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나라의 어린이처럼 텃밭에 깻잎, 상추, 쑥갓, 아욱, 열무, 얼갈이가 무럭무럭 크고 있다. 자고 나면 자라는 상추를 친구와 동생들에게 배달했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을 뜯어주고도 넘쳐난다. 심지어 사돈네 팔촌까지도 돌렸다. 쉴 새 없이 자라는 상추를 나는 날마다 무쳐 먹고 상추쌈으로 해결하고 있다.
냐는 동생들과 모이는 단체 카톡에 글을 올렸다.
“느그들아, 연자방아에서 음메에에에에 울면서 수염 난 사람이 묶여 있으먼 난 줄 알어라.”
“언니 뭔 말이야?”
점심이가 물었다.
“하도 내가 풀때기를 먹어 염소 새끼 되겄어야.”
“하하하.”
카톡에서 동생들이 빵 터졌다.
“턱이 간지로 운 걸 보니까 진짜 수염 나게 생겼어야.”
나는 실제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듯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아이고 참말로 그런 말 하지도 마세요.”
남의 말을 잘 믿는 연주가 말했다.
“진짜로 성길씨가 나를 연자방아 기둥에 묶어 놓게 생겼어야.”
킥킥거리는 이모티콘이 우르르 터졌다.
우리는 한참을 웃다가 카톡을 접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산에 오르다가 집 근처 토박이식당에 들렸다. 주인하고 도토리묵과 맥주를한잔하게 됐다. 식당 주인하 고는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나이도 동갑이라 친구처럼 지낸다. 나는 도토리묵에 무쳐져 있는 상추를 보면서 말했다.
"요새 상추만 봐도 턱이 간지럽단께"
"왜?"
"상추를 하도 먹어서 그러지."
식당 주인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지금 친구가 세 사는 그 집, 전에 외양간이었어.”
“뭐라고! 그래서 그랬을까. 어쩐지.”
식당에 밥을 먹던 사람들이 수저를 들다가 웃었다.
이 집 구조에 관해 궁금한 게 드디어 풀렸다. 집 반 뒤쪽은 시멘트고 나머지 앞쪽은 패널이다. 시멘트로 된 곳에 방 두 칸이 있다.방 한 칸은 문이 없다. 이제야 소가 살았던 곳이라 문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차피 집 만들라고 했으먼 방 한 칸 달아 낼 때 나머지 방도 문을 달았어야지’ 나는 투덜댔다. 토박이 주인은 “내가 괜한 말을 했나!” 하면서 나를 봤다. “아니여, 내가 사는 집이 외양간이었다는 것이 재밌네” 나는 웃으면 말했다. 혼자 술잔을 비웠다. 산에 가는 것은 작파했다.내가 사는 집이 염소든 소든 짐승이 살았단다.
이 집에서 몇 년을 살다 보니 내 몸에 소의 체취가 묻어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랬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인천서 큰언니가 잠실 아들 집에 청소를 하러 왔다. 나도 잠실 조카 집으로 갔다. 나와 언니는 청소를 하다 말고 집 근처 다이소로 수세미와 세숫대야를 사러 갔다. 언니 먼저 내리라고 하고 나는 주차자리를 찾으러 다녔다. 주차할 자리가 없었다. 건물 주위를 몇 바퀴를 돌았다. 주위를 도는 동안 땀이 흘렀다. 차가 오래돼 에어컨도 시원찮다. 에어컨을 그냥 이리저리 돌렸다. 차도 돌고 나도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서서히 뚜껑이 열렸다. 확 집에 가버릴까. 찰나. 아, 신이시여! 모닝 한 대가 빠졌다. 차를 세우려는데 주차공간이 좁았다.
송파 방이동에서 살았을 때다. 집에 늦게 들어가면 손가락 하나 들어갈 공간에 차를 세워야 했다. 그 집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나는 주차에는 자신 있었다. 도시에서 살면 저절로 주차 고수가 된다.
