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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Sep 07. 2024

불량품들의 사계

까불이가 맺어준 인연 132

까불이가 맺어준 인연   



            

텃밭에 심은 옥수수에 수염이 났다.

“얘들아, 밥 먹자.” 점박이와 순둥이가 지붕 위 호두나무 그늘에서 자다 뛰어내렸다.

밭 가에 서 있던 성길 씨가 손끝으로 담배를 눌러 끈다. 꽁초를 밭고랑에 휘익 버리고 마당 쪽으로 걸어온다.

“나비들 천천히 먹거라. 이모가 또 줄텐께.”

집으로 들어가던 성길씨가 이 모습을 보고 나에게 말을 했다.

“엄마라고 하지 왜 이모라고 해요?”

“내가 엄마인 적이 없어서요. 내 강아지들도 이모라고 부르게 했었어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꺄우뚱했다. 그리고 한마디 더 붙였다.

“깨끗이 씻어 방에서 키우세요.”     

성길씨가 나에게 저 말을 하는 것은 내가 고양이들을 이뻐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자기 식구들을 챙긴다는 생각에 나랑 연대감이 생겨서이다. 또 하나는 성길씨가 이 집에서 쫓겨 갈 때 고양이들을 두고 가야만 한다. 그러면 자기 목 안에 가시처럼 걸릴 같아 내가 데려갔으면 바라는 말이다. 곧이어 성길 씨는 나비들에 관해 고민하던 것을 말했다.

“나비들 밥 하루에 한 끼만 주세요.”

“어쩌서요?”

“자생능력을 만들어 줘야 해요. 우리가 없더라도 자기들끼리 먹을 것을 구해야 하니까요.”

실은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사 왔던 봄, 나는 새들 모이를 밭과 너럭바위와 마당에 뿌렸었다. 새들이 나뭇가지에서 모이를 쪼아 먹으려 내려왔다.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너럭바위와 평상 위에 새똥이 장난이 아니었다. 새똥이 평상에 떨어져 물청소해도 기분이 좋았다. 참새, 물까치, 까마귀들과 온갖 잡새들이 마당으로 내려왔다. 새들이 내 손바닥과 머리, 어깨와 입술로 날아와 모이를 물고 날아가는 것을 상상했었다.

나는 불지 못하는 휘파람을 불어 보았다.

 “시시시 시시싯.”

아무리 닭똥구멍같이 입을 모아도 김 빠진 쇳소리만 났다.

그래도 참새들은 알아듣고 떼를 지어 몰려왔다. 내 목소리를 기억했다. 누가 새대가리라고 했던가.

“얘들아! 오늘은 쌀과 땅콩이다.”

“찍찍 짹짹 탱큐.”     

내가 마당에 서 있어도 새들은 평상으로 내려와 모이를 물고 나뭇가지 위로 올라갔다. 내 손바닥에 새들을 곧 앉힐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새들의 관찰자가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 속에서 나를 향한 설렘이 일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사 온 그해 겨울 하남 교산 3기 신도시 발표가 났다. 언제 쫓겨갈지 몰라 나는 서서히 모이를 조금씩 줄이면서 정을 떼고 있었다. 고양이에게도 양을 줄이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나만 보면 뽀르르 달려와 다리를 모으고 앉아 내 턱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모, 갑자기 왜 이러는 거예요?’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앉아있었다. 할 수 없이 줄인 배식을 다시 원위치했다. 사람 같으면 사료양을 줄이는 이유를 앉혀 놓고 설명이라도 해 주겠지만, 나를 수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럴 때마다 동물들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

성길씨 말을 듣다 보니 나만 고양이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성길씨도 고양이들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사 왔을 때 성길씨 마당에 있던 고양이 밥그릇이 낡고 때가 껴 볼품없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삐까번쩍한 큰 밥그릇과 물그릇이 마당에 놓여있었다.

근래 그 고양이 밥그릇이 안 보였다.

“하여튼 냉정해.”

성길씨가 나비 가족 다 내쫓으려고 그릇을 치웠다고 나 혼자 오해를 했다. 어쨌든 나는 성길 씨 감정이 출렁거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꺼냈다.

“아저씨, 우리 이주할 때 아저씨는 새끼들 데꼬 가고 나는 까불이 데꼬 갈께요.”

성길씨는 집을 들어가려다 말고 멈추었다.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게요.”

뒤는 돌아보지 않고 대답을 했다.

“옴매 진짜요! 고마워요.”

집으로 들어가는 성길 씨 뒷모습이 커지더니 남한산성을 가렸다.

‘아따. 오늘따라 등판이 무지하게 넓어 보인디요.’    

 

성길씨는 바람을 막으려고 집 밖 전면을 투명비닐을 쳐놓았다. 쳐놓은 투명비닐을 들추고 보일러실로 들어가면 집 입구로 들어가는 구멍이 나 있다. 그 구멍으로 나비들이 드나들면서 밥을 먹었다. 최근 성길 씨가 장판 쪼가리를 대 구멍을 못질해 막아버렸다. 집 입구에 밥그릇이 있었다. 문을 닫아버리면 고양이들은 밥을 어떻게 먹으라는 말이여? ‘먹을 것도 잠자리도 너네들 알아서 해라’ 이런 뜻이었다. 그동안 태도로 보아 두고 갈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대답한 것은 데려갈 확률 90%다. 나머지 10%가 나비들 생을 결정하겠지만 나는 90%를 100%로 생각하고 희망을 걸기로 했다.   

  

연자방아에서 철없이 ‘나 잡아봐라’ 하면서 놀고 있는 애들을 불렀다.

“어이 나비들 집합. 니 아빠가 데꼬 간다고 안 허냐.”

나는 이 말을 해 놓고 키득키득 웃었다.

성길씨가 고양이들에게 나더러 엄마라고 부르라고 했듯이, 나도 성길씨가 안 보이면 까불이에게 말했었다. 니네 아빠 어디 갔어? 묻고 했었다. 옆에서 누가 이것을 봤다 치자.

‘저것들이 부부의 인연을 저렇게 얼렁뚱땅 맺은 거여 뭐여?’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빠, 엄마가 돼버렸다.     

성길 씨가 나에게 고양이들한테 엄마라고 부르라 할 때 조금은 설렜다. 노총각 성길 씨도 아빠라는 말이 듣고 싶지 않았을까?


나는 성길씨가 나에게 섭섭하게 하면 밥 달라고 앉아있는 고양이들한테 말했다.

“느그 아빠한테 가서 밥 달라고 해야!”

나는 섭섭함을 고양이들에게 풀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그러지 싶었다.

‘아따 지랄, 왜 애꿎은 고양이들한테 썽질이여. 이거슨 아닌 것 같은디. 내가 이러면 성길씨도 그러겄지!’

‘아빠. 바쁘다. 네 엄마한테 밥 달하고 해라.’

사람 일은 모른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참새처럼 날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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