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가운데 사과대추가 반짝거린다. 나는 성길씨 몰래 까불이 부인 도도에게 밥을 주려고 평상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그때 갑자기 엉덩이 뒤쪽에서 딱 소리가 났다. 호두나무를 맞고 튕겨 나온 빗자루가 내 뒤로 떨어졌다. 그 사이에 도도가 호두나무 뒤쪽으로 전광석화처럼 날아갔다.
밭 끝쪽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도도였다. 도도는 흰색 바탕에 검은 점이 두 개 박혀 있다. 까불이랑 새끼들은 등이 검정이었다. 까불이 각시라는 것을 나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요즈음 또 도도가 새끼 뱄다고 성길씨가 구시렁거렸다.
성길씨는 새끼들이랑 까불이를 부를 때는 한없이 다정했다. 성길씨는 내가 고양이들 이름을 지어줬는데도 나비라고 부른다. 나비들 부르는 성길씨 목소리가 귀에 맴돈다. “나아아비야” 할 때 ‘야’를 길게 늘어뜨리다 끝을 반올림한다. 지금 목소리를 흉내 낼 수도 없고. 도도에게 그것 반만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곧바로 일어나 빗자루가 날아온 방향을 따라 몸을 틀었다. 성길씨가 자기 집 마당에서 씨익 웃고 있다. 민망해서 짓는 멋쩍은 웃음이었다. 내가 집으로 들어온 줄 알고 온 힘을 다해 빗자루를 던진 것이다.
인정머리 없는 인간처럼 보이기는 싫었는지 나 없을 때 던진다고 한 것이 하필 그때 던진 것이다. 나는 성길씨한테 ‘창던지기 선수로 올림픽에라도 나가봇쇼!’ 소리치려다 참았다.
“사장님 내가 여기서 살 때까지는 사료 사다 준다는디. 어쩌 자꾸 그러요?”
“안 돼요. 새끼 나면 나중에 분양하기도 힘들고. ”
이 상황에 맞는 적절한 표현인 줄 모르겠지만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빗자루를 던져놓고 나한테 들킨 게 민망해서 그러는지 엄청 신경질을 부린다. 요즈음 나한테 끄덕하면 화를 낸다.
“남자가 생리하는 거여 뭐여.”
며칠 지나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나에게 “차비 줄게요. 소주 사러 가게요” 아쉬운 소리를 한다. 내 차가 무슨 영업용 택시인 줄 아나? 조울증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오늘은 너무 적나라하게 성질을 부렸다. 나도 성질 한번 보여줄까 하다 참았다. 성질 헤프게 쓰다 손해 본 것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도도가 뛰어내린 계곡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울컥했다.
임신했다고 쫓겨난 도도는 까불이와 살지만, 새끼들과 함께 살지 못한다. 도도와 새끼들을 보면 요즘 집 마련할 돈이 없어 애를 못 낳는다는 젊은 신혼부부들이 오버랩 됐다. 아예 비혼주의를 선언하는 남녀가 많아진다고 한다. 가족의 결속과 의무에서 벗어나 혼자 여행 다니며 연애만 하며 살고 싶다고 한다. 결혼도 가족도 돈이 있어야 하는 세상이라니. 그래서 대도시를 사막이라고 하는 걸까. 왜 길에서 쫓기는 고양이들이 이 땅의 젊은 청춘들과 같은 처지에 있다는 생각이 들까.
밭 가에 해바라기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나는 해바라기 고개를 들어 올리려다 그만두고 집으로 들어갔다. 마당에서 난리가 나는 동안 까불이는 방에 들어와 천정으로 다리를 쳐들고 자고 있었다. 까불이가 참 철딱서니 없어 보였다.
“나비, 너는 잠이 오냐? 니 각시는 어디서 숨어있는지도 모르고 말이여!”
이 판국에 배는 왜 고픈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밥도 없고 반찬도 없다. 굶었다.
그런데 점박이와 순둥이가 까불이 새끼가 맞을까? 며칠 전 나는 또 도도가 새끼를 가졌다는 것이 아리송해 동물병원에 전화했다. 수의사가 동글동글한 조그마한 게 두 개 달려있는지 까불이 거시기를 만져보라고 했다. 만져지면 수술이 잘못된 거라고 했다. 그렇다고 유부남 고추를 떡 하니 만질 수는 없고. 까불이는 분명히 중성화 수술을 했다고 동물병원서 확인해 줬다.
동물병원서 중성화 수술 확실히 했다는 말을 성길씨에게 전했다.
도도가 첫배 새끼를 가졌을 때도 성길 씨는 긴가민가 했었다. 성길씨는 도도를 의심을 하던 참에 또 새끼를 배자 지금 점박이와 순둥이도 까불이 새끼가 아니라고 더 심하게 구박했다. 쉽게 말해 내 손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손자라고 치자. 지가 ‘옷을 사 입힐 것이여? 손잡고 놀이동산을 갈 것이여? 글을 갈킬 것이여? 장난감을 사 줄 것이여, 유치원을 보낼 것이여?’ 사룟값도 아까워 난리를 치면서, 유세를 떨기는...
동물병원서 중성화 수술 확실히 했다는 말을 성길 씨한테 전하지 말 것을 나는 후회 했다.
내가 그 시간에 안 나가고 도도를 안 불렀으면 쫓겨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괜히 도도를 불러 성길 씨 눈에 띄어 쫓겨난 거 아닌가.
어디서 도도를 찾아 데리고 와야 할지 걱정이다. 평상 밑에 사과 상자를 넣어두고 돗자리로 덮어놓았다. 밥그릇은 박스 옆에 숨겨두었다.
도도가 돌아오면 이젠 방에도 들어오라 할 생각이다. 새끼들이 있으니 오기는 올 것 같은데, 성길 씨 눈에 띄지 말고 그야말로 배추흰나비처럼 살그머니 왔으면 좋겠다. 못 보던 꽃들이 피듯 도도가 금방이라도 나타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