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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Sep 09.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내가 죽었다고? 133

내가 죽었다고?    



                 

‘아무리 장마라지만 징허다 징해’ 나는 비 온 날을 세다가 잊어버렸다.

차 소리가 나면 배를 까고 뒹구는 까불이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내가 오고 난 후 사라져 버린 고양이들이 몇 마리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주인집 고양이들도 길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탄창고나 지붕 아니면 보일러실에서 자고 나가는 고양이들에게 나는 그저 밥만 주는 정도다. 그래서 까불이도 혹시 하고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내 새끼는 아니지만 걱정되었다. 원래 가족 중 누구라도 돌아올 시간에 안 들어오면 처음엔 열받는다. 새벽까지 들어오지 않으면 잠 한숨 못 자고 문 앞에서 서성거린다. 전화했는데 안 받든가 꺼져 있으면 환장을 한다. 이쯤 되면 피를 말린다. 그러다가 집에 들어오면 반가움도 잠시, 그 뻔뻔한 등짝을 향해 손바닥이 날아간다.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엄마랑 인천서 살 때다. 일없이 잠깐 백수로 싸돌아다니던 삼십 대 중반 때다. 서울 놀러 와서 미선(내가 서울에 정착하게 해 준 동생)이랑 노래방에서 띵가띵가 놀다가 인천에 내려갈 전철을 놓쳐 버렸다. 사실은 막차 시간을 알고 있었다. 더운 줄도 모르고 노래방의 펄펄 끓는 열기와 맥주에 취해 그냥 귀가를 제쳐버렸다. 나는 그렇게 노래를 좋아하면서 가수는 못됐는지 모르겠다.


나는 어디를 쳐다봐도 출구가 없던 젊은 광기의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한참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은 술을 좋아했다. 당시에 나는 핸드폰도 없는 석기시대였다. 매일 어울리던 내가 연락이 안 되자 인천에 사는 친구가 술에 취해 새벽에 집에 전화했다.

친구- “여보세요.”

엄마- “너냐?”

친구- “친구 좀 바꿔주세요!”

엄마- “누구요?”

친구- “셋째요.”

엄마- “집에 없소.”

친구- “죽어버렸어요.”

엄마- “이게 뭔 소리단가.”    

 엄마는 수화기를 내 동이치고 맨발로 달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구 층 벨을 눌렀다. 막내 여동생이 놀라 뛰쳐나왔다.

엄마- “셋째가 죽었다고 안 허냐!”

막내- “자다가 뭔 봉창 두드리는 소리여! 엄마!”

막내는 둘째 언니와 큰 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전화통이 불이 났다. 소방차가 와도 불을 끌 수가 없었다.

같은 아파트 3층에 둘째 언니가 살고 구 층에는 막내가 살았다. 나는 일 층에는 살았다. 맞은편 아파트에는 큰언니가 살았다. 식구들은 막내 집에 모여 야단법석을 떨었다. 놀란 가족들은 서울에 사는 친구들 연락처를 찾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자 식구들이 차분해지면서 냉정 해져갔다. 둘째 언니가 말했다.

“만약에 진짜 죽었으면 지갑이 있은께 주민등록증 주소로 진즉 연락이 왔을 거여.”

형부가 경찰인 둘째 언니가 나름의 추측을 펼쳐놓았지만, 엄마는 울지도 떨지도 않았다고 했다. 식구들은 기억과 연을 총동원하여 어찌어찌 미선이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나는 술을 많이 마셔 깨면 새벽에 집에 가려고 미선이네 방에서 자고 있었다.

내 목소리를 확인한 둘째 언니가 엄마를 바꿔줬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대성통곡을 했다. 한 번도 나에게 욕을 한 적이 없던 엄마는 그날 처음으로 나에게 욕을 했다. 앞뒤 사정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엄마의 잔뜩 화가 난 욕설에 술이 완전히 깼다. 상황은 종료됐다.  

   

그날 밤 친구는 내가 죽었다고 말한 게 아니었다. 며칠째 내가 안 나타나니까 술에 취한 친구는 ‘죽어부렀는 갑소.’했다고 했다

엄마가 나를 기다리다 깜박 잠이 들었었다. 엄마는 비몽사몽일 때 전화를 받아 죽었다고 잘못 알아들은 것이었다. 친구는 우리 식구들과 자주 만날 수밖에 없었다. 지방에 산 동생이 그 전화를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죄 없는 그 동생은 엄마 수명 단축 한 죄로 식구들 앞에 그림자도 얼씬 못하고 있다.    

  

얼마 전 비 오는 날 까불이가 집에 왔었다.

“야! 인마. 오늘 자고 갈 거여?”

나는 까불이 두 발을 잡아당겼다. 왼쪽 옆구리 털이 빠지고 움푹 파였다. 딱지가 잡혀 주방 불을 켜고 들여다보았다. 상처가 생긴 지 꽤 지난 것 같았다. 말라비틀어진 마데카솔을 찾아 발라줬다. 하얀 다리는 연탄창고에서 비벼 검은 장화를 신은 것 같다.

“너 연탄 날랐냐? 에이 더러운 놈! 오늘은 여기서 못 자겄다.”

자기 새끼들 지키려다 다쳤나. 제 여자인 도도를 지키려다 다른 길고양이와 싸웠나. 지나가는 깡패 노랭이한테 얻어터졌나, 별생각이 다 들었다. 고양이 말을 배워야 하나. 말이 통해야 물어볼 것인데.

‘까불이, 니가 한글을 배워 새끼들에게 가르쳐 줘라. 나보다 그게 더 빠르겄다. 세상이 험할수록 아빠는 용감해야 쓰는 것이여.’

그거는 그거고 나는 까불이를 보듬어 내보냈다. 까불이는 엉덩이를 뒤로 빼며 버텼다. 안쓰러웠지만, 이불빨래는 나에게도 큰일이다. 그날 이후 며칠째 까불이가 보이지 않은 것이다.  

   

오늘은 비도 오고 까불이를 찾아 나섰다. 새끼들만 연탄보일러실에서 나를 보면 멈칫거렸다. 그때 까불이가 성길씨 지붕 위 변압기에 앉아 울었다.

“나비 위험하게 거기 왜 앉아있냐? 얼릉 내려와야!”

“야옹야옹.”

“각시한테 또 쫓겨났어?”

까불이는 서럽게 울었다.

“까불이! 앞으로 어디 갈꺼먼 말을 하고 가거라 지발.”

 아무래도 내가 동물과 통화를 할 수 있는 스마트 폰을 개발하든지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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