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령품들의 사계
미용실 앞면과 뒷면은 서로 닮아간다 142
미용실 앞면과 뒷면은 서로 닮아간다
너는 눈썹을 다듬으러 미용실로 가고
나는 죽기 싫어 산으로 간다
네 거울 속에서 미용실 안쪽이 부풀어 오르면
나는 눈을 감은 채 산길을 걷는다
태어나 서로의 눈 밑을 떠돌다가 가는 우리,
너와 내가 남긴 흔적 따위 아무 소용도 없는데
계곡 물소리 자갈을 치고 돌아간다
빠짐없이 핀 부추 꽃 사이를 나비들이
쉴 새 없이 옮겨다니는 오후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탓인지 찾아오는 이도 없다
길이 흐트러지더니 구름이
귀룽나무 뒤로 몸을 숨긴다
눈썹 끝을 곧추 세운 그녀는
밤길을 숨 가쁘게 달려 거울 속으로 간다
나무보다 조용히 앉아있는 새들은
나와 나를 지켜보고 있겠지
면도칼 하나 입 속에 감추고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나는 물속의 뒷면을 뒤지다
서로 남모르게 살아온 걸음을 떼어 놓는다
젖은 날개 위에 또박또박 다 적을 수 없는 날들
말썽 없이 나무 곁을 지나가는 바람도 헛것은 아닐 텐데
상갓집 마당에서 화투패를 죄던 눈빛이 벌겋게 건너온다
한 번도 태어난 적 없는 우리
지금 어디선가 막 태어나기 위해
게으르게 기지개를 켜고 있을 것이다