나는 좌우로 우 좌로 고개를 돌리면서 혀를 내밀면서 겨우 주차했다. 양옆 차 간격이 깻잎 세 장 차이였다. 내차 뒤에도 차 한 대 주차돼 있었다. 정말 개미 한 마리 지나가기도 힘들었다. 운전석 문을 닫고 나오려는데 배와 가슴이 문에 끼웠다. 조수석으로 넘어갔다. 문을 열고 숨을 들이마시면서 배를 안으로 잡아당겼다. 겨우 차에서 내렸다. ‘내 주차실력은 알아줘야 헌단께!’ 차 키에 달린 고리에 손가락을 끼고 돌리면서 다이소 안으로 들어섰다. 다이소 문 앞까지 3분 걸렸다. 모르는 전화가 떴다.
“차 빼주세요.”
“네 갑니다.”
전화를 받고 돌아 나오는 시간이 채 1분도 안 되었다.
“아니 지금 뭐 하는 짓거리야, 남의 차 옆에 차를 바짝 대서 차도 못 빼게. ”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젊은 남자 옆을 지나갔다. 남자 배는 손가락을 누르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배에 힘을 잔뜩 주고 숨을 안으로 마시면서 조수석 문을 열었다.
“아줌마, 남의 차 옆에 차를 바짝 댔으면 미안하다는 말은 해야지.”
“전화 오면 곧바로 빼려고 했어요.”
나는 운전석으로 넘어가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귀를 못 알아듣나!”
“지금 빼잖허요! 미안합니다.”
“아이 씨팔. 이런 오백 원짜리 같은 것들이 사람 열받게 하네! ”
“그쪽 차가 주차선을 넘어와, 내가 주차 헐 때 얼마나 힘들었는디. 글고 전화받자 왔고요.”
‘살을 빼든가’ 나는 소리 죽여 말을 했다.
남자 머리는 스포츠머리요. 거구였다. 여름 한낮인데 검정 정장을 입고 있었다. 누가 봐도 깍두기였다. 조폭이라는 말이다.
무엇이 그렇게 그를 이 더운 날 열받게 했을까. 선풍기도 덥고 가로수도 덥고 개도 덥고 다 덥다. ‘너만 더운 게 아니다’ 깍두기는 내 차 안에 얼굴을 거의 들이밀다시피 했다. 깍두기는 얼굴에 땀이 흘러내려 번들거렸다. 땀구멍에서 땀이 줄줄 새 나왔다.
“그래서 아줌마가 잘했냐고, 차 긁히면 물어 줄 거야?”
‘너를 왜 무냐 내가 개냐!’ 나는 입안으로 웅얼거렸다.
깍두기는 쉬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이 팔 저 팔 욕을 섞어 속사포로 쏟아냈다.
‘야, 깍두기, 선 넘어 주차한 것은 너야, 이 자식아, 요새도 이런 놈이 있네! 나는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정말 이렇게 하고 싶은 상상을 한번 해봤다.
“아줌마 차에서 내려봐.”
‘말끝마다 아줌마야, 나 아줌마 아니거든!’ 나는 속으로 말을 삼키면서 핸들을 꼭 잡고 깍두기 눈을 똑바로 보고 앉아있었다.
“이 아줌마가 말귀를 못 알아듣나, 아줌마 개야?”
“... 소다! ”
나는 일 초도 망설임 없이 깍두기 눈을 쳐다보고 말했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다가 눈을 아래로 깔았다.
그야말로 무심히 나온 말이다. 나는 한 대 맞기라도 하면 무슨 창피야. 그를 곁눈으로 비스듬히 쳐다보았다. 그는 말없이 나를 수 초 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두서너 발짝 물러섰다.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봤다. 그때 옆에서 일행인 여자가 깍두기 팔을 잡아당겼다. 깍두기가 나를 윽박지르고 차를 발로 차버릴 것 같았다. 차를 차기만 하면 경찰에 신고할 태세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깍두기에게 맞는 것보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더 창피했다. 어서 이 상황이 종료되기 바랐다. 다행히 그는 시동을 걸고 조용히 사라졌다. 깍두기는 ‘이 여자 더위 먹었나!’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리 싱겁게 갔겠나 싶다.
나는 그때 “소다”라는 말이 왜 금방 튀어나왔을까. 어이없고 궁금했다. 아마 내가 사는 이 집이 외양간이었다는 것을 내 몸은 알고 있었던 걸까. 내 집하고 서로 붙어있는 하남시 문화재 연자방아가 있다. 이래저래 소 기운이 내 몸에 밴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