를 막았다. 술 안 마시고 일하겠다는 말을 정말 믿고 싶었다.     

이가 없는 총각은 입을 가리고 웃다가 밭 가운데 막사를 바라보았다. 바람 빠진 내 자전거가 막사에 비스듬히 서 있었다. 풀치는 달빛을 받으며 골목으로 사라졌다.

     

풀치는 다음 날 아침 자전거 앞에서 나를 불렀다.

“누님 자전거 바람 넣어야 할 거 같은데.”

“바람 넣어 줄라고?”

풀치는 자전거를 마당으로 들고 나왔다.

“집에 바람 넣은 펌프 있어야. 내가 할 줄 몰러서 그러지.”

친구 찬희가 이사 오던 해 인터넷으로 사 준 것이다.    

 

어느 날 성길씨에게 바람 좀 넣어주라고 했었다. "내가 왜요?" 바람을 넣어주면서도 귀찮아했다. 내가 부탁할 때면 뭐든지 흔쾌히 해준 적이 없다. ‘그래, 있는 바람도 빠지겄다’ 바람이 들어가야 장가를 가든지 말든지 할 텐데, 그 뒤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나는 창고에서 공기 주입기를 가져왔다. 자전거가 넘어가지 않게 안장을 잡았다. 풀치는 공기 주입기 펌프질을 열심히 했다.

‘저것들 뭐 하는 짓이여’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 눈치가 보였다. 주민들 눈치 안 보기로 해 놓고 나는 또 눈치를 보고 있다. 우리 둘이 이러고 있는 것을 성길씨는 또 가만히 있겠는가 ‘지랄하고 있네’ 마당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바람 좀  빨리 집어 너야" 풀치에게 재촉했다.

“누님 순서가 있지. 바람을 집어넣는다고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지요.”  

남의 속도 모르고 풀치는 농담을 하면서 천천히 손을 놀렸다.

바람 좋고 분위기 좋고 파란 하늘을 가로질러 나는 대포항으로 떠나고 싶었다. 아마 총각도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페달을 씽씽 밟고 어디든지 달리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